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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T Dec 30. 2018

퇴사 후 백일, 낯선 낮의 풍경

‘퇴사자 in the house’도 스웩 넘치는 모습이기를...


퇴사하고 인생 2막을 연 지 어느덧 100일이 되었다. 아침 일찍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만원 버스에 시달려 출근하고 별을 보고 퇴근한 뒤 집에서 적막이 흐르는 심야 시간까지 다시 일을 하다 겨우 잠이 드는 생활을 한 지 16년. 평일 낮 아파트 단지의 풍경은 내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였다.



그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석 달이 지났다. 처음엔 고요한 오전 시간의 적막함도, 아파트 건너편 학교의 종소리도, 과일이나 야채를 팔기 위해 돌아다니는 트럭의 스피커 소리도 낯설었다. 출퇴근 시 한 대에 몇 명까지 들어갈 수 있냐를 실험하는 것 같던 버스가 텅텅 빈 채 다니는 것도 신기했고, 차 없는 아파트 앞 대로변 풍경도 생소했다.



그리고 산책을 위해 집 근처 공원을 오갈 때면 우리 동네에 노인 분들이 이렇게 많나 놀라기도 하고, 개그프로그램에서만 보던 아줌마 캐릭터(썬캡을 쓰고 박수를 치며 걷거나 나무에 등을 부딪치는 동작을 반복)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런데, 내 눈에만 그들이 신기한 건 아니었다보다. 평일 낮 동네를 주름잡고 다니던 터줏대감들 눈에도 나는 낯선 존재였다. 젊은 남자가 집으로 온 택배를 직접 받고, 노인들 사이를 누비며 공원을 걸어 다니고, 마트에서 카트를 끌고, 동네 맛집에서 아줌마들 사이로 무려 ‘점심’을 먹으니 이상하게 보였을 터. 그렇게 그들에게도 나도 낯선 낮은 계속되었다.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란 당초 낯선 것을 보거나 낯선 환경을 접하면 동공이 커지는 종족들이니까. 하지만 남들과 다른 패턴의 삶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문제다. 세상에서는 이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오지랖’이라고 했고, 이들을 ‘오지라퍼’라고 불렀다.



이 오지라퍼들은 와이프를 붙잡고 ‘애기아빠 일 안해요?’(주: 우리 부부는 딩크족이다)부터 시작해서 ‘남편 분 어디 아파요?’, ‘집에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라고 나와 관련해 꽤 다양한 질문을 던진 모양이다. 낯선 낮의 풍경을 만든 장본인이니 그 정도까지는 감수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정 궁금하면 당사자인 내게 직접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고 정확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내가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남들처럼 아침 일찍 집을 떠나 밤늦게 돌아오는 사람이 아닐 뿐. 40대 남성이라면 왜 꼭 밖에 나가서 일을 해야 하는지, 집에서 일을 하면 안 되는 것인지, 평일 낮에 장을 보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재활용품 분리수거를 하면 안 되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뭐 어쩌겠는가. 이것도 퇴사 후 달라진 삶의 일부분이라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렇기에 난 앞으로도 기죽지 않고 오지라퍼들 시선에 위축되지 않을 것이다. 날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스웩 넘치는 몸짓으로 외쳐야겠다.



“Ah Yeh, 퇴사자 in the house!”




Copyright(C) Dec.2018 by Writer T.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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