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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May 24. 2021

나를 더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피드백 활용 방법

스스로를 교정하는 일로 피드백 대하기



결코 달갑지 않았던 피드백


너라면, 이 곳을 떠나더라도 다시 꼭 만나 일하고 싶어. 너같이 꼼꼼하게 기록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기획자도 없을 거야.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내가 마지막 인사를 건넬 때 한 번씩 전해준 말이다. 같이 일했던 PM 중 최고였어요 성규님. 난 이 말이 담긴 메신저를 캡처 해 힘이 들 때 한 번씩 꺼내보기도 했다. 감사한 일이다. 함께 일한다는 의미, 기획자로 내가 무엇을 더 잘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끝에 들은 말이기에 더 그렇다. 


기분 좋은 말이지만, 늘 경계해야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스물다섯의 창업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지만 반대로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 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 부족함을 당장, 스스로의 힘으로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에 주변 선배들의 피드백을 더없이 소중하게 생각했다. 문제는 그 피드백이 때로 상처가 되어 깊게 박힌다는 사실이었다. 그 경계는 참 애매하지만, 상대가 단편적 정보를 바탕으로 말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나 스스로가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 때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선의로 날아온 피드백이 내겐 날 선 창으로 파고들 때가 있었고, 이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피드백을 받는 것을 머뭇거렸다. 때로는 좋은 것만 골라 듣고, 좋은 것만 골라 보는 경우도 있었다. 내 생각이 맞았으면 하는 바람과, 상대방이 틀렸으면 하는 바람 그리고 상처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멋대로 뭉쳐진 결과기도 했다. 한동안 그 상태를 유지하다 창업 5년 만에 실패를 맛본 선배와의 술자리에서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선배가 쓴 맛에 익숙해지는 방법을 결국 알아야 하고, 적당히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건넸기 때문이다. 피드백을 받길 바라면서도, 피했던 가장 큰 이유가 무조건 적인 수용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홍보대행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던 때, 유일한 사수가 내게 해준 말의 의미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남들이 오가다 쓱 던지는 말들은 피드백이 아니라 잔소리, 참견이라는 말이었다. 내가 요청하지 않은 피드백이기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말도 같이 들었다.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방법의 중요성을 알려준 말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모든 피드백은 소중하다, 라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씩 모두 신경 쓰다 보면 내가 지켜야 할 기준이 흔들릴 수밖에 없고, 기준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 기준에서 벗어난 것들을 신경 쓰기 위해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피드백을 더 구체적으로 요청하고, 내 것으로 흡수하기 위한 과정이 더욱 중요하게 다가왔다. 


그날 이후 스스로를 교정하는 일로 피드백을 대하기로 했다. 쓴소리나 피드백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나만을 위한 교정 방법이란 의미를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한쪽으로 가방을 많이 들고 다녀 어깨 균형이 살짝 맞지 않는 걸, 누군가 말해주거나 병원에서 진찰을 받지 않고는 모르는 것처럼 나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사실을 들을 수 있는 기회로 말이다. 잘못된 방법으로 무식하게 오래 달리는 것만큼 무모한 일도 없다는 선배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나는 나보다 나를, 우리보다 우리를 더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 내게 전해진 교정지를 통해 나의 틀림을 인정하고 바꿔갈 수 있도록 쓴맛에 더 익숙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위한 교정지 활용법


피드백을 받고자 할 때 상대방에게 전달할 내용은 아니지만, 나는 앞서 말한 ‘교정지'에 해당하는 문서를 만들기로 했다. 진단표처럼 내가 더 적극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로 내용을 받아들이기 위해서였다. 가장 먼저 작성한 내용은 대상이었다. ‘나'라는 주체가 있지만, 더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상대가 피드백을 제공하기 위한 배경이 뚜렷해야 엇나가는 내용이 없을 거란 판단도 있었다. 그렇게 어떤 피드백을 받고 싶은지? 에 대한 답을 요청 전 작성할 수 있는 곳이 생겼고, 바로 아래로 내 생각을 덧붙일 수 있는 공간을 함께 마련했다. 잘 요청하고,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필요한 내용을 하나씩 추가했다.


(1) 피드백 누구에게 받을까?

내가 창업 이후 누구에게 피드백을 요청했는지 생각해봤다. 가장 큰 공통점은 나와 비슷한 업무를 하거나 나보다 앞서 창업을 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중에는 B2C가 아니라 B2B 전문가도 있었고, 서비스 기획이 아닌 광고 기획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전문성을 깎아내리려는 건 아니지만, 내가 담당하는 서비스 분야 등 연결고리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서비스를 만들 때 가장 필요로 하는 그룹을 찾고 끊임없이 파고드는 것처럼 피드백 역시 앞으로는 특정 분야에 대한 경험이 있는지 등 세분화된 조건에 따라 요청하기로 했다. 받은 피드백을 잘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드백을 요청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해 사전에 잘 정리하고 필요에 의해 선택, 요청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번 이상의 피드백을 받았다면, 어떤 식으로 내용이 전달되는지도 한 번씩 들여다봐야 한다. 피드백에 익숙하지 않거나, 상황에 따라 적합한 내용을 받을 수 없는 경우라면 이후에도 같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2) 피드백 어떻게 요청할까?

요청 시 메일, 메신저 등으로 전달한 내용도 함께 들여다봤다. ‘선배님, 다음 달 정기배송에 포함되는 업체에게 전달할 마케팅 리포트인데, 전반적인 내용 구성을 한 번 봐주실 수 있을까요?’ 등 사전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많은 의견을 전달받는 게 목적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명확한 의견을 받는 것이 목적이어야 하는데 이전까지 나는 상대방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의견을 요청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때문에 문서라면 해당 내용을 작성하게 된 이유와 보게 될 사람 등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물론, 최종안에 속하는지 아니면 이제 막 초안 성격으로 작성을 끝낸 단계인지 등에 대한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면 문서를 전달한 뒤, 내용에 대한 의견보다 ‘이거 완성된 거야?’, ‘이전에 전달한 문서는 없었어'? 등 배경에 대한 질문을 더 많이 받았다. 이는 피드백을 제공하는 사람에겐 더 많은 시간 투자를 필요로 하고, 피드백을 요청한 사람 역시 의도한 내용을 있는 그대로 전달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피드백과 교정을 왜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 상대방 역시 같은 상황에서 판단하고 살펴볼 수 있는 정보를 꼭 정리해 함께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3) 피드백 어떻게 받아들일까?

피드백을 듣고 난 뒤의 태도도 중요하다. 최초 원하는 의도에 맞는 내용인지에 대한 판단은 물론, 나의 틀림을 인정할 수 있는 마음가짐 역시 필요하다. 누구에게, 어떤 피드백을, 어떻게 받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더라도 내용은 빗나갈 수 있다. 그러니 천천히 읽어보며 받아들여야 하는지 먼저 확인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적합하다는 판단이 서면 나의 의도나 생각과 어떤 점이 같고, 다른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 피드백을 작성하는 공간 아래 내 생각을 덧붙일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 놓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내가 피드백을 받으며 많이 한 실수 중 하나는 한 곳에 모아놓고 어떻게 반영할지 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이디어를 작성하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더 고민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경험이기도 했다. ‘시장 규모를 보여줄 수 있는 추가 자료가 있었으면 좋겠어'라는 내용이라면, 기존 문서 흐름에서 어디에  자료를 배치하면 좋을지, 어떤 자료가 가장 신뢰할 수 있을지 등의 생각을 바로 입력해두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4) 피드백 어떻게 활용할까?

교정은 한 번에 이뤄질 수 없다. 잘 정리하고 꾸준히 들여다봐야 한다. 처음엔 진행 중인 프로젝트 단위로 피드백을 정리했지만, 프로젝트가 끝난 뒤 다시 찾아보는 게 쉽지 않았다. 또 공통적으로 나오는 내용을 꾸준히 추적하는 것 역시 어려웠다. 그래서 피드백을 조금 더 넓은 단위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예를 들어 문서 작성, 커뮤니케이션 등 나의 업무 단위와 엮어 동일한 업무를 할 때 이전에 받은 피드백과 내가 함께 덧붙인 생각을 미리 살펴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정리 방법을 바꿨을 뿐인데 효과는 꽤 컸다. 기존에 작성하던 기획 노트(기획 구성 요소에 대한 경험과 자료 정리), 리서치 노트(눈에 띄는 사례 분석  및 생각 정리), 매일의 배움을 정리한 노트와 함께 들여다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놓친, 부족한 점들이 무엇인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되어 주었고 같은 피드백을 다시 요청하는 실수를 줄이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피드백을 받는 입장에서 작성했지만, 사실 피드백을 줄 때도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종종 내게 이 피드백을 왜 요청하지?라고 생각하는 메시지를 받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핀테크와 관련된 정책 등을 묻는 경우다. 또 와이어프레임 링크를 전달받고 열심히 피드를 작성, 공유했는데 아직 내부 논의 단계로 최종안이 아니라는 내용이 돌아올 때도 있었다. 나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로 피드백을 요청했기에 발생한, 나도 자주 했던 실수다. 이제는 이런 상황에서 내가 겪은 경험과 현재 어떻게 피드백을 요청하고 정리하는지를 간략하게 전달한다. 피드백은 양쪽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함은 물론, 도움이 될 수 있는 과정으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피드백은 더 이상 내게 써서 금방 뱉어버리는 존재가 아니라 그 맛을 음미하며 오래 씹어 삼켜야 하는 약으로 느껴진다. 창업 이후 사수가 한 번도 없었던 내 주변 상황의 한계를 조금씩 넘어설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니 피드백을 요청하고 전달받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 글을 계기로 한 번씩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쌓인 내용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어느 곳에서도 쉽게 처방받을 수 없는, 나만을 위한 교정지로 활용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2023년 07월, 제 첫 도서가 출간되었어요. 제목은 ’10년 차 IT 기획자의 노트’입니다. 브런치 '기획자가 일하는 방법'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사수 없이 일하는 어려움을 저보다 조금 늦게 출발한 분들이 덜 느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는데요. 같은 맥락에서, 9개 노트(기록)를 바탕으로 기획과 PM의 주요 업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리한 내용입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어요!



이 글을 바탕으로, 퍼블리에 더 깊이있는 내용을 발행하게 되었어요. (2021.08)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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