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지니는 힘은 생각보다 크다
광고홍보학을 전공하며 프레젠테이션을 할 기회가 많았다. 처음에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문서에 논리적으로 잘 녹여내는 것에 초점을 맞췄고, 이후에는 작성된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해 발표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는데 집중했다. 그런데 발표를 할 때마다 하나의 벽처럼 느껴졌던 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시간이었다. 꽤 탄탄한 논리를 통해 자신 있게 발표를 해도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하지 못해 좋은 점수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자료 제작 및 발표 연습과 더불어 예상 질문을 정리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됐다. 문서에 포함되지 않아도 도움이 될 내용을 따로 정리해 답변에 해당하는 의견을 꼭 덧붙이는 연습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스로 던지는 질문 외에도 함께 공모전, 과제를 진행하는 팀원들에게 질문을 묻기 시작했고 실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질문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점들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연결고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업무에서도 질문은 내가 작성하는 문서나 자료를 한 가지 시각이 지배하지 않는데 도움을 주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잠시나마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12. 제안서 작성, 단계별로 어렵지 않게 시작하기’에서 목차 작성을 질문으로 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한 이유도 질문이 주는 장점을 미리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다만, 내가 일을 하며 오랫동안 어렵게 느낀 건 회의나 미팅을 진행하며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는 과정이었다. 문서나 기획 업무 자체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은 이제 어렵지 않게 던지고 답을 정리해 더 나은 방향으로 가져갈 수 있지만, 공통된 주제에 따라 팀원들의 의견을 이끌어내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의 질문 활용법은 여전히 난이도가 높게 다가왔다.
질문을 던졌음에도 원하는 답이나 의견이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남 탓을 하기도 했다. 같은 질문에 대해 나는 여러 답을 가져갔음에도 불구하고 팀원들은 상대적으로 준비를 덜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스레 내 의견으로만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결과적으로 책임의 무게를 더 짙게 느껴야 하는 불만과 두려움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답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질문이 잘못된 경우가 많다는 것과 상황, 배경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 질문에 대해 미리 공유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회고 등이 목적이라면 상대적으로 누적된 이야기 중 한두 개를 바로 꺼낼 수 있지만, 신규 프로젝트 또는 기능 단위의 첫 미팅이라면 기획 업무를 하는 나를 제외하곤 아직 구체적인 정보를 모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우 회의 시작과 동시에 정보를 전달하고, 질문을 던지고, 의견을 받는 모든 과정에 ‘지연'이 발생할 수 있으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할 수 있다. 때문에 팀원들이 ‘처음' 정보를 전달받는 과정에 있다면, 미리 어떤 목적으로, 어떤 관점에서 내용을 확인하면 좋을지 문서 등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참여인원으로 하여금 시작 전 궁금한 점을 먼저 생각해볼 수 있게 함과 동시에 미팅 시 나를 비롯한 팀원들이 하는 질문에 대해 공통된 기준에 따라 의견을 낼 수 있는 역할을 해준다.
(2) 질문은 제목과 같아서, 구체적인 내용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종종 질문을 했는데, 답과 의견이 아닌 질문의 의도를 묻는 경우가 있다. 이는 답변을 위한 요약 또는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기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질문이 질문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을 만들 수밖에 없고, 본질에서 벗어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때문에 다채로운 의견을 받기 위한,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질문은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회원가입 전환율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라고 묻는 것보다 우리가 지난 분기 진행, 가입 전환과 리텐션에 좋은 영향을 끼쳤던 이벤트 같은 방법이 또 없을까요? 와 같은 질문이 더 효율적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팀 단위 경험이라는 공통의 기준에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내용을 한 번에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이벤트였는지, 성과는 무엇이었는지, 이후 지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떠올려 우리 서비스와 팀에게 적합한 방법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벤트에 초점을 맞춰, 개인적인 경험에 따라 질문을 다시 정리해보면, 회원가입 전환에 도움이 될 이벤트가 없을까요?라고 묻는 것보다, 신규 사용자가 서비스 핵심 기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이벤트는 없을까요?라는 내용이 더 구체적인 의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신규 사용자가 ‘특정 기능'을 사용했을 때 재사용할 확률이 높다는 데이터를 함께 제공한다면 폭넓은 의견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니 팀 경험과 데이터에 기반한, 구체적인 내용을 질문에 활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3) 질문에는 설득력이 있어야 하며, 그 출발은 포괄적이지 않은 내용에서 시작된다.
우리 서비스의 신규 회원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 속 ‘신규 회원’은 지나치게 포괄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 서비스의 주 사용층인 20대 여성 사용자를 더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는 명확한 범위가 포함되어 있으며, 앞선 경험을 끄집어낼 수 있는 트리거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질문에 포함된 내용이 적합한 지, 우리의 고려 대상이 맞는지에 대한 마땅한 근거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질문은 핵심을 전하는 역할과 의견을 주고받기 위한 출발점이 될 뿐, 그에 앞서 왜 20대 여성이어야 하는지, 지금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가 기존에 활용했던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경험은 무엇인지 등을 적어도 질문하는 사람은 알고, 언제든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신규 회원을 확보하는 건 서비스를 운영하고 개발하는 입장에서 늘 고려해야 할 과제지만 해야 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면 질문은 금방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4) 질문을 던지기 전, 내 생각을 미리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기획을 하는 입장에서, 프로젝트를 리드하는 과정에서 등 내가 하려는 질문에 대한 나의 의견은 꼭 필요하다. 질문을 하는 사람이 아무런 준비 없이 상대방에게 전달하게 되면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지 않고 단편적인 물음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상황에 따라 나의 의견을 먼저 이야기한 뒤, 질문을 덧붙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누군가 질문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난 뒤, 대화가 이어지지 않을 경우 내 의견을 더해 조금 다른 시각의 질문을 전하거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미리 가지면 좋은 시간이 앞서 이야기한 ‘사전 질문'을 정리하는 것이다. 답을 찾기 위한 질문이라기보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점들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연결고리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5분, 10분이라도 좋으니 미팅 전 논의 주제와 관련해 스스로 생각한 질문과 답을 준비하면 그 과정 자체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5) 팀 단위로 확인해야 할 질문을 갖고 있어야 한다.
나와 다른 시각의 답을 얻고자 던지는 질문도 충분히 의미 있지만, 우리의 공통 기준에 부합하는 질문을 미리 만들어 활용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내가 기능 개발 등 일정 규모의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꼭 작성하는 문서인 ‘스펙 문서'에는 나와 팀에게 묻는 질문이 항상 포함된다.
함께 확인해야 할 질문은 보통 프로젝트 시작 전, 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진행 후 질문은 ‘10. 팀 모두가 스스로 참여하고 배울 수 있는 회고 진행하기’ 속 회고를 팀 단위 배움과 성장을 위한 시간으로 만드는 출발점으로서 역할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꼭 긴 문장으로 돌아오는 질문이 아니라 우리가 일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해왔는지 확인하는 역할로도 활용할 수 있다. 모든 질문을 나열하긴 어렵지만 (1)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발생한 이슈를 바로 공유하고, 의견을 나눴는지? (2) 이번 스프린트가 기존에 계획된 시간과 범위에 따라 잘 진행되었는지? (3) 각자의 업무와 과정에 대한 기록이 적절히 이뤄졌는지? (4) 우리가 원하는 범위 내 결과가 잘 도출되었는지? (5)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정에서 기존에 없었던 어려움이나 불편은 없었는지? 등이 있다. 이런 질문은 홀로 작성하기보다 업무를 하며 팀원들이 공통적으로, 자주 하는 질문을 모아서 정리하거나 우리가 자주 놓치거나 실수하는 부분을 끄집어내 활용할 수 있다.
아쉽게도 우린 질문을 하기보다 정해진 답을 해야 하는 상황을 더 많이 겪었고,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하지만 질문이 지니는 힘은 생각보다 크다. 질문이 가진 ‘내용'의 특성을 통해 참여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문제 또는 이슈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으며 특정한 답이 아닌 열린 결말과 같은 맥락에서 팀원들의 다채로운 의견을 수집하고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업무에는 정답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의견과 제안이 필요하다. 이 글을 통해 업무를 하는 개인과 팀의 과점에서 질문을 어떻게 더 잘 활용할 수 있을지, 지금까지 했던 질문들에 문제는 없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렇게 내일은 우리가 더 나은 과정을 밟기 위한 질문을 더 많이 던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3년 07월, 제 첫 도서가 출간되었어요. 제목은 ’10년 차 IT 기획자의 노트’입니다. 브런치 '기획자가 일하는 방법'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사수 없이 일하는 어려움을 저보다 조금 늦게 출발한 분들이 덜 느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는데요. 같은 맥락에서, 9개 노트(기록)를 바탕으로 기획과 PM의 주요 업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리한 내용입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