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도, 지인들도 관여할 수 없는 것으로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창업과 위자드웍스, 오드엠을 거친 나는 오지큐라는 스타트업에서 또 다른 도전을 하게 되었다. 평소 콘텐츠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았던 내게, 네이버로부터 가능성을 인정받아 투자받은 환경과 국내외 다양한 국가에서 사용되는 글로벌 서비스를 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다만 직면한 과제도 만만치 않았는데 무엇보다 조직 특성상 기능 단위 팀(서비스 기획)과 서비스 단위 팀(담당 서비스)을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이전과 같이 나는 입사 초기 팀원이자 기획자로 팀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방법,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 등을 고민하고 적용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함께 일하는 것의 중요성을 매일 깨닫고 느꼈기 때문이다. 번아웃 등 나에 대한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는 경우를 제외하곤 서비스와 팀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일을 해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 자신은 정체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진행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본연의 업무와 관리 역할이 겹치며 이런 상황은 계속되었고, 나는 주변 상황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라는 ‘탓'을 점점 많이 하게 됐다. 홀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점점 많아지니 급한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많아진 것이다. 스스로 삼키지 못하고 변명으로 내뱉는 횟수도 늘어났다.
결국 하고 싶어서 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균형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고 책임의 압박은 더 크게 다가왔다. 더 큰 문제는 나로부터 출발하는 해결방법이 아니라 회사와 조직이라는 외부로부터의 해결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면담을 통해 일부 조직 개편에 대한 이야기와 업무 방식에 대한 변화, 협업 툴 사용 등을 제안했고 실제 일부가 채택되어 시범적으로 운영되었다. 하지만 내 상황은 제자리였다. 더 나아진 것이 없었다.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처음 한 시점이기도 했다.
나는 그때까지 동기부여에 대해 따로 생각해본 적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의 즐거움은 의심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명확히 알고 있음에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레 요코는 <일하지 않습니다>를 통해 인간은, 상상하는 그대로 보다 가끔 반전이 있는 쪽이 훨씬 재밌다고 했지만, 그날의 나는 아니었다. 번아웃 때와 같이 나와의 만남을, 나만의 모습을 다시 그려볼 수 있는 시간으로 생각하고 다시 나아가고자 했지만 모든 게 낯설게 시작해 낯설게 끝나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재밌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달려왔을 뿐 내 일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에 대해서는 더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순간이었다. 일과 태도에 정답은 없지만, 기대한 만큼이라는 기준을 많이 벗어났던 나였기에 나는 그 낯섦에서 한동안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쉽게 답을 찾지 못할 거란 생각에 나는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해당 분야와 관련 업무에 대한 흥미가 첫 번째, 더 잘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두 번째, 그리고 일에 대한 개개인의 철학이 세 번째. 내 주변 사람들은 동기부여를 발현시키는 방법으로 크게 세 가지를 활용하고 있었다. 세부 내용은 조금 달랐지만 내가 발견한 공통점은 ‘개인, 즉 나로부터 시작', ‘좋아하는 일이기에 더 중요한 나름의 명확한 가치와 기준'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내가 단순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지금까지 외면해왔던 내용이기도 했다.
지인들과 대화를 통해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재미있겠다, 라는 기준 하나로 업무를 대하는 건 나를 더 힘들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 창업을 떠올렸다. 내게 창업 전, 후로 끊이지 않고 연결되는 키워드는 배움이었다. 물론, 지금까지는 재미라는 조미료가 늘 함께 했었기에 본연의 맛을 잠시 잊고 있었지만 계속되는 경험을 통한 배움 그리고 성장은 내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기준이자 일을 하는 이유와 가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기준을 명확하게 가져가기 위해 나는 내가 포기할 수 있는 가치도 함께 생각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워라밸'이었다. 야근을 하게 되는 건, 내가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일부 반영된 것이며, 되려 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빠르게 찾을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스레 ‘책임감'이라는 키워드와도 연결되었다. 재밌겠다!라는 기준, 하나라도 더 하면 많이 배울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책임감의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깊게 인지하지 못했다는 판단이었다. 앞으로 내가 동기부여라는 씨앗을 더 많이 움트게 하기 위해서는 나의 배움과 성장 그리고 흥미를 넘어 책임질 수 있는지를 함께 고려해야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결국, 내가 일을 대하는 태도를 정의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를 이제야 설정하게 된 것이다.
더 잘하기 위한 노력도 조금 비틀어 정리했는데, 모호한 정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 이 책을 쓸 수 있는 기회도 그때의 결정 덕분으로 늘 해왔던, 앞으로도 계속할 일이기에 놓쳤던 과정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한 번씩 갖기로 했다. 창업 이후 실패 노트와 기획자의 노트 등을 꾸준히 작성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더 자주 스스로가 개선해야 하는 점들을 기록하기로 한 것이다. 또 앞으로 3년, 5년을 거쳐 내가 어떻게 커리어를 밟아 나가고, 어떤 단계를 거쳐 나가야 하는지도 함께 살펴봤다. 부족함을 알고, 앞으로 내가 가야 할 방향을 더 정확히 알 수 있다면 무엇을 채워 넣어 준비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다가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기준에 이제 나는 다양한 경험을 통한 배움과 성장이라는 내용을 채워 넣게 되었고, 더 잘하기 위한 기준에는 지금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 앞으로의 나를 바라보며 그곳에 더 안정적으로 닿을 수 있는 과정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3년, 5년 뒤 내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불시착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다짐이 생겼고, 단단해졌다. 그리고 이는 모두 회사가 내게 해줄 수 없는 것들이기도 했다.
틈틈이, 한동안 정리하고 나니 확실히 이전보다 선명해짐을 느꼈고, 재미없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으로 이건 싫어요.라고 거절했던 이전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무엇보다 내가 속한 회사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문제는 존재할 수밖에 없고, 결국 나 자신이 어떤 과정에 있는지, 어떤 생각으로 일을 대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면 회사 탓을 하며 스스로를 스스로가 정체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스스로가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지금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노트를 살펴보며 내가 가고자 하는 과정과 길 속에 있는지 살피고 확인한다. 그렇게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 다짐하는 시간을 잊지 않고 있다. 다행이라면, 하기 싫은 일을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것.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에 대한 즐거움의 확신이 명확하다는 점이다. 하기 싫은 일을 단기 보상으로 버텨내는 건 그리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고 싶은 일을 더 즐겁게, 꾸준히 성장하며 할 수 있는 나의 여정을 한 번씩 확인하고 단단하게 만들 수 있었으면 한다. 그 기준은 회사도, 내 주변의 지인들도 관여할 수 없는 것으로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동기부여란 결국, 번아웃을 견디고 이겨내는 것처럼 내 스스로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3년 07월, 제 첫 도서가 출간되었어요. 제목은 ’10년 차 IT 기획자의 노트’입니다. 브런치 '기획자가 일하는 방법'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사수 없이 일하는 어려움을 저보다 조금 늦게 출발한 분들이 덜 느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는데요. 같은 맥락에서, 9개 노트(기록)를 바탕으로 기획과 PM의 주요 업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리한 내용입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