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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Nov 18. 2016

언제부터 였을까 '산책'

짧지만, 소중한 또 하나의 여행






가을이,
내려앉았어





2016년 11월, 동네 근처의 공원






정말 그랬다. 10년을 넘게 알아온, 그래서 내게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의 청첩장을 받아 들고 카페 근처의 공원에 들렀을 때, 정말 그랬다.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걷던 중, 오른쪽으로 자리 잡은 의자들이 보였고, 그들은 오랜만의 따스한 가을빛이 벅찼는지 일부를 우리에게 덜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바라본 의자 곁에는 가을이 자리 잡고 있었다. 혼자 앉아, 함께 앉아, 또는 그들을 부럽게 바라보며 말이다. 며칠간 아니 그래도 꽤 오래전 우리 곁을 찾아온 가을이었는데, 그래서 매일이 가을이었는데 그날만큼은 작은 가을까지도 종일 느낄 수 있었다. 이제야, 가을이 온 것처럼.






그들이 내어준 작은 빛이
금세 번져 내게 가을을
한아름 안겨주었다





2016년 11월, 동네 근처의 공원






그러고 보니, 오랜만의 산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하니 조금 걷자는 친구의 말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나는 가을이 다가왔다는 사실만 인지하고는, 느끼지 못한 채 흘려보내고 있었을 테고, 맞잡은 우리의 손과 닮았어 - 라며 그녀에게 공원의 트랙을 담은 사진도 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은 분명 오랜만이었지만, 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그 좋음은 늘, 걷는다는 생각에서 시작되곤 했었다. 처음에는 종일 앉아 있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시작되었지만, 이후에는 천천히 걸으며 출/퇴근길에는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을 찾아내는 즐거움에 산책을 이어가곤 했다. 산책을 좋아하는 이유와 목적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떠나는 시점은 비슷했는데 '내일 할까?'라는 생각을 오늘에 붙잡아 두고, '나중에 할까?'라는 생각을 지금에 잡아두고 싶은 순간이 바로 그때였다. 짧은 시간 동안 매일의 익숙함을 덜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산책이라는 사실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매일의 익숙함을 벗어낼 수 있는
설렘 가득한 순간
내게, 산책은 그렇다





2016년 11월, 동네 근처의 공원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갈 시간. 오랜만에 만난 친구였고, 이제 결혼식장에서나 보게 될 친구였기에 헤어짐의 순간은 아쉬움으로 가득 찼다. 친구를 배웅하기 위해 근처의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 공원의 바닥에 누군가 내려놓은 카드 한 장을 보게 되었다. 포근한 가을을 덮고 있었던, 여러 색의 낙엽이 포개진 길 위의 나뭇잎 카드는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대화는 각자의 그녀를 보기 위한, 우연을 만들기 위한 노력들로 채워졌다. 한 번이라도 더 보고 마주치기 위한, 서로의 노력 담긴 이야기들로 말이다. 그날의 산책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즐거움이기도 했다. 






반복되는 일상, 정해진 것들이 
대부분인 우리의 삶 속에서
정해지지 않은 우연을
만나기 위한 노력 하나쯤, 어떨까
산책을 통해서 말이다





2016년 9월, 양재동의 어느 공원






동그란 원으로 잠시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도 - 모두 산책이라는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원 안으로 어떤 것들이 보이는지 계속해서 몸을 움직여볼 수 있었던 것도 - 모두 산책을 나갔기에 가능했다. 그러니 내게 산책은 늘 쉼 이상의 시간이자 짧은 여행의 순간 순간들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앞으로도 산책은 계속 될 것이다. 오랜만이더라도, 산책을 멈추진 않을 것이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같은 곳에 오래 시선이 머무르며, 자연스레 발걸음을 느리게 할 수 있는 또 한 사람과, 앞으로는 더 많은 걸음을 나눌 수 있을테니 내게 산책은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올지 모른다는 것.






그래서, 겨울을
네 번째로 좋아할 수 밖에 없다
발걸음이 빨라지는 계절이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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