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열두시 Feb 18. 2021

한 번의 실수는 배움이, 두 번의 실수는 실력이 된다

실패에 대처하기 위한 우리의 자세



메일 답장 '0개'를 통해 알게 된 것


건강한 간식과 마시는 차를 하나의 박스로 구성해 정기구독 서비스로 제공하며 우리가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중소기업들이 만드는 품질 좋은 제품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또 하나는 사람들이 건강한 주전부리를 스스로, 편하게 받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 


첫 번째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좋은 제품을 가져오는 일이었다. 자신있는 일이기도 했다. 나와 공동창업자는 모두 대학과 인턴 생활을 하며 수없이 많은 제안서를 작성했기 때문이다. 서비스 소개와 함께 우리가 제품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리고 전달할 것인지, 피드백은 어떤 방법으로 수집해 정리할 것인지 30페이지 분량의 제안서를 먼저 제작했다. 그리고 건강한 간식, 차 등의 키워드로 검색해 업체와 생산하는 제품을 정리했다. 일주일 간 작업 끝에 100여 곳의 업체 리스트가 완성됐고 우린 월요일 오전 제안서를 첨부한 메일을 하나씩 발송했다. 


그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다시 일주일을 기다렸지만 단 한 곳에서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동일한 곳에 다시 메일을 보낼 순 없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나름의 테스트를 한다며 메일 내용을 조금씩 수정해가며 추가로 발송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제안서 작성과 메일 발송 때와는 다른 분위기가 엄습했다. 모두 풀이 죽어 사무실은 고요함 그 자체였다.


얼마 뒤, 나는 코엑스에서 열리는 중소기업대전 같은 행사에 팀원들과 함께 찾아갔고 그곳에서 만난 한 업체의 홍보담당자를 통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생산'에 초점이 맞춰진 업체는 대부분 홍보담당자가 없거나 있어도 우리가 아는 홍보가 아니라 경리 업무를 함께 보는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메일보다는 전화가, 전화보다는 직접 방문을 하는 편이 피드백을 빨리 받을 수 있을거란 내용도 함께 들었다. 우리에게 익숙하다는 이유로 받는 사람의 상황과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실수


새로 알게 된 업체의 명함을 받아 문서에 정리하며 이번에는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업무 시간에 맞춰 한 곳씩 먼저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와 간략한 소개 그리고 만나 뵙고 설명드리겠다는 내용을 곁들였고 다행히 2곳에서 한 번 찾아오라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찾아뵙기 전, 팩스와 메일을 통해 제안서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가 처음 방문한 곳은 경기도 평택의 한 공장으로 하루 한 봉 견과류를 만드는 곳이기도 했다. 안내를 받아 담당자 두 분과 미팅을 시작했는데, 인사 후 첫 번째 말은 우리를 다시 당황하게 했다. 어떤 서비스인지, 뭘 원하는지 설명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미팅 일정이 잡혀 들어오긴 했는데, 어떤 미팅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제안서가 문제였다. 30페이지는 1분 1초가 바쁜 그들에게 꼭 읽어봐야 할 내용이 아니라 귀찮은 존재였고, 슬라이드에 작성된 폰트 사이즈가 크지 않아 자리에 앉아 집중해서 봐야 하기에 책상에 올려진 채 미팅 때까지 잊힌 것이다. 노트북을 준비해 갔고, 설명을 잘했기에 첫 번째 제품을 받아올 수 있었지만 메일 발송에 이어 우린 또 한 번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원하는 것만 가져오려는 것에 집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미팅을 했던 팀원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고, 우린 연달아 세 번에 가까운 경험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 같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눴는데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각자가 처음 겪은, 실수에 가까운 경험은 스스로 삼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  

    첫 실수이기에 업무와 관련된 회고 시간엔 잘 공유되지 않는다는 것  

    시간 순으로 정렬하면 팀과 조직에게는 반복되는 실수인 경우가 된다는 것  



팀 입장에서 실수를 바라보기


첫 번째 미팅에서 겪은 경험을 먼저 공유하지 않았다면, 두 번째 미팅을 진행한 팀원은 다음엔 그렇게 하지 않아야겠다.라는 생각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되돌아보면 나 역시 처음 보낸 메일에 대한 답장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전화가 가능성이 더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음부턴 이렇게 해야겠다는 사실을 홀로 생각했을 뿐이었다. 


각자가 이런 생각과 과정을 겪고 있었고, 팀 관점에서는 큰 손실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우린 회고 시간에 처음의 실수를 모두의 배움으로 녹여낼 수 있는 이야기를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지금도 내가 ‘오늘/매일의 배움'이라는 이름으로 작성 중인 이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게 정리할 수 있다.  

    매일 배운 점을 작성한다  

    배운 점을 다음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의견을 덧붙인다  

    업무 관점이라면, 팀원들과 공유 후 피드백을 함께 덧붙인다  


예를 들어 생산업체에 첫 연락을 할 땐 이메일보다 전화가 더 효율적이다. 가 오늘의 배운 점이라면, 전화를 언제 하면 연결될 확률이 높아질 수 있는지, 전화 시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전달해야 할 정보가 무엇인지 등 다음에 전화할 때 개선 또는 생각해볼 수 있는 내용을 작성하는 것이다. 또 나와 같은 업무를 한 번 이상 경험한 팀원들과 간략하게 논의한 내용까지 더해지면 메일을 보내 답장을 하나도 받지 못한 우리의 실수가 전화로 미팅까지 연결되는 확률을 높이는 배움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실수라는 표현 대신 우리가 함께 하는 과정 속 배움이라는 인식이 심어지면서 점점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은 내게도 실수했을 때 바로 기록을 하고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때 다시 찾아보며 경계심을 갖는 습관으로 이어졌다. 여전히 실수가 있지만, 두 번의 실수로 이어질 확률을 줄여주는 장치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창업의 끝, 실패노트


사업자 등록을 한 뒤 1년, 우리 서비스는 더 이상 유지되지 못했다. 월 별 박스는 매 번 완판 되었지만 투자 유치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상황이 현금 흐름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했고, 박스를 통해 접한 상품을 추가 구매할 수 있는 쇼핑몰 역시 결국 오픈하지 못해 추가 수익으로 이어질 수 없었다. 팀원들에게 더 이상 서비스를 유지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전한 뒤 한참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수없이 재생되는 ‘만약에'라는 가정이 괴로웠다. 결국 실패라는 생각의 끝에 더 큰 후회와 아쉬움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창업에 쓴 시간 동안 친구들은 소위 말하는 좋은 기업에 취업을 하는 등 졸업 후 첫 목표에 무사히 도달하고 있었기에 허탈감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을 정리하며 팀원들과 틈틈이 작성한 ‘배움' 노트를 다시 펼쳤다. 빼곡히 적힌 우리의 배움이 꽤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펜을 들어 다음장 첫 줄에 ‘만약에'로 시작되는 가정들을 하나씩 적고, 다시 다른 색으로 ‘다음에는'이라는 말을 이어 붙였다. 배움을 적고, 개선할 점을 함께 적었던 기존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용자 리뷰를 긍정, 부정으로 나누는 것보다 활용 가능한 하나의 콘텐츠로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긍정적인 리뷰는 핵심만 요약해 구독 화면 등 사용자 전환을 위한 연결고리로 활용하기  

    많은 채널을 운영하는 대신, 몇 가지 채널에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서비스에게 딱 맞는, 적합한 채널을 집중적으로 운영한 뒤 하나씩 확장해나가기  


다음에는, 이렇게 해보자.라는 내용으로 작성한 또 하나의 노트에 나는 일부러 ‘실패 노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첫 번째 이유는 작고 큼에 상관없이 실패와 실수에 대한 경각심을 갖기 위해서이고 두 번째 이유는 실패를 통한 배움을 잊지 않고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건, 꽤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함을 의미한다. 종종 지금까지 했던 일이 아닌 낯선 일을 해야 할 때도 있고, 상황에 따라 업무 방법과 과정을 달리해야 하는 때도 있다. 그래서 더욱 중요하게 다가오는 건 우리가 그런 과정을 대하는 태도다. 비록 실패로 끝난다 하더라도, 실수를 했더라도 배움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한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눈을 뜨면 노트북을 켠 뒤 노션에 작성된 ‘매일의 배움'을 먼저 확인한다. 작게는 어제의 길게는 이번 주 작성된 내용을 보며 혹시 같은 상황을 마주했을 때 배움은 잘 써먹고, 실수는 줄이기 위해서 말이다. 한 번의 실수는 누구에게나 값진 배움이 되지만, 두 번의 실수는 실력이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매일의 배움은 내게 무엇보다 소중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2023년 07월, 제 첫 도서가 출간되었어요. 제목은 ’10년 차 IT 기획자의 노트’입니다. 브런치 '기획자가 일하는 방법'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사수 없이 일하는 어려움을 저보다 조금 늦게 출발한 분들이 덜 느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는데요. 같은 맥락에서, 9개 노트(기록)를 바탕으로 기획과 PM의 주요 업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리한 내용입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