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필요한 건,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지금까지 글을 써오며 꾸준히, 집요하게 언급한 키워드가 있다면 ‘성장'이 아닐까 싶다. 기획자로 일하며 나는 늘 성장에 목말랐고,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여러 시도와 고민을 지속했다. 담당 분야는 물론 업무 과정에 대해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해야 하고, 스스로 터득한 지식을 활용해 디자인, 개발, 영업,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의 팀원들과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보를 확인하고 정리하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익숙해졌지만 습득한 정보를 업무 단계와 상황에 따라 적용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혼자 하는 일이라면 그나마 여유롭게 생각할 수 있지만, 각기 다른 의견과 상황을 종합해 다음 단계로, 더 나은 방향으로의 결정을 매 번 해야 하는 상황은 성장에 대한 고민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나로 인해 전체의 호흡이 흐트러질 수 있고, 나 때문에 모두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기에 더더욱 그랬다. 게다가 이만큼 노력했는데, 그만큼 열심히 달려왔는데 아직도 이 정도였어?라는 답이 나올 때면 때론 번아웃에 빠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일이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아 집중력이 떨어지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때도 생겼다.
처음엔 너그럽지 않은 ‘시간'을 탓하기도 했다. 사수가 없는 기획자로 일하며 모든 걸 스스로 터득해야 했고, 그때그때 필요한 자료를 찾아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획자의 업무가 어디까지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내 업무 범위와 양은 점점 늘어나는 상황 속, 한정된 시간에 대한 원망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과 판단은 나의 성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고, 내가 속한 팀과 조직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뿐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다다른 결론은 결국 ‘단계'와 ‘기준'이었다. 단계에는 크게 3가지가 포함되는데, 하나는 나라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 또 하나는 정보를 습득하는 것 마지막으로 습득한 정보를 업무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 단계별 스스로 넘지 않아야 하는 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제한된 시간과 정보를 받아들이는 양이 정해진 상황에서 욕심을 부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필요했다. 업무를 하는 데 있어 우선순위를 정해 진행하는 것처럼, 나의 성장에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여러 내용들 역시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순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단계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보통 필요한 자료를 찾아 학습하고 정리해 업무에 적용하고, 우리에게 최적화된 방법을 찾는 것을 일반적인 성장 단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업무에 나를 맞추는 방법으로, 자칫 나를 배제한 채 특정 환경에서 일하는 ‘나'에게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 그곳을 떠나면, 그때의 배움 역시 내려놓고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단계가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기획자로 일하며 선배나 사수 또는 동기들이 말하는 기획자에게 필요한 업무 스킬 등을 미리 확인하고 내게 대입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를 둘러싼 상황과 지금까지 업무를 하며 느낀 부족함을 먼저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02. 한 번의 실수는 배움이 되고, 두 번의 실수는 실력이 된다’에서 정리한 것처럼 매일의 업무를 하며 스스로 기록한 내용을 다시 한번 살펴보거나, 아직 작성한 것이 없다면 일정 기간을 두고 작성하며 다음 단계에 무엇에 집중할 수 있는지 학습과 배움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남의 기준에 따른 학습이 아니라 스스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찾고 학습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이자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업무와 나를 균형 있게 살펴보는 것이 핵심으로, 스스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그 이유와 기존에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개선하고 보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찾아갈 수 있다. 담당하고 있는 서비스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하다면, 다음 단계인 학습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지 답을 얻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록한 내용들을 한 번씩 다시 살펴보며 무엇을 먼저 공부하고 발전시켜야 할지 우선순위를 생각하는 것이다. 스스로 기록한 부족한 점은 더 오래 기억에 남아 우선순위를 잘 정리해두지 않으면 이후 학습 과정에서도 뒤죽박죽 내용이 섞일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단계인 ‘습득'은 앞서 스스로가 설정한 우선순위에 따른, 배움에 대한 관심과 열정에서 시작될 수 있어야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출발점이지만 필요에 의한 습득과, 타의에 의한 습득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무엇을 더 배워야 할지 아는 것과 그다음 단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며, 학습의 효율성은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 보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같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나의 호기심에 의한 시작은 더 많은 연결점을 찾아보게 하고, 열린 마음으로 내용을 대할 수 있지만 반대라면 일회성에 그칠 가능성이 높고, 시각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겨 버린다. ‘19. 기록한 내용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확인하는 방법’에서 함께 살펴본 것처럼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곳은 수없이 많으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에 더 집중해야 한다.
이때, 어디까지 살펴볼 것인지 기준을 미리 생각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특정 분야 및 시장에 대한 지식을 갖추기로 했다면 초반에는 내가 담당하고 있는 서비스에서 출발하는 식이다. 관심 분야에 대한 학습도 좋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고 해야 할 업무와 확인해야 할 정보는 많으니 우선 나와 가까운 정보를 하나, 둘 확인하고 정리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동시에 여러 분야의 정보를 습득하면 각 내용 간 연결이 잘 되지 않지만, 나와 깊게 관련된 정보를 먼저 습득하고 남는 시간을 활용해 다른 분야의 정보를 확인하다 보면 내용 간 연결이 더 자연스러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기본적이지만 강력한 방법 중 하나는 학습 기간과 하루 중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미리 정해두고 시작하는 방법이다. 일정 기간 동안, 매일 시간을 투자해, 내가 담당하는 서비스와 시장에 대한 학습을 진행한다, 와 같은 기본적인 목표는 학습 과정에 많은 도움을 준다. 시간은 출, 퇴근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잠들기 전 쉬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목표는 매일 작성하는 해야 할 일 등의 문서 맨 앞에 적어놔도 좋고, 포스트잇에 이번 주 공부할 주제라는 내용으로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는 것도 좋다. 이 방법에 익숙해지면, 우리가 문서를 만들 때 목차를 잡는 것처럼, 단계별 어떤 내용들을 살펴볼 것인지에 대한 세부적인 목표 설정도 가능하다. 이는 습득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업데이트하는데 도움이 된다.
다만 지금 우리는 학교에서 이론을 배우며 과제를 하는 단계가 아니라, 실제 업무를 하며 부족한 것과 추가로 배워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단계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호기심으로 출발하는 것은 좋지만, 모든 분야에 호기심을 갖게 되면 어느 하나 집중할 기회를 잃게 되고, 많은 시간을 한 번에 투자하려는 욕심은 우선순위를 쓸모없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5분씩이라도 학습에 필요한 시간을 꾸준히 확보하고 그 시간을 조금씩 늘려나갈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 단계는 학습에 필요한 준비가 끝나고, 실제 우선순위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면 특정 조직에서 서비스를 담당하며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적용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학습한 내용을 실제 적용해보는 단계다. 가장 중요한 단계이기도 하고, 이 과정을 자주 거쳐야 내가 속한 환경에 맞는 방법을 계속해서 확인하고 개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단계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속한 조직이나 담당하는 서비스의 성격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OKR은 효과적인 목표 관리 방법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도입한 모든 조직에서 효율적으로 사용되진 못했다. 이는 OKR 뿐만 아니라 업무에 필요한 방법론이나 과정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습득하고 정리했다 하더라도, 나와 우리에게 적합한 내용인지는 직접 진행해봐야 알 수 있고, 이는 자연스레 심화 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앞서 언급한 단계에 따라 기획자로 성장하는 방법을 찾는 것도 좋지만, 매일의 일부를 조금씩 나에게 할당해 스스로가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 이 글이 성장을 위한 단계를 한 번씩 생각해보고, 성장하는 우리 자신을 한 번씩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아, 그리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것만큼 내가 잘하는 것을 계속 살피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부족한 점만 떠올리다 보면 심리적으로 불안전한 상태가 된다는 것을 나 역시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결국, 세 가지 단계는 기록 등 계속 확인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관리가 필요하다. 스스로 부족하거나 배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작성하고 순위를 매기며 각각에 따라 필요한 내용을 학습하고 이를 실제 업무에 반영하고 다시 보완하는 과정 자체가 성장을 위한 경험치로 누적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가 일주일 단위 해야 할 업무를 관리하는 노션 문서에는 틈틈이 학습할 주제와 하루의 끝에 작성하는 배운 점이 기록되어 있다.
2023년 07월, 제 첫 도서가 출간되었어요. 제목은 ’10년 차 IT 기획자의 노트’입니다. 브런치 '기획자가 일하는 방법'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사수 없이 일하는 어려움을 저보다 조금 늦게 출발한 분들이 덜 느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는데요. 같은 맥락에서, 9개 노트(기록)를 바탕으로 기획과 PM의 주요 업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리한 내용입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