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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Feb 26. 2019

그 때, 그 찰나의 순간 : 나의 익숙함과 당신의 처음

내겐 처음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처음이 아닐 수도 있는 순간들






얼마나 뛰었다고, 숨이 차올라 조금은 높은 곳에서 바다를 보기로 했다. 그리곤 나의 지난 '처음'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기억이 닿을 수 있는, 닿아 있는 곳부터 시작할 테니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싶었는데 오키나와에서의 '달리기'까지 돌아오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근에 새롭고 인상 깊었던 일들이 이렇게 없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처음이 깃든 시간들이 점점 줄어드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몰려왔다. (언제부터 였을까 '처음' 중)






처음에서 처음까지,
이렇게 짧으면 안 될 것 같은데







2019년 겨울, 논산 선샤인 스튜디오






아, 또 같은 수상 소감이네. 왜 연말 시상식에서의 소감은 매 번 같을까. 숟가락을 하나 얹었을 뿐이라는 배우처럼 조금 더 색다른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줄 순 없는 건가? 그럼, 그로 인해 사람들은 그 배우를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벌써 몇 명 째, 소감을 말하는 사람만 바뀔 뿐 정작 내용은 바뀌지 않는 상황 속 떠오른 생각들.


이거, 이렇게 하면 조금 더 편해지지 않을까? 뼈대를 먼저 잡고 글을 쓰면 - 어떤 논리를 가져갈까 먼저 정리해놓으면 - 매일 출퇴근 시간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 사람들과 함께 다양한 소그룹 형태로 다양한 스터디를 진행하면서 누군가에게 전했던 말들.












그 사람들도
처음이었을 수 있잖아
당신의 처음처럼






당신이 쓴 글, 잊었어? 당신의 처음에 인색하지 않은 것만큼, 다른 사람의 처음에도 반갑게 인사를 건넬 수 있어야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 아, 아차 싶었다. 성급했구나. 싶었다.







숙소로 돌아와, 넋 놓고 바라본 바다를 떠올리며 '아니 보통 바다 색이-'라는 말을 꺼냈는데, 팀원 중 한 명이 내게 던진 말은 '아니 일반적으로 바다 색은-'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둘은 모두 각자의 기준에 맞춰 바다를 기억하고 있었고, 새로운 바다를 익숙한 기준에 따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맞고 틀린 게 아니라 같고 다름의 차이인데 앞선 경험들을 계속 들고 와 비교 아닌 비교를 해왔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처음'이라는 사실을 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였을까 '처음' 중)







2019년 겨울, 논산 선샤인 스튜디오






처음에서 처음까지, 더 많은 기억들을 걸어두고 싶다며 썼던 글을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보통의 나라면 부족한 내 글에 부끄러움을 느꼈을테지만, 그 날의 나는 나의 태도에 대한 부끄러움과 후회가 몰려왔다. 처음이었을 시상식, 글쓰기, 스터디. 처음이었을지도 몰라 - 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면, 나의 처음과 같이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나와 우리에게 반복되던 말이, 그들에게는 처음이라는 생각을 해봤다면 어땠을까. 그럼 한 번은 더 듣고, 한 번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지 않았을까? 나의 처음을 이야기하며, 난 진지한데 - 그렇게 성장하고 있는데. 라는 생각을 했던 지난날이 아쉬워졌다.






처음처럼은 빠르고 느림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대적인 경험이라는 사실을 또 잊고 말았다






2019년 겨울, 전주의 어느 카페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을 때, 내가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은 늘 나의 처음이었다. 심신이 지칠 때, 내가 한 번씩 기댈 수 있는 것 역시 처음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과거의 경험이다. 그때의 나는, 지금과 같은 어려움을 어떻게든 뛰어넘었을 거란 작은 기대 때문이다. 오늘의 첫 경험이라는 노트를 만들어, 짧더라도 매일의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한 가지, 그 사람의 처음처럼. 이라는 상황을 나는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와 그녀가, 훗날 나로 인해 왜곡된
처음처럼을 기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나는 비공식적으로는 셀 수 없을 만큼의 실패를 기록했지만 공식적으로 두 번째 실패와 배움에 대한 내용을 50명의 구성원 앞에서 발표했다. 그 자료를 준비하며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가 처음인데, 어떤 식으로 준비할 거예요? 였다. 어렵지 않아요? 라는 물음과 함께. 그때,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워질 수 있는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며 나는 이렇게 답했다.






처음이니까, 처음이라 좋은 건
내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다음날의 나에게 기댈 곳을 하나더 만든다는 생각으로 만든 자료. 다음에 누군가의 수상 소감을 듣게 된다면. 다음에 누군가의 어려움을 전해 듣게 된다면. 나의 처음을 다시 한 번 떠올리기로 했다. 그와 그녀가, 훗날 나로 인해 왜곡되지 않은 처음처럼을 기억할 수 있도록.












그러고 보니, 지난날의 글의 마지막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었다.

오늘도 처음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될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를 바라며.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마무리 하고 싶다.

오늘도 누군가의 처음처럼을 응원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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