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으면 꽃잎이 되는 색연필 HANA
날이 따뜻해졌다. 두터운 패딩 코트를 옷장에 넣었다. 아직 꽃을 보긴 어렵지만, 곧 소식이 들리겠지. 봄이라서 그런가? 화사한 색에 마음이 쏠린다. 그런 내 눈에 쏙 들어온 색연필이 있다. 하나(HANA), 일본에서 한자 花를 읽을 때 이리 읽는다. 오토모 토시로가 디자인했고, 트리너스에서 만들었다.
연필을 깎으면, 그 자리에 꽃잎을 남겨준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보면서 감탄했다. 연필 몸에 많은 골을 새기고, 색을 담았다. 색이 다른 다섯 자루가 한 세트인데, 전용 연필깎이도 함께 준다. 연필을 깎으면, 꽃잎이 떨어진다. 연분홍, 진분홍, 노랑, 초록, 남보라. 이름만 들어도 예쁜 색 꽃잎이 된다.
부스러기가 꽃잎이 된다고 뭐가 달라질까. 나 하나 사라진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부스러기가 꽃잎이 돼도 부스러기다. 그럼 뭐 어떠랴, 예쁜데. 삶은, 늘 의미 없어 보이던 시간들이 모여 나이테를 만든다. 어쩌다 잠들지 못하는 밤, 몰래 쥐게 될 것은 MS 오피스가 아니라 꽃잎이 떨어지는 색연필이다.
그거면 됐다. 참,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