이 세상에 오직 단 한 사람 당신만이

최진영, <단 한 사람>

by 지지


줄거리


잠에 들면 꿈을 꾼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꿈. 그리고 목소리가 말한다. “구해”라고. 수많은 사람들 중 단 한 사람만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삼대의 이야기.


감상


이게 무슨 마음일까. 알 수가 없다. 작가 또한 작가의 말을 통해 정답을 알고 싶지 않다고 했으니, 책을 다 읽고 나서 내가 느끼는 이 막연하고 아뜩한 감정 역시 마땅한 것일까? 그럼에도 나는 내가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 내 안의 무언가가 변화했는지 조금이라도 감지해보고 싶다.


어느 날부터 내 꿈에서 끝없이 죽는 사람들이 나온다면. 그리고 그 사람들 중 단 한 사람만 살릴 수 있다면.—내가 고를 수도 없다면— 그 일을 평생에 가깝게 해야 한다면. 소설은 삼대를 통해 각자가 받아들이는 그 답이 다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받아들이는 독자 역시도 끝없는 죽음 앞에서 단 한 사람만을 구할 때에 다른 답을 도출해낼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나는 상상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나 역시도 소설 속 인물들처럼 어떨 때는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지정한 사람을 구하고 싶지 않아 거부했다가 패널티로 따르는 고통에 괴로워하는 과정을 꼭 한 번은 걸쳤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 계속 생각할 것이다.


나는 미수의 엄마 임천자의 가설이 가장 흥미로웠다. 내가 만약 그렇게 구해진 ‘단 한 사람’이었다면, 그래서 이렇게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감히 내가 이 일을 거부하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지 않을까?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 판단을 내리는 것이 무의미함을 말하는 목화의 —수많은 죽음을 목도한 끝의— 깨달음 역시 이치에 맞게 들렸다.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는 목화의 자녀도 아닌 —기를 쓰고 사회의 유리천장을 깨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던 첫째 일화의 딸— 루나가 그 역할을 자신도 하게 되었다며 “기뻐”하며 목화에게 전화를 건다.


목화는 이것이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일이 아니라고 설득하려다가 그 말을 애써 삼킨다. 왜냐하면 답은 각자 다르니까. 같은 유전자에서부터 시작하였더라도 각기 다른 모습을 지닌 나무의 군락들처럼. 인간군상 역시도 그런 것이니까.


어쩐지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내가 다 자란 느낌을 받았다. 조금 더 다부진 사람이 된 것 같다. 사실 얼마 전까지 몹시 고통스러웠다. (호르몬의 농간이었으나) 삶의 이유를 합리적으로 생각할수록 삶은 죽음을 위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게 맞다 생각한다.) 하지만 묵묵히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이 소설이 나의 식물영양제 같은 역할을 해준 것 같다. 시들시들하게 죽어가던 내게 갑자기 콱 꽂아진 영양제. 힘내. 거창한 위로나 갑작스런 힐링 마법 같은 건 써줄 수 없지만 이걸 토대로 힘을 내봐. 소설이 나를 응원해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참 사랑이 많은 소설이었다.



인상 깊었던 구절


(초략) 태풍이 몰고 온 온갖 위협 속에서 두 나무는 서로 뿌리를 움켜잡고 가지를 끌어안으며 다짐했다. 봄이 오면 마지막인 것처럼 더 많은 꽃을 피우겠다고. 이어 다짐했다. 열매 따위 맺지 않고 뿌리에만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고 다짐했다. 다시 다짐했다. 더 많은 열매만이 다른 세계에 닿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다짐을 번복하고 반복해도 비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거대한 태풍은 숲을 손아귀에 구겨 쥐어 바다 한가운데로 내팽개치려고 했다. 뿌리가 있어 움직이지 못하는 숲의 존재들이 한 번 쯤은 은밀하게 꿈꾸던 그 바다로.


1학기까지 전교 1등은 일화였다. 2학기가 되고 그 자리를 이명기가 차지했다. 일화가 1등을 할 때 사람들은 일화에게 독하다고 했다. 이명기가 1등을 하자 자기 자리를 되찾았다고 표현했다. 일화가 다다르고 싶은 자리에는 늘 남자가 있었다. (중략) 일화의 라이벌은 이 세상 전부였다. 일화는 그것에 포함되어 포위된 채 싸워야 했다.


(초략) 언제나 어디에서나 어른들은 “너무 멀리 가지마”라고 했다. 그럴수록 금화는 더 멀리 가고 싶었다. 아주 멀리까지 가서 사람들이 마침내 자기를 그리워하게끔, 자기를 먼저 찾게끔 만들고 싶었다.


수많은 죽음 앞에서는 살아있음 자체가 비정상이었다.


마지막까지 바라보고 싶은 사람을 바라보다가 그는 죽었다. 되살리지 않아도 좋을 죽음을 목화는 목격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신에게 구걸할 일이 늘어난다는 것. 목화는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계속 살아야 한다는 것. 정원은 그것을 죽을 때까지 갚아야 하는 거대한 빚처럼 느낄 때가 있었다. 그럴 때 정원은 자기가 어서 죽기를 바랐다.


어째서 배가 침몰하던 그때 나를 부르지 않았는지.


어쩌면 그저 알려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를 보고 있다고. 생명체라는 전체가 아니라, 인류라는 종이 아니라 오직 너라는 한 존재를 바라보고 있다고.


언젠가 사라져버릴 당신과 나를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습니다. -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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