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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Apr 27. 2021

팀 모두가 스스로 참여하고 배울 수 있는 회고 진행하기

회고를 하는 본질적인 이유를 먼저 들여다 봐야 하는 이유



잘하는 것을 더 잘하기 위한 회고의 오류


02.한 번의 실수는 배움이 되고, 두 번의 실수는 실력이 된다.’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창업 때부터 회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회고는 처음의 실수를 모두의 배움으로 녹여낼 수 있는 이야기를 함께 진행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배운 점을 쓰고, 다음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작성하여 팀원들의 피드백을 덧붙이는 과정으로 주 1회 진행했다. 스물다섯, 아무것도 몰랐던 대표와 이제 막 첫 발을 내디딘 팀원들에게 배움의 즐거움과 기록, 공유만큼 동기부여가 잘 되는 것도 없다는 판단도 섞여 있었다. 


그런데, 창업 이후 두 번의 스타트업을 거치며 회고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정해진 시간을 넘기는 일이 잦았고, 말을 아끼는 경우는 많아졌으며, 무엇보다 개선되지 않고 표류되는 내용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나는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팀의 습관이 쉽게 바뀔 수 없다는 생각과, 잘하고 있는 것들을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마침, 잘못된 방법은 무한하지만 옳은 방법은 그렇지 않다며, 선수에게 잘못 플레이한 화면이 아니라 월등히 잘한 장면을 계속 보여준 톰 랜들리 코치(미국 프로미식축구,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이야기를 들었고 이 방법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잘한 것을 더 잘하기 위한 회고 역시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이렇게 잘 해왔으니, 앞으로도 더 잘해보자는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회고는 개인 일기장이 아님에도 단순히 좋았다, 좋지 않았다 등의 판단으로 진행되는 때가 많았다. 이는 구체적인 상황이나 사례를 기반으로 회고가 진행되어야 다음에 대한 논의로 자연스레 이어지고 맺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었다. 몇 번의 회고를 거치며 모두 동일한 기준(창업 때의 ‘배움'과 같은)에 따라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팀 단위 회고는 더 이상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나는 다시 한번 우리 팀의 회고 방식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대로는 회고가 그저 우리가 했던 업무를 되돌아보는 시간에 머무를 테고, 회의실 문을 열고 나오며 금방 잊힐 내용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컸다. 



회고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기


회고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라는 질문에 앞서, 본질적으로 우리는 회고를 왜  하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찾아야 했다. 나는 회고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궁금했고 질문 형태의 첫 항목으로 작성했다. 우리에게 회고란 어떤 의미일까?라는 내용이었다. 질문만 남기면, 구체적인 이야기가 쉽게 나오지 않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내 생각을 함께 적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게 회고란, 나와 팀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하나의 팀에 속한 나의 상태를 한 번씩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개인이 모여 팀을 이루게 되기에, 나를 정확하게 마주하지 못하면 개개인이 지닌 문제도 잘 보이지 않을 거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 


두 번째 항목은 우리가 팀으로 진행, 지금까지 회고에서 나온 이야기를 요약한 내용이었다. 입사 후, 처음 작성한 회고 문서부터 최근에 작성한 것까지 확인하며 중복된 내용들에 집중했다. 겹치는 내용이 많다는 건, 우리가 그만큼 쉽게 해결하지 못한 문제라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잘 해결할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반복된 내용들이 언제부터 쌓이기 시작했는지도 함께 작성, 정리했다. 가장 오래된 항목은 QA 관련 이슈로, 당시 QA엔지니가 별도로 없어 PM인 나와 운영 담당자가 0.5명씩, 1명분을 담당했기에 진행 상황 등이 종종 누락되는 문제였다. 문서 업데이트, 5분 미팅 때 모두가 확인, 채용 등 여러 해결 방법이 회고 때마다 나왔지만 2개월이 넘게 해결되지 못했다. 모두 나열해보니 1회 회고를 기준으로 2회 연속 나왔던 의견은 10개가 넘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개선이 필요한 문제(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언급된 의견, 최초 언급 시기 등으로 내용을 구분해 첫 번째 항목의 질문과 함께 정리했다. 


마지막 항목은 회고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다시 QA 진행 이슈로 돌아가 보면,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개선 방법이 함께 따라붙었지만,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회고 문서와 프로젝트 관리 문서 간 연동 및 동기화가 잘 되지 않았고, 담당자가 명확하게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즉, 무엇을? 에 대한 답은 찾았지만 누가, 언제까지 할 것인지에 대한 세부 내용을 미처 정리하지 못한 탓이었다. 또 하나는 노트북의 존재였다. 습관적으로 모두 노트북을 들고 참여하기에 회고 진행 시, 잠깐 눈을 돌리는 경우가 생겼다. 이런 식으로 회고를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지? 에 대한 질문과 내 생각을 적었고, 앞선 두 항목과 함께 슬랙에 공유할 수 있었다. 


팀원들 역시 회고에 대해 어떻게든 개선해야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던 터라 3가지 항목에 대해 많은 의견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회고 개선을 위한 미팅을 진행했고, 2시간 정도 진행된 회고에서 우리는 항목 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세 가지 항목에 대한 기존 답과 미팅을 통해 추가로 나온 의견을 하나의 표로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정리했고 이를 세 가지 색의 포스트잇으로 회의실에 붙여 다시 한번 팀원들을 만났다.   


    1열 : 우리에게 회고는 어떤 의미인지?   

    2열 : 지금까지 우리가 진행한 회고에서 중복된 내용은 무엇인지?  

    3열 : 우리가 회고와 문제 해결에 집중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1열, 회고에 대한 의미를 묻는 질문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내용은 성장과 배움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일을 해왔으며, 부족하거나 아쉽게 느껴지는 점을 구체적으로 바라보고 싶은데 이런 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도 함께 언급되었다. 2열과 3열은 함께 바라봐야 할 내용들로, 문제 해결에 집중하지 못한 이유를 중점으로 살펴봤는데 회고에서 실제 업무로 반영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프로덕트와 관련된 내용인지, 업무 방법에 대한 내용인지 등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즉, 기존까지는 문제를 찾고 단순 나열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회고와 다음 스프린트(일정)가 잘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몇 가지 기준을 정해 우리에게 맞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팀 단위로 배움과 성장을 위한 시간이 될 수 있게 하기  

    언급된 문제들을 우리가 정한 기준에 따라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게 하기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의견을 나눌 수 있게 하기  

    구분에 따라 정리된 문제는 정의에서 끝나지 않고 구체적인 해결 방법으로 연결될 수 있게 하기  

    기존 우선순위와 함께 비교해, 일정에 반영하거나 다음에 다시 확인할 수 있는 환경 만들기  



우리 팀에게 잘 맞는 회고 방법 찾기


1. 팀 단위로 배움과 성장을 위한 시간이 될 수 있게 하기

구글링, 주변 기획자들과의 대화로 회고에 필요한 여러 템플릿과 방법 등을 전해 들었는데, 그중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은 4L(Liked, Lacked, Learned, Longed for)이었다. 좋았던 점, 부족하거나 아쉬운 점과 더불어 ‘배운 점'을 매 번 함께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또 같이 작성될 ‘앞으로 ~을 할 것이다’에 해당하는 내용은 우리가 아쉬운 점을 개선하는데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있었다. 팀원들 역시 이 방법을 가장 선호했고 다음 회고부터 화이트보드에 4L에 해당하는 내용을 시작과 동시에 작성하기로 했다. 


2. 언급된 문제들을 우리가 정한 기준에 따라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게 하기

회고를 통해 언급되는 문제점들의 범위는 꽤 다양하다. 기존에는 이를 별도 구분하지 않아 실제 업무로 이어지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기에 우리는 크게 프로덕트, 프로세스, 기타 등 3가지 기준에 따라 구분하기로 했다. 프로덕트는 서비스 기능 개선과 같은, 프로세스는 커뮤니케이션 방법 등과 연관된, 기타는 채용 및 퇴사 등에 포함되는 내용으로 정리했다. 4L에 따라 작성된 내용들은 이제 3가지에 따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팀 단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아닌 문제를 구분하고, 각 상황에 맞는 해결방법을 고민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3.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의견을 나눌 수 있게 하기

4L 등의 방법과 문제들에 대한 팀 기준을 적용한다 하더라도 결국 의견이 추상적이면 다음 단계로 진행되기 어렵다. 이미 우린 좋았다, 좋지 않았다 등의 판단으로 문제를 대한 경험이 있었기에 앞으로는 ‘구체적인 사례와 경험’에 기반해 내용을 작성하고 의견을 나누기로 했다. 그래야 문제 해결을 위한 의견 역시 우리 팀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대입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4. 문제는 정의에서 끝나지 않고 구체적인 해결 방법으로 연결될 수 있게 하기

우리가 문제 해결 및 개선에 집중하지 못했던 이유는 구체적이지 않은 해결방법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린 개선 방법이 행동과 실행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진행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에 대한 답만 정리했다면, 앞으로는 언제, 어떻게 진행할 것이며 개선점이 잘 적용되었는지를 측정할 목표와 방법, 일정과 담당자까지 함께 생각하고 적용하기로 했다. 


5. 기존 우선순위와 함께 비교해, 일정에 반영하거나 다음에 다시 확인할 수 있는 환경 만들기

구체적인 해결방법이 나왔다 하더라도, 우리가 처리할 수 있는 업무는 한계가 있기에 프로덕트, 프로세스, 기타 등 구분에 따라 우선순위를 꼭 설정하기로 했다. 프로덕트와 관련된 문제는 기존 작성된 우선순위와 최종 확인 후, 진행 일정을 정하고 반영되지 못한 내용들은 백로그 문서에 통합해 다음 논의 시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을 기준으로 정했다. 






세 가지 질문으로 시작해, 다섯 가지 기준으로 정리된 회고는 진행 횟수에 따라 점점 팀에 녹아들었고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추가된 것이 있다면 분기별로 회고를 종합하는 시간이다. 중복된 내용이 방치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팀으로서의 개인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고 부족한 점을 개선했는지 함께 확인하고자 하는 목적이 컸다. 


지금도 나는 개인 회고와 팀 회고를 병행하고 있다. 회고와 관련된 글은 당시보다 훨씬 많아졌고, 하나의 문화가 되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남들이 많이 쓰는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맞는 방법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자고 해서 하는 회고가 아니라, 팀원 모두가 스스로 참여하고 배울 수 있는 방법으로의 회고는 우리가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길잡이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회고는 꼭 진행하되 우리에게 맞는 방법인지 확인하는 과정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3년 07월, 제 첫 도서가 출간되었어요. 제목은 ’10년 차 IT 기획자의 노트’입니다. 브런치 '기획자가 일하는 방법'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사수 없이 일하는 어려움을 저보다 조금 늦게 출발한 분들이 덜 느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는데요. 같은 맥락에서, 9개 노트(기록)를 바탕으로 기획과 PM의 주요 업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리한 내용입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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