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그 속에 담긴 두 번째 이야기들
언제부터 였을까 '의자'(의자,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 첫 번째)
이제 곧, 두 달이 되어간다. 미디엄이라는 서비스를 보며 국내에도 제대로 된 '글쓰기 플랫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해오던 중 다음카카오(이제는 카카오)의 '브런치(brunch)'를 알게 된 날로부터 지금까지. 4년 전부터 인스타그램을 한 장의 사진, 그리고 그와 관련된 짧은 글을 쓰는 메모장으로 활용해왔기에 첫 번째 글을 쓰기 전 차근차근 둘러보았고,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의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언제부터 였을까' 시리즈의 첫 번째 주인공은 의자가 되었고, 언제나 내 시선을 오래도록 붙잡는 의자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를 조금 빨리 시작해보려고 한다.
올 여름 휴가는 4박 5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15년 지기 친구와 함께 광명역에서 KTX를 타고 도착한 곳은 여수엑스포역. 그렇게 여수에서 시작된 여행은 순천, 하동, 곡성으로 이어졌고 최근 그 어떤 여행보다도 뜻깊은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여행이 즐거운 이유야 수도 없이 많을 테지만, 무엇보다 그 순간 느꼈던 점과 후에 다시 끄집어 냈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는 점이 아닐까. 이번 여행에서는 하동역에서 순천행 무궁화호를 기다리던 순간에 찍은 사진 한 장이 그랬다.
사진의 왼쪽 편이 부전(부산) 방향, 오른쪽 편이 순천방향의 선로였다. 플랫폼 가운데 놓인 의자는 마치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보게 될 것들과 가게 될 곳들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서로를 등지고 있으면서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손이라면 한 손씩 잡고 있었고, 발이라면 발 하나씩을 맞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모습이 끝을 뜻하는 '이별'을 준비하는 연인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로 잠시 돌아가야 하는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연인의 모습처럼 보였다. 그 순간에는 낯선 여행자를 반갑게 맞아준 곳을 떠나기 직전이었기에, 후에는(지금은) 가을을 눈앞에 두고 있기에 '사랑'의 주인공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여름을 배웅하는 건, 깊은 외로움을 데려오는 것과 같으니.
의자도 하나의 장소가 될 수 있다면,
등지는 순간 목적지와 방향이 달라지는 곳
수 많은 사연을 안은 기다림이 존재하는 곳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곳
어릴 때, 분명 내게도 아지트라는 것이 있었다. 먼저 발견하고는 '너만 알아야 해'라는 속삭임으로 친구를 데려갈 때만큼의 설렘과 즐거움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 둘 조건과 기준이 늘어나서일까. 이제는 나만의 아지트라고 부를 수 있는 장소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럼에도, 생각을 정리하고 싶거나 오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없을 때 여행의 느낌을 받고 싶으면 찾아가는 곳이 있다. 남한강과 북한강의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 두물머리가 바로 그 곳이다.
올 여름에도 나는 가족과 함께 두물머리에 다녀왔다. 강원도 홍천에서의 1박 2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동생이 아직 가보지 못했다는 말에 발걸음을 멈추게 된 곳. 두 번째 이상 찾는 곳이라면 우리는 늘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데, 나 역시 곳곳에 묻은 지난 시간들을 하나씩 들춰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기억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얼마만큼의 애정이 담겨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어떤 기억은 내가 없는 사이에 쉽게 자리를 뜨지만, 어떤 기억은 우리가 오기를 가만히 앉아 기다리기도 한다. 그/그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던 곳이자, 한 권의 책을 모두 읽어내려 갔던 곳. 고장 난 의자인 줄 알았는데 애당초 그렇게 디자인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혼자 소심하게 웃었던 곳이자, 호기심에 그 경계선에 앉아봤던 곳. 이렇듯 두물머리에는 더 오래 시선이 머무르는 의자가 하나 있다.
다음번에는, 지난날 함께 앉아 있었음에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기억의 장소 뒤에서
조심스레 말을 걸어보고 싶다
우리가 침대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의자'라는 사실은 내일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꽃과 같은 마음을 내려 놓기에는 아직 어색할지 모르지만 - 한 번쯤은 우리가 매일을 머무르는 그 곳, 나 뿐만 아니라 여러 이야기들을 함께 머무르게 해주는 그 곳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