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 메모와 글쓰기
나는 지금도 글을 쓰는 시간이 가장 좋다. 내가 쓰는 글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로 하나는 브런치를 통해 발행하는 에세이, 또 하나는 블로그와 뉴스레터를 통해 발행하는 서비스 분석, 마지막으로 업무와 개인에 집중하고자 매일 쓰고 있는 기획자의 노트에 들어가는 내용이다. 언제 글을 쓰고, 발행하는 채널들을 관리하냐는 질문도 많지만 당연히 처음부터 지금 모습은 아니었다. 다만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명확한 동기와 순간 그리고 상황이 있었고, 나중에는 시간이 더 없을 거란 마음으로 조금씩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꾸준함을 기준으로, 가장 먼저 쓰기 시작한 글은 ‘02.한 번의 실수는 배움이 되고, 두 번의 실수는 실력이 된다’를 통해 말한 업무 관련 내용이었다. 매일이 배움의 연속이었고, 같은 실수를 하기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았던 상황 속에서 글쓰기라는 기록은 팀은 물론 내게도 반드시 필요한 행동으로 다가왔다. 쓰는 것만큼 자주 들여다보는 것도 중요하기에 처음엔 업무 시간에 하나씩 작성한 내용을 주말 아침에 일어나 다시 확인하려는 노력도 병행했다. 또 글이 담기는 ‘공간' 이름의 중요성도 이때 깨달았는데, 덕분에 자극적이지만 ‘실패 노트'라는 제목이 붙었다. ‘매일의 배움’, ‘기획자의 모바일앱 뜯어보기' 등 이후에도 이름을 나름 신중하게 작성하게 되었다.
좌뇌와 우뇌 둘 다 포기할 수 없다는 거창한 목표로 작성하기 시작한 에세이는 번아웃과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 ‘09.번아웃에 빠졌을 때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에서 풀어낸 것처럼 번아웃을 계기로 업무를 하는 나와, 업무를 하지 않는 나를 조금 더 명확하게 분리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그중 ‘사진'은 내게 늘 우선되는 일이었다. 사진을 현상하는 일을 직접 할 수 없었기에, 나는 촬영하는 순간의 감정과 촬영 후 다시 봤을 때 떠오른 것들을 적었고 비슷한 주제에 해당하는 내용을 퍼즐 맞추듯 노트에 기록했다. 비슷한 시기에 카카오 브런치가 베타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어 앞서 기록한 내용을 에세이로 발행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에세이를 쓰는 습관은 기획이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딱딱함'을 벗어날 수 있는, 사소함과 익숙함을 조금씩 비틀어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업무 관점에서는 서비스를 개발하는 입장이 아닌, 사용자 입장에서 이해하기 쉬운 문구를 작성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여러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는 이성적 판단이 중요하지만, 사용자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는 감성적 연결고리가 일부 효과적인 결과를 이끌어낸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08.앱스토어 내 업데이트 노트를 자주 살펴봐야 하는 이유’에서 자세히 소개한 ‘모바일 앱 뜯어보기' 등 외부 서비스에 대한 분석글은 비교적 늦게 시작되었다. 운영 중인 채널 ‘지금 써보러 갑니다'에 더 다채로운 내용을 전하고 싶었던 바람과 더불어 우리 서비스가 아닌, 다른 서비스는 어떤 의도를 갖고 기능을 개선하는지 나름대로의 공부를 하고 싶었다. 중요하게 생각한 기준은 공유였다. 일기를 쓰듯 홀로 정리하는 게 아니라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는 내용을 글로 쓰고, 공유해 피드백을 받으며 더 나은 생각으로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 세 가지를 통해, 각각 기획 관점에서 글쓰기의 중요성을 정리해보면, (그리고 내가 부사수와 대화할 기회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언급하는 글쓰기의 중요성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해 준다는 점이 첫 번째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어떻게 잘 쓸 수 있는지 등 글 작성 과정은 물론 작성 전, 후 자료조사, 피드백 등을 통해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글과 기획에 공통적으로 포함되는 ‘논리'를 탄탄하게 해주는 기회로도 연결된다. 처음엔 나도 일단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생각한 내용을 바로 작성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쓰기 전 구조화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는 제안서 작성이나 스펙 문서 등 업무 관련 문서를 만들 때도 최소한의 흐름이 어색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두 번째는 트렌드, 정책 등 흐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IT, 테크는 정말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 중 하나이며 스타트업은 이런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해야 하는 곳이다. 어떤 글을 써야 할까?라는 과정에서 글감을 찾다 보면 기획자의 관점에서 놓쳐서는 안 될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게 되고, 꼭 글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다양한 정보를 확인하고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일정 시간이 흐르면 좋은 정보를 제공하는 곳을 하나, 둘 알게 되고 따로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알아서 정보가 들어오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나는 메일, 피들리(RSS)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일부는 내, 외부에 공유하기도 하며, 또 일부는 실제 구체적인 글로 작성하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 브런치, 티스토리 등 글만 쓰면 되는 환경이 잘 갖춰진 국내에서 굳이 직접 하나씩 설치해가며 완성해야 하는 워드프레스를 선택한 이유는 나만의 서비스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상대적으로 ‘책임'에서 자유로운 나만의 채널이자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워드프레스와 같은 설치형 블로그의 장점은 다양한 플러그인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으로, 직접 실험을 진행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제공해준다. 뉴스레터 구독을 유도하기 위한 배너를 띄우는 시점과 공간을 변경해 보기도 하고, 글이 더 많이 공유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도 하며, 어떤 검색어를 통해 꾸준히 사람들이 들어오는지 등을 확인해 유입 경로를 다양하게 만드는 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회사에서 담당하는 서비스라면 불가능한 여러 행동을, 나의 공간에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애드센스 등을 활용한 부가수익도 적당한 동기로 이어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하게 되는 수많은 경험과 배움은 글쓰기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네 번째는 글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생각지 못한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부족함이 더 많은 사람임에도 이 내용을 쓸 수 있는 이유는 꾸준히 글을 쓰며 채널을 관리해왔기 때문이다. 특정 주제에 대한 글을 계속 쓰다 보면 댓글, 메신저 등을 통해 같은 업무를 하거나, 스타트업에서 처음 일하게 되었거나,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연결고리가 생긴다. 실제 나는 지금까지 연락하는 업계 사람들을 미팅이나 네트워킹 행사 등이 아니라 작성한 글이 발행되는 공간을 통해 알게 되었다. 또 외부 채널에서 글을 활용하거나, 기고를 할 수 있는 접점도 만들 수 있으며 이직 시 가장 좋은 포트폴리오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섯 번째는 꾸준함을 전제로 글쓰기 실력이 향상될 수 있으며 성격에 맞는 내용을 빠르게 작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글쓰기는 하루아침에 습관이 될 수 없다. 그래서 꾸준히 작성하며 끊임없이 다시 살펴보고 나만의 스타일을 확립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글을 계속 쓰는 것만큼 중요한 건, 내 글에 부족함은 없는지 고쳐야 할 부분은 없는지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내가 작성한 글을 읽는 게 부끄럽고 어색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작성 후 한 번, 며칠이 흐른 뒤 또 한 번 읽어보며 어색함은 없는지 확인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작년, 지난달, 어제 작성한 글보다 더 나은 내용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이는 또 하나의 습관을 만들어주는데, 바로 성격에 맞는 글을 빠르게 스케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비스를 단순히 소개하는 목적인지, 아니면 기능 단위로 분석하는 내용인지, 배움을 정리하기 위한 것인지, 에세이로 작성할 내용인지 등 성격에 따라 기존 작성 경험을 바탕으로 더 빠르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런 글쓰기의 중요성과 앞서 말한 구체적인 상황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첫 글을 작성하고 계속 이어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온갖 생각과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작의 관점에서 몇 가지 내용을 덧붙여 보려 한다.
먼저,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정확히는 내가 쓴 글이 도움이 될까?라는 걱정을 덜어낼 수 있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내용을 작성하는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두려움과 싸우고 있고,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나 이기에 쓸 수 있는 글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그 발걸음에 과거부터 지금까지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을 찾는 건 정말 쉽지만, 자신만의 시각으로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그러니 처음에는 나 이기에 쓸 수 있는 글에 집중했으면 한다. 꼭 기획의 관점이 녹아들지 않아도 좋다. 글을 쓰는 이유에 너무 많은 것들이 포함되기 시작하면 금방 지칠 수밖에 없다.
무엇을, 얼마나 오래 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잘 써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써왔단 이유로 지인들에게 어떤 글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럼 나는 역으로 지금 당장 어떤 내용을 쓰고 싶은지 묻는다. 이때 정말 다양한 주제가 나오는데 문제는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너무 거창하고 그럴듯한 글을 쓰고 싶은 욕심과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두 가지 방법을 추천한다. 하나는 나의 취미 또는 관심사를 바탕으로 시작하는 것, 또 하나는 업무를 하며 경험하고 배운 점을 통해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장비와 상관없이 사진 촬영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 순간과 다시 꺼내봤을 때 떠오르는 감정을 기록하는 것으로 에세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것이 글쓰기로 연결되는 매력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업무를 하며 경험하고 배운 점은 나와 우리 팀이 아니면 기록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훌륭한 글감이 된다. 예를 들어 나는 20개국 이상에서 앱 스크린샷 A/B 테스트를 진행한 경험을 자세히 작성한 적 있다. 이런 내용은 내부에서 외부로 끌어오지 않으면 확인이 어려운 글이기도 하고, 경험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정보를 담을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다. 또는 실패 노트와 같이 내가 자신 있게 시도했지만 좋지 않은 결과를 받은 과정을 작성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기획 관점에서 분석글이나 경험을 녹여내는 게 당장 어색하다면, 기획자로 겪는 어려움을 풀어내는 것도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글을 쓸 시간을 만들고 늘릴 수 있는 의지가 필요하다. '12.제안서 작성, 단계별로 어렵지 않게 시작하기’에 제안서 작성의 시작이 문서 생성이 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자주 쓰는 메모장 등에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조금씩 내용을 추가하는 것이 좋다. 나는 메모장 한 개를 하나의 주제로 생각하고 출, 퇴근 시간을 통해 필요한 자료와 내 생각을 조금씩 덧붙이는 방법을 활용했다. 에세이는 매일의 문구라는 노트를 만들어 가사, 대화 중 언급된 내용, 이런저런 생각들을 붙잡아 두고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글감 창고로 활용했다. 앱을 쓰며 새로 추가된 기능이나 이전에 발견하지 못한 내용들은 캡처와 동시에 간단한 생각을 기록했고, 업무 중 느끼고 배운 점은 쉬는 시간을 활용해 잊지 않도록 바로 기록했다. 이런 작은 기록들은 주말에 한 번씩 살펴보며 교집합이 되는 내용들을 따로 빼냈고 살을 붙여 공유 가능한 글로 작성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지인들이 늘 마지막에 덧붙이는 말이 ‘시간이 없어서’ 다. 하지만 하루를 기준으로 우리가 5분, 10분씩 까먹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다. 그 시간을 하나씩 붙잡아 글을 쓰기 위한 준비 단계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은 꼭 글을 써야지 라는 생각으로 한 시간씩 시간을 활용하기보다 하루, 이틀 내가 쓰는 시간을 잘 살펴본 뒤 끼어들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이유기도 하다.
지금의 나는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을 글쓰기에 투자하고 있다. 내게 업무, 업무 외적으로 가장 큰 동기가 되며 ,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충분히 제공해주며, 나의 배움을 더 구체적으로 스며들게 해주는 좋은 동료가 되기도 한다. 나의 여정은 생각보다 가치 있고, 그 가치를 가장 잘 표현하고 정리해주는 수단은 글쓰기가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시간이 없다는 말 대신, 오늘은 어떤 내용을 조금씩 써볼까 라는 마음으로 시작해봤으면 좋겠다. 나 이기에 쓸 수 있는 글을, 기획과 내 자신에게 큰 도움으로 돌아올 글쓰기를 말이다.
2023년 07월, 제 첫 도서가 출간되었어요. 제목은 ’10년 차 IT 기획자의 노트’입니다. 브런치 '기획자가 일하는 방법'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사수 없이 일하는 어려움을 저보다 조금 늦게 출발한 분들이 덜 느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는데요. 같은 맥락에서, 9개 노트(기록)를 바탕으로 기획과 PM의 주요 업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리한 내용입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