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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T Mar 31. 2019

기자는 회사 내부에서도 정의를 외칠까?

불의를 참는 내공이 쌓이면 결국 ‘기레기’가 된다


‘기자’라는 직업에서 가장 많이 강조되는 것은 바로 ‘기자정신’이다. 기자정신은 어떤 외압이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만을 좇으며 이를 독자들에게 알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려는 정신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에 언론사들은 앞 다퉈 기자정신을 강조하고 있으며, 매체 소개란에 자신들이야말로 기자정신 투철한 기자들이 이끄는 매체임을 자임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치 재벌 권력의 협박과 훼방에도 굴하지 않고 세상을 뒤흔드는 특종 기사를 게재한 정의로운 기자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자들이 더 많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기레기’라는 단어가 왜 생겨났고, 왜 기자라는 단어를 대체해서 더 널리 쓰이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답은 나온다.



기레기라는 단어는 ‘기자정신을 발휘한다고 자뻑에 취해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기자들을 향한 따끔한 일침’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언론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기자정신을 다시 드높이자는 결의도 나오고 있다.



여기서 또 하나의 궁금증이 생긴다. ‘기자들은 회사 내부에서도 정의로울까’하는 점이다. 세상을 향해 정의로워지겠다고 다짐하는 기자들이 정작 회사에서도 같은 자세를 취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 때문일까, 기자생활 중 이런 질문을 여러 차례 받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No’다. 회사(언론사) 안팎에서의 언행이 똑같은 올곧은 기자도 있지만, 대다수 기자들은 밖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회사(언론사) 안에서 ‘기자정신’을 내세우는 경우는 드물다.



밖에서는 담당분야를 취재해 그 내용을 기사로 옮기는 기자일지언정, 회사에서는 기자가 아니라 그 회사의 구성원, 다시 말해 ‘회사원’이기 때문이다. 회사를 상대로 취재할 일도 없거니와 회사의 녹을 먹는 입장이기 때문에 굳이 기자정신을 내세울 일도 없다.



회사(언론사) 내부적으로 임금, 근로환경, 인사 등에 문제가 없다면 굳이 기자정신을 발휘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하지만, 회사 내부에 문제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내 집안의 일도 모른척하거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집 밖에서 정의를 외치고, 집 밖의 일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론사들은 큰 문제없이 잘 굴러가는 것일까? 불행히도 그렇지는 않다. 수익의 대부분을 광고에 의존했던 언론사들은 불황의 직격탄을 맞으며 휘청대고 있다. 그렇기에 광고주, 특히 광고 큰 손인 대기업과 관련된 부정적인 기사에 대해서는 언론사측에서 먼저 ‘딜’을 하기도 한다. 광고를 받아 수익을 올리는 대신 기사를 게재하지 않는 것이다.(참고: ‘환상’이라고 쓰고 ‘환장’이라고 읽는 듀오)



물론, 이에 항의하는 용기 있는 기자들도 있고, 회사의 검은 거래를 폭로하는 정의로운 기자들도 있다. 하지만, 회사측에서 경영난 타개를 이유로 설득하거나, 기사와 맞바꾼 수익 중 일부를 ‘인텐시브’로 주겠다고 회유하면 넘어가는 기자들도 많다.



기자들이 회사 내부에서 정의롭지 못한 경우는 또 있다. 바로 인사, 좀 더 구체적으로는 실적과 승진에 대한 문제다. 여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언론사에도 직급 체계가 있고 고과 시스템이 있다. 고과는 대게 업무성과, 그 중에서도 특종기사와 탐사보도의 횟수로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타 부서와의 공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고 서로 자신들이 특종을 독점하려고 내부 경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유력 정치인과 재벌 그룹간의 정경유착 의혹 건을 보도할 경우, 정치부와 경제부는 서로 타 부서의 정보는 빼내면서 자신들의 정보는 내어주지 않으려 한다. ‘특별취재팀’이 가동되고 특별 섹션을 만들어 원만히 해결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게는 특종 기사 배치를 정치면에 할 것인지 경제면에 할 것인지를 두고 내부 알력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또한, 사회부 기자가 특정 연예인의 마약 스캔들을 보도할 경우, 해당 연예인의 소속사와 친분이 있는 연예부에서는 이를 막으려고 하거나 해당 소속사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기사를 게재해 내부 갈등을 빚기도 한다. 한 지붕에서 어떤 기자는 연예인을 비판하고, 어떤 기자는 연예인을 두둔하는 웃지 못 할 촌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승진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기자들은 밖으로 나가 꼰대 정치인의 행동거지를 비판하고 재벌회장의 갑질을 폭로하지만, 내부에서 회사 임원과 부서장, 다시 말해 자신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똑같은 행동엔 두 눈을 질끈 감는다. 뒤에서 욕할지언정 앞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불의를 잘 견뎌낸다. 심지어 동료들을 배신하거나 상사에게 아부를 잘하는 경우도 있다.



간혹 회사 내부 문화에 대해 반기를 들며 ‘기자정신’을 발휘하는 기자들도 있지만, 동료 기자들은 ‘세상 둥글둥글하게 살지 왜 이렇게 피곤하게 굴어’, ‘그런다고 조직이 바뀌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심지어 ‘나만 아니면 돼’라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기자가 우선이냐 회사원이 우선이냐는 개인 선택의 문제다. 어느 쪽의 가치를 우선시 했다고 해서 그 자체로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다만,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 건강해야 밖에서도 건강한 기사를 쓸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은 틀림없다. 안에서 불의를 잘 참는 게 몸에 배다 보면 밖에서도 불의를 참을 수 있는 ‘내공’이 쌓이게 될 것이고, 결국 그 내공은 기자를 ‘기레기’로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다.



기자와 회사원이라는 ‘한 몸, 두 신분’의 불편한 동거. 하지만 어느 쪽의 가치를 더 크게 두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정의로워야 하는 것은 틀림없다. 기자정신 운운하는 게 낯 뜨겁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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