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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인 Jun 05. 2021

예술에 인간과 새의 동행을 동반하다, 페르난도 도 캄포

호주 원주민들과 쿠카부라의 '강제 이주'에 대한 슬픈 역사를 작품에 담다

Fernando do Campo, ‘Pishing in the archive’ 2021 (still). Single-channel HD video.

페르난도 도 캄포(Fernando Do Campo)는 필자가 오너스 학위를 따려고 공부할 때에 필자를 맡아주셨었던 필자 또래의 젊은 교수님이셨다. 그럼에도 필자는 페르난도를 필자의 선생님으로 진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를 좋아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페르난도의 첫인상은.. 화가 난 것 같았다. 특히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에 가뜩이나 떨려 죽겠는데, 페르난도의 진지한 표정과 울그락 불그락 하는 얼굴을 볼 때면.. 필자는 가뜩이나 못하는 영어를 더더욱 버벅거리는 등, 엄청 실수를 하고는 했다. 페르난도의 표정을 보고 에잇, 망했다..라고 생각하며 그의 기대를 충족치 못한 내게 분명 그가 화가 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대를 버리고 있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점수가 잘 나와서 아이러니했던 적이 있다. 알고 보니.. 당시에 페르난도는 필자의 한국식 영어 악센트에 집중하며 적응하는 중이었으며, 원래 표정이 그랬던 것이었다. 때때로는 얼굴이 시뻘게지고는 하는데, 나중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다른 학생들도 처음에 페르난도를 보고 오해하며, 필자처럼 엄청 긴장했다고 하더라. 이제 페르난도의 빨간 얼굴은 화가 났다기보다는 왠지 수줍어하는구나..라고 느껴진다. 그렇게 보기까지 1년이 걸렸다. 아마 지금쯤 올해의 내 후배님들 중의 누군가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무척이나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터졌고, 필자가 살고 있는 시드니는 락다운이 되었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었다. 우울하고.. 우울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혼자 집에서 논문을 쓸 때, 화상채팅으로 페르난도의 지도와 조언대로 논문을 진행했는데.. 페르난도가 필자에게 가르쳐주는 글 쓰는 법이 유독 굉장히 잘 맞는구나를 느꼈었다. 물론, 그 논문.. 코로나로 인한 여러 가지 상황과 심리적 문제들을 겪었던 시기에 썼기에 참 부끄러운 완벽하지 못한 논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졸업할 수 있었던 건 기적 그 자체였다. 


페르난도와 라마쉬(https://brunch.co.kr/@z5217939/6)의 마지막 피드백은 필자에게 충격이었다. 그렇다고 점수를 아주 잘 받은 것도, 나쁘게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컴플레인도 걸기에는 무척이나 애매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페르난도에게 결국 분노의 이메일을 다다다다닥 썼는데.. 페르난도가 태즈메이니아로 휴가를 떠나는 바람에 답장은 방학이 끝난 2달이 지나서 받을 수 있었다. 메일의 내용은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시기에 내가 얼마나 공부를 잘 끝마칠 수가 있는지에 대한 칭찬이었다. 아.... 난 나름 컴플레인한 건데....

이런 말 하면서 미소 짓고 있을 페르난도의 수줍은 듯이 빨개진 얼굴과 환한 미소가 또 떠올라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SNS를 통해 페르난도가 전시회를 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고.. 흥!!! 얼마나 잘했는지 보자!!!라는 심보로 페르난도의 전시회에 다녀왔다. 

365 Daily Birds List, Fernando Do Campo

페르난도 도 캄포(Fernando Do Campo)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호주인 예술가, 작가, 큐레이터이다. 호주 태즈메이니아에서 자라났으며, 미국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존 모나쉬 John Monash 재단의 전액 장학금으로 유학한 경험이 있다. 호주에 돌아와서는 더 큰 기회들을 저버리고 호주의 뉴사우스 웨일스 대학교(University of New South Wales, UNSW) 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택했으며, 주변에서 이 선택 때문에 멍청이 소리를 들었다는 일화를 직접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페르난도는 예술가로 활동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평화로운 삶에 만족하는 것 같다. 필자가 겪은 페르난도는 엄청 아카데믹하며, 똑똑하고.. 사려 깊으며, 따뜻하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그런 스승이었다. 하지만 때론 그는 냉정하다. 아닌 건 분명히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개인 취향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작품을 보는 사람을 설득하며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게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필자는 배웠다. 때론 참 난해하고 어렵다.


이민자의 입장에서 느껴지는 새라는 존재는 '이주', '이동'이라는 단어들을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아르헨티나 출신이라는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특징 때문에 그는 새를 그의 예술적 동반자로 선택한 것일까? 다음번에 페르난도를 만나면 직접 물어봐야겠다. 

365 Daily Birds List, Fernando Do Campo

위의 사진 속 작품은 페르난도가 인식한 모든 새의 2019년 1월 3일에서부터 2020년 1월 2일까지의 1년 동안의 아카이브를 제공하는 그림 시리즈인 365일 새 리스트(365 Daily Birds List)이다. 페르난도가 1년 동안 만난 새를 보고 느낀 영감을 그대로 그림에 표현한 것이다. 주로 언어와 색으로 표현을 한 것을 볼 수 있는데,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글자 중의 하나가 인디언 Indian이다. 아마 페르난도의 파트너가 인도 사람이라서 여기에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나.. 혼자 짐작해본다.


새를 향한 페르난도의 이러한 일상적인 관찰과 청취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에서 만난 다양한 만남과의 공존에 대한 기록이며, 예술가로서의 페르난도 개인의 그림에 대한 표현, 추상화 및 텍스트를 쓰는 새로운 방식으로 그림에 대해 접근 방식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기 위한 예술가로서의 변화와 발전, 새로운 논리를 생성한다.  


동행을 동반하다(To companion a companion)이라는 타이틀의 이 전시회는 인간을 새의 동반자로 제안하는 작품이다. 그는 새와 인간을 비언어적인 예술적 전략으로 '동반자'로 제안한다. 


인간은 역사적으로 여러 종류의 새들과 함께 살았던 기록이 있다. 예를 들어서 사극이나 드라마를 본다면 다리에 편지 쪽지를 매달아서 전달하는 연락 통 역할을 했던 충성스러운 매, 혹은 새장 속에 갇혀있던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새들일 것이다. 때론 새를 포함한 동물들은 인간에 의해(밀반입 혹은 수출 등에 의해 인위적으로) 의도치 않게 외국 공간으로 유입되기도 했다. 페르난도는 인간의 이러한 행동은 복잡한 모순을 가져온다고 해석했다. 복잡한 모순 덩어리인 인간들과 새의 만남에서 그는 새를 통해서 인간 중심주의와 애정의 혼합을 발견한다. 이러한 역사와 영향은 식민지와 민족주의 등의 인위적인 것들과 함께 계층화가 되고 매듭지어진다. 



Pishing in the archive, Fernando Do Campo

이 작품은 14분 6초로 구성된 비디오이다. 이 비디오 속에서 페르난도는 수많은 기록이 새겨진 서류들 틈새를 두드리며, 새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뭔가 생각에 잠긴 듯이 잠시 침묵하다가 또 이 행위를 반복한다. 마치 새와 대화를 시도하고.. 그들이 답변하는 목소리를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이 작품은 미국에서 참새의 역사를 페르난도가 조사하며, 페르난도는 피싱(들판에서 새를 유인하기 위해 내는 소리)을 통해 역사와의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을 기록했다. 필자 또한 설명 없이는 처음에는 작품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브런치에 페르난도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니.. 왠지 그의 작품 세계를 좀 더 친숙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아서 기쁘다. 



Call to non-verbal action(WHOLSLAUGHINGJACKASS 2020, Fernando Do Campo

이 작품, 기억난다. 처음에는 솔직히 저게 뭐야? 했었다. 저 천 조각들은 대체 무슨 의미이지???

사진 출처 : http://www.fernandodocampo.com/

알고보니 저 작품은 9명의 퍼포먼스 예술가들이 2020년 모나 포마 페스티벌(MONA FOMA festival: 호주 태즈메이니아의 모나라는 지역의 예술, 음악 등등의 여름 축제이다. 참고로 호주는 여름이 한국과 정 반대의 계절이다. 12월과 1월이 호주의 여름이다.)에 쿠카부라 재배치 프로젝트를 위해 들고 간 시위 배너이다. 

구글에서 가져온 이미지

호주에는 쿠카부라라는 아주 귀여운 물총새가 있는데, 웃음소리가 아주 특이하다. 때로는 동화 속에서 나오는 마녀 웃음소리 같다.. 쿠카부라는 호주 원주민 언어로 웃음을 흉내 낸 단어이다. 처음 호주 왔을 때, 쿠카부라의 웃음소리는 정말.. 적응하기 힘들었었다. 알아보니 쿠카부라의 한국 이름은 '웃음 물총새'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8zE0BilgVo

모마 포마 페스티벌에서 새처럼 다채로운 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태즈메이니아 도시 한가운데에서 쿠카부라처럼 무례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들은 굳이 왜 이런 퍼포먼스를 했을까?

아마 우스꽝스럽기도 했을 것이고, 또한 진지해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저 천으로 만든 배너는 여러 가지 천으로 만들었는데, 그것은 다민족을 구성하는 호주 공동체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작품에서는 글자들이 오려져서 서로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쿠카부라의 호기심 많은 역사에서 영감을 얻었다. 


19세기 호주에서 쿠카부라의 이름은 웃는 멍청이(Laughing Jackass)였다. 페르난도는 인간이 아닌 동물을 동원할 때, 호주에서 식민적 행동에서 민족주의적 행동으로 변화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쿠카부라의 역사를 통해 호주의 상징된 민족주의 역사를 추측할 수 있으며, 호주 정부의 진정한 색은 고급져 보이는 초록색이나 금색(호주 국가를 대표하는 색이다) 대신 '웃는 멍청이'의 제3의 색일 수도 있다고 페르난도는 말한다.


페르난도가 이 프로젝트를 위해서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태즈메이니아에 쿠카부라가 존재하기 시작한 것은 1881~1906년이었다. 태즈메이니아의 시티 파크 동물원(City Park Zoo)이 태즈메이니아 호랑이 새끼를 쿠카부라와 교환했다고 한다. 이러한 종류의 교환은 당시 국제 무역에서도 흔했지만 태즈메이니아에 도입된 쿠카부라는 일종의 '강제 이주'에 해당한다고 페르난도는 말한다. 


그가 강제 이주에 버럭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설명에는 없지만 필자의 짐작으로는 아마 원주민 문제를 꼬집고 싶었던 것으로 해석된다.(다음 주에 꼭 페르난도에게 직접 물어볼 거다. 지금 이건 그냥 필자의 해석이다.) 영국에서 온 백인들은 이미 4만여 년 전부터 호주에서 살던 원주민들이 호주가 그들의 땅임을 증명하는 서류가 없다는 이유로 어이없게 땅을 빼앗아버렸다. 생각을 해보시라, 광활하고 풍족한 호주 땅에서 살아오던 원주민들에게 서양식 토지 문서가 대체 어디 있었겠는가?


태즈메이니아 섬에 살던 원주민들 또한 땅을 빼앗기며, 학살(백인들이 저지른 인간 사냥이라고 불리는 슬프고 잔혹한 역사이다. 잔인했던 원주민 말살 정책.) 당하는 일들이 생겼다. 남은 소수의 원주민 생존자들은 태즈메이니아 땅을 빼앗기고 다른 섬으로 강제 이주를 해야 했다. 한국이 일본에게 수난을 당했듯이, 원주민들 또한 백인들에게 엄청난 수난을 당하며 고통의 시간을 건넜어야만 했다. 현재까지도 원주민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호주 사회에서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많다. 특히 이러한 역사가 벌어졌던 태즈메이니아 땅에 원주민들의 역사와 아픔을 위한 교육 기관 혹은 역사박물관 등등이 아직까지도 없다는 게 그저 필자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호주 정부의 무책임함과 변명, 외면에 원주민들은 오늘날까지도 상처를 받고 있다. 그들은 입으로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가장 중요한 행동이 없는 미안함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하는 것일까. 


원주민들이 고통받는 그 시기에 쿠카부라는 태즈메이니아에 야생으로 풀려났으며, 낯선 환경에 새로이 적응해야만 했다. 페르난도는 태즈메이니아 땅에서 쫓겨가는 '강제 이주'해야만 하는 원주민과 인간에 의해 낯선 태즈메이니아 땅에 '강제 이주'해서 살아가야만 하는 쿠카부라의 대치되는 상황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공통적인 것은 모두 다 백인들(호주 정부)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이다. 


페르난도의 프로젝트와 그림들이 우습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분명 계실 것이다. (페르난도뿐만 아니라, 예술가 그 누구든.) 하지만 페르난도는 예술을 통해 표현하고 연구하는 학자이며, 이러한 미학적 추상을 통해 사회와 정치적인 질문을 탐구한다. 


페르난도는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새'에 관해 애정을 가지고 있는 예술가였다. 첫 수업 때에 뜬금없이 왜 새에 대해서 설명을 하나 의아했었는데, 그게 바로 페르난도 자신의 예술에 대한 정체성이었다. 페르난도는 새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이 세계 여러 도시에서 만나는 다양한 종족과의 만남에서 접하게 되는 역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2015년부터 HSSH(House Sparrow Society for Humans) 인간을 위한 참새 소사이어티에서 활동하면서 조류를 관찰하며, 예술 작품을 이어나가고 있다.(이 단체는 인간이 아닌 동물의 역사를 의인화하며, 추측성과 허구 및 기록 연구를 통해 다시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그는 큐레이터의 방법론, 허구 및 포스트 휴머니스트에 대한 글을 쓰며 지구 남부에 도입된 새의 종류의 문서화 및 미등록 역사를 조사했다. 그의 연구는 새에 대한 기록 보관소 및 컬렉션 내에서 새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대한 가능성이다. 이러한 새를 통한 실험을 통해 그는 페미니스트, 퀴어, 포스트 휴머니스트 및 탈식민주의 렌즈로 인간이 그동안 쌓아왔던 역사에 대응하고 있으며, 그의 예술은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재정비할 힘을 가지고 있다. 


페르난도의 이 프로젝트는 식민주의와 민족주의의 결합, 인간과 비인간 관계, 의미와 넌센스 사이의 상호 작용을 탐구한다. 페르난도는 새를 통해 작품 활동을 하지만 막상 그의 작품에 새를 직접적으로 그린 것들은 거의 없다. 새의 역사를 통해 작품과 메시지를 나타내었다는 것이 필자에게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호주 정부는 여전히 헛된 상상(백인들의 교만, 반성 없는 정부, 잘못된 역사의 반복 등등)을하고 있으며, 페르난도는 쿠카부라의 웃음소리를 이용해서 못마땅한 멍청한 호주의 정치적 상황을 비웃었다. 완벽하지 않게 천으로 만든 배너를 통해 그는 작품에서 호주의 국가 건설에 대한 방향성과 대안적인 내러티브(인과 관계로 엮인 실제적, 허구적인 이야기)를 제시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아직 판타지일 수도 있겠다. 세상은 바뀌지 않았으며, 이러한 일들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페르난도는 멈추지 않고.. 이렇게 작품으로 싸우고 말하겠지. 도시 공간에서 쿠카부라의 웃음소리라.. 이건 뭐, 시위라고 잡혀갈 수도 없고.. 예술활동이니.. 역시 괴짜다. 똑똑한 괴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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