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기술이 아닙니다
빛처럼 빠르게 데이터를 전송한다는 말을 많이 쓴다. 빛보다 빠른 물질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 아예 빛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면 안 될까? 된다. 실은 이미 쓰고 있다. 데이터 센터끼리의 통신이나 기가급 이상 초고속 인터넷망에 쓰이는 통신망이 바로 ‘광 네트워크’다. 전기 신호를 빛으로 바꿔, 광섬유를 이용해 초고속으로 전달한다. 전 세계를 연결하는 인터넷 해저 케이블도 이 기술을 이용한다, 다만 무선으로 전달하진 못한다.
빛으로 무선 데이터 전송을 할 수는 없을까? 이런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기술이 가시광 통신(Visible light communication, VLC)이다. 가시광 통신에선 빛의 깜빡임을 2진수(0, 1) 디지털 신호로 인식한다. 꺼지면 0, 켜지면 1로 인식하는 식이다. 컴퓨터에 사용되는 데이터는 모두 2진수(0, 1)로 구성되어 있기에, 이런 깜빡임만으로도 상대가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 알 수 있다. 군사 작전이나 등대에서 조명으로 신호를 주고받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디어는 좋지만, 사람이 직접 하기엔 너무 힘들다. ‘I Love You’를 이진수로 바꾸면 ‘0100100100100000010011000110111101110110011001010010000001011001011011110111 0101’이 된다. 80번을 껐다가 켜야 이 한 문장을 전달할 수 있다. 사람은 힘들지만, 기계는 쉽게 한다. 적외선 리모컨은 초당 3만 8천 번 깜빡이며 TV에 데이터를 보낸다.
LED는 초당 수백만 번도 깜빡일 수 있다(ETRI에서 개발한 VLC 네트워크 기술은 초당 300만 번 깜빡인다.). 사실 VLC라는 개념이 LED 기술이 발전하면서 태어났다. 1998년 일본 게이오 대학의 나카무라 교수가 처음 제안했고, 2011년 영국 에든버러 대학의 해럴드 하스 교수가 프로토타입을 시연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이때 해럴드 교수가 내세운 이름이 바로 오늘 이야기할 라이파이(Li-Fi, Light Fidelity)다. 와이파이를 대체하라는 뜻으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2011년 해럴드 교수의 TED 강연 영상
우리는 어떻게 무선 인터넷을 이용할까? 보통 가정용 공유기를 이용하거나 이동통신 네트워크를 사용한다. 라이파이로는 어떻게 무선 인터넷을 이용할까? 재미있게도, LED 전구를 이용한다. 천장에 라이파이 기술이 담긴 LED 전구를 달아두면, 초당 200번 이상 깜빡이며 빛으로 바뀐 데이터 신호를 쏜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TV 등은 부착된 라이파이 송수신 센서를 이용해 이 신호를 주고받는다. 조명기구를 따로 설치할 필요는 없다. 우리 눈은 초당 100번 이상 빠르게 깜빡이면 ‘깜빡이지 않는다’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조명과 인터넷을 함께 이용할 수 있다(물론 꺼진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
와이파이가 이미 있음에도 라이파이 기술을 계속 연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먼저 펑펑 쓸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전파는 공공재다. 쓸 수 있는 주파수가 한정되어 있어서, 이동 통신사업자는 일정 기간마다 비싼 값을 주고 이용권을 사야 한다. 공용 주파수를 사용하는 와이파이는 이용자가 여럿 몰리면 간섭이 일어나 품질이 급격히 나빠진다.
라이파이가 쓰는 가시광의 주파수 영역은 정부에서 사용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고, 전파가 쓰는 주파수 영역보다 1만 배 이상 넓다(380THz~750THz (1THz 는 1000GHz), 이동통신과 와이파이는 300MHz~30GHz 대역 사용). 한 번에 여러 개의 데이터를 함께 보내기 때문에, 속도도 무척 빠르다. 지금까지 확인된 최고 속도는 초당 10Gbps에 달한다. 이론적 최대 속도는 224Gbps다.
추가 설비가 필요 없는 것도 장점이다. 현재 세계 각국은 에너지를 낭비하는 백열등 등을 에너지 효율이 높은 LED 전등으로 바꾸고 있다. 여기에 끼우는 전구에 통신 모듈을 달아주기만 하면 라이파이 기기가 된다. 알다시피, 세상에 존재하는 전등은 무선 네트워크 장비보다 훨씬 많다.
비행기나 병원처럼, 주파수 혼선을 일으킬 수 있는 장소에서도 라이파이는 안전하다. 전파가 아니라 빛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빛이 닿지 않으면 쓸 수 없기에, 보안도 좋은 편이다. 전구 불빛이 닿는 영역에서 벗어나면 그 빛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빛은, 물속으로도 보낼 수 있다. 에너지 절약은 덤으로 받는다.
LED 전구만 갈아 끼우면 쓸 수 있고, 속도도 빠르고 안전하며, 에너지도 절약할 수 있다. 조명은 어디에나 있기에 전파가 안 터지는 음영지역도 찾기 힘들다. 잘만하면 가로등이나 지하철 실내등도 라이파이 기기로 쓸 수 있다. 솔직히 거의 완벽하게 보이는 근거리 통신 기술이다.
한때 아이폰에 들어간다고 해서 시끌시끌했던 적도 있다. 게다가 정보 보호도 잘되는데, 왜 아직 라이파이 기술을 볼 수도 쓸 수도 없을까? 간단히 말하자면, 아직 개발이 덜 끝났기 때문이다.
먼저 기술 자체가 가지는 한계가 있다. 라이파이는 특이하게 장점이 그대로 단점이 되고, 단점이 그대로 장점이 되는 기술이다. 반사광으로도 인터넷을 쓸 수 있다지만, 아직 라이파이 송신기와 수신기 사이에 빛을 막는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 태양이 비춰도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주로 실내에서 사용하게 된다.
많은 라이파이 송수신기가 필요한데, 많이 보급되지 않아 값이 비싸다. 고속 통신에 사용되는 LED 부품값도 높다. 경쟁자도 노력하고 있다. 최신 와이파이 6 규격의 이론상 최고 속도는 초당 1.2GB다. 안정적으로 많은 기기를 접속시키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이용자가 굳이 라이파이 제품을 찾을 이유가 아직 없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지만, 라이파이 기기를 곧 만나게 될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도시와 공장이 스마트시티, 스마트팩토리로 변해가면서 LED 전등은 이미 수많은 곳에 들어갔다. 여기에 통신용 칩을 추가하면 네트워크 장비로 변한다. 라이파이는 병원, 쇼핑몰, 역 대기실처럼 많은 사람이 모이고 조명이 많은 장소나 공공시설, 보안이 중요한 군사 시설에도 어울린다. 시대는 라이파이를 맞이할 준비가 거의 끝났다.
개발에 맞춰 시범 사업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 14.6Gbps 속도의 수중 가시광 통신 시스템과 VLC 전용 칩세트 제조에 성공했다. 5G 이동통신 상용화와 더불어 부족한 실내 데이터망 구축에 적합한 기술이기도 하다. 유선 인터넷 설치가 어려운 곳에 쓰이기도 한다.
NASA는 가시광 통신을 소위성 통신망 시스템에 적용할 계획이다. 영국은 오지에 있는 작은 섬에 야외 라이파이를 이용해 간이 5G 네트워크를 만드는 작업에 성공했다. CES 2018에는 실제로 작동하는 데스크톱 램프가 출품되기도 했다. 라이파이 대응 조명기구를 발표한 시그니파이는, 실제 자사 사무실에서 라이파이를 쓸 수 있도록 꾸미기도 했다.
앞으로 모든 실내 무선 네트워크가 라이파이로 바뀐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와이파이는 와이파이대로, 라이파이는 또 자신에게 맞는 영역을 찾으며 성장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비록 내일 당장 만날 수 있는 기술은 아니지만, 언젠가 우리 아이들은, 천장을 쳐다보며 ‘어? 왜 여긴 인터넷이 안돼?’하고 말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미 데이터를 전기처럼 쓰는 세상이니까.
* 삼성 디스플레이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