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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T Feb 01. 2019

연예 장르가 돼버린 ‘스포일러’

반전 묘미 사라진 드라마와 영화.. 연예 콘텐츠 죽이는 연예매체


“절름발이가 범인이다”

“브루스윌리스가 귀신이래”



난 스릴러 영화를 좋아한다. 예상치 못한 극적 반전이 짜릿함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포일러 유출로 이런 반전의 묘미가 확 사라져서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23년 전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요즘이야 입출구가 분리된 멀티플렉스 극장이 대세지만, 당시만 해도 입출구가 하나인 좁고 열악한 극장이 많았다. 그래서 앞선 시간 영화를 다 본 관객들이 빠져나간 뒤 다음 시간 관객들이 상영관 안으로 들어가곤 했다. 지하철 승하차를 생각하면 쉽다.



그런데 상영관 입장을 기다리던 중 앞선 회 차 영화를 보고 나오던 한 관객이 “절름발이가 범인이다”라고 외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쩔 수 없이 그 말을 들어버리고 말았다. 불쾌했다. 돈과 시간을 들여 극장에 왔지만 이미 영화 한 편을 다 봐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찝찝한 기분으로 상영관에 들어갔고, 내심 절름발이가 범인이 아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이미 결말은 스포일러대로 흐르고 있었고, 핵심을 미리 알고 보는 영화가 재미있을 리 없었다. 누군가에겐 그저 치기 어린 한 순간의 장난이었겠지만 그 순간 스포일러를 당한 수많은 사람들은 명작 하나를 잃었다.



이후 멀티플렉스가 속속 자리 잡고 나가는 사람과 들어가는 사람이 마주치지 않으면서 면대면 스포일러 테러는 사라졌다. 대신 IT 강국답게(?) 온라인에서의 스포일러 테러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기사 댓글로, 커뮤니티 게시판 글로 스포일러를 유출했고, 그렇게 난 ‘브루스윌리스가 귀신이래’라는 스포일러를 접하면서 ‘식스센스’라는 명작을 잃어버렸다. 이후 난 꼭 보려고 마음먹은 영화나 드라마가 있으면 검색조차 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스포일러는 내 삶과 멀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내가 한 때 업으로 삼던 분야에서 스포일러 테러가 자행되고 있었다. 심지어 스포일러를 독려하기도 했다. 바로 연예 매체들의 스포일러 기사 생산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스포일러를 가장 많이 남발하는 집단은 블로거도 유튜버도 인터넷 관종도 아닌 연예 기자들이다. 스포일러는 연예뉴스 섹션에서 무려 ‘단독’ 기사, 혹은 ‘프리뷰’ 기사로 둔갑해 시청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나 개봉을 앞둔 대작 영화는 대중문화 소비자들의 주된 관심사고 그런 만큼 관련 기사들도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다. 문제는 조회 수 극대화를 위해 연예매체들이 시청자,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결말 스포일러를 기사화한다는 점이다.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무심코 기사를 클릭한 시청자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방송 담당 취재기자가 현장을 누비며 이런저런 방송가 소식을 전하는 건 좋다. 그건 기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일반 시청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기에 기자들은 시청자들을 대신해 방송 현장 구석구석을 누빈다. 이에 방송사에서도 출입증을 발급해 취재활동을 돕는다. 그런 만큼 기자들은 제작진과 연예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남들보다 먼저 정보를 얻는 권리도 누리게 된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발로 뛰어서 얻은 정보라 할지라도 모든 정보를 다 기사화해서는 안 된다. 연예인의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는 정보나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정보는 기사화 하지 않는 것이 맞다. 스포일러도 마찬가지다. 결말을 알게 되더라도 침묵하는 게 드라마를 손꼽아 기다려 온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이자 자신의 기사를 읽는 독자들에 대한 예의다. 또한, 밤샘 촬영으로 고생하는 제작진과 배우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영화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영화 개봉에 앞서 기자 시사회를 개최하는 이유는 기자들이 깊이 있는 기사를 써서 관람 예정인 관객들에게 양질의 정보를 주기 위함이다. 모두를 초청할 수 없기 때문에 기자들이 시사회에 초청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자 시사회를 다녀온 일부 기자들은 주연배우 인터뷰 기사에서, 프리뷰 기사에서 결말을 여과 없이 내보낸다. 혹은 남보다 먼저 영화를 접했다는 우월감에 개인 SNS를 통해 결말을 유출시키는 철없는 기자들도 있다.



문제는 연예 매체들과 일부 기자들이 스포일러 유출을 멈추려는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조회 수 경쟁이 과열될 대로 과열되었다는 건 모두 인식하지만 ‘네가 먼저 하면 나도 할게’라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먼저 나섰다 나만 바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스포일러 유출 기사 근절을 막아서고 있다.



심지어 스포일러를 방조하거나 독려하는 연예 매체 데스크들, 그리고 일부 기자들은 자신들이 기자이기 이전에 관객이자 시청자고, 언제든 스포일러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는 것 같다.



결국, 기자들의 스포일러 남발을 멈추려면 독자들과 시청자, 관객들이 나설 수밖에 없다. 스포일러 유출 매체와 해당 기자의 기사 조회 수를 올려주지 않는 것이다. 기억해두자. 연예 매체에 있어 최악의 상황은 욕하면서 조회 수 올려주는 독자가 아닌 발길을 끊고 외면하는 독자다. ‘저 매체는 드라마 영화 스포일러 단골 매체야. 안 보는 게 나아’라는 매체 평판 스포일러를 퍼뜨리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이다.




Copyright(C) Feb. 2019 by Writer T.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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