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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T Mar 23. 2020

유재석씨 김상중씨 그 땐 정말 죄송했어요

머뭇거리다 이제야 쓰게 된 사과문


“유재석씨, 김상중씨 그 땐 정말 죄송했어요”

     

전 16년 동안 기자생활을 하다 2018년 작가로 전향한 김n젤이라고 합니다. 두 분께서는 아마 저를 기억하지 못하실 수도 있는데요, 전 연예부 기자로 기자생활 대부분을 보냈고 두 분과는 현장에서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 단독인터뷰라도 했으면 좀 더 쉽게 기억하실 수 있으셨을텐데 아쉽게도 그럴 기회가 없었네요. 


두 분께 인사가 아닌 사과부터 드려서 의아하시죠? 사실 10년도 훨씬 더 지난 일이고 아마 기억하지 못하실수도 있지만, 전 두 분께 마음의 빚이 있어요. 그 빚은 지금까지 문득문득 저를 찾아와 제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죠.

     

더구나 작가가 된 후 이곳 브런치에서 ‘연예와의 연애’라는 매거진을 운영하면서 기자와 언론에 대해 쓴소리도 하고 있는데요, 자기반성 없이 남에 대한 비판만 쌓아가는 것도 모순이자 내로남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었습니다. 아주 많이 늦긴 했지만 두 분께 이 자리를 빌어서라도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유재석씨 그리고 배우자인 나경은 아나운서, 그 땐 정말 죄송했어요. 두 분의 열애 사실 공개 이후 팬들은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죠. 하지만 연예 언론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어요. 두 분이 열애 중인데 구체적인 혼담이 오고가지 않아 둘 사이의 이상 기류가 있는 것 아니냐는 몹쓸 관측도 있었고, 저희 데스크는 당사자들의 결혼 언급이 없으니 양가 부모님을 직접 만나 결혼 여부에 대해 취재를 하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유재석씨가 대중들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이라고 해도, 본인이 원치 않는 경우 사생활 관련 질문은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일반인인 부모님의 경우는 더 언급할 필요도 없겠죠. 하지만 대중들의 인기로 먹고산다는 이유만으로 연예인들의 사생활은 ‘국민들의 알 권리’로 둔갑했고, 본인 동의 없는 취재 역시 ‘기자 정신’으로 포장되는 게 연예 매체들의 문화(?)였습니다. 그렇게 들이대는 기자에겐 ‘맨 땅에 헤딩한 열정넘치는 기자’라는 훈장도 달아줬습니다.

     

그렇게 저는 ‘안 돼 가지마. 거절해’라는 제 마음 속의 소리를 무시하고 데스크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그릇된 기자정신에 잠시 취하기도 했고, 기자보다는 소속된 회사(매체)에 충성을 다하는 회사원의 마인드가 더 강했던 것 같아요.

     

입소문들을 모으고 발품을 팔아 나경은 아나운서의 부모님과 할머님이 계시는 고향집과 일터를 찾아갔습니다. 당황하신 기색이 역력해서 더 이상의 취재는 하지 못했고, 서울로 돌아와서 데스크에게 많이 혼났습니다. 알아낸 내용도 없거니와 데스크가 유재석씨 소속사로부터 항의전화도 받았거든요. 물론 제가 스토커처럼 달라붙어서 질문 공세를 하고 낚시성 기사를 만들 수 있는 발언을 얻어올 수도 있었을겁니다. 하지만 부모님을 괴롭히기보다는 차라리 제가 데스크에게 깨지는 편이 마음은 편해서 취재 흉내만 내고 현장에서 물러났습니다.

     

데스크가 만회의 기회를 준 것일까요, 이번엔 유재석씨 부모님을 만나보라고 지시를 내리더군요. 하지만 두 번이나 그런 짓을 하는 건 정말 싫었습니다. 그래서 데스크에겐 유재석씨 취재간다고 회사를 나가서 길거리를 배회하며 방황했어요.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말이죠. 이후 데스크에겐 유재석씨 집 위치를 알아냈지만 부모님께서 언급 자체를 안한다고 거짓 보고를 올렸어요. 데스크가 이 글을 보면 부들부들 하겠지만 당시 행동에 대해 후회하진 않습니다. 

     

어쨌든 두 분이 결혼식을 올리면서 ‘결혼 여부를 알아내라’는 취재도 자연스레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아주 많이 늦었지만 그 때 부모님께 큰 민폐를 끼쳤습니다. 죄송합니다. 늦었지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배우 김상중씨께도 이 자리를 빌어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 역시 10년도 훨씬 더 지난 일인데요, 당시 김상중씨께서 부친상을 당하셨다는 소식을 전해지자 빈소 취재를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빈소 스케치가 아닌 무려 ‘단독 인터뷰’ 지시였습니다. 아버지를 여읜 분을 상대로 어떻게 이런 취재를 하느냐고 반기를 들었지만, ‘눈물의 사부곡’을 주제로 아름답게 기사를 쓰면 문제될 것이 없지 않느냐는 답을 들었습니다.

     

사진기자와 함께 장례식장을 찾았습니다. 김상중씨께 위로는커녕 카메라를 들이대야 하는 상황이 너무 죄송했고, 정말 이래야 하나 자괴감도 들어 장례식장 주차장에서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그러자 데스크는 전화로 왜 이리 오래걸리느냐고 다그쳤고, 사진이라도 찍어오라고 재촉했어요. 결국 사진기자가 빈소입구에서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고, 저와 사진기자는 소속사 관계자로 보이는 분께 제지를 당하고 쫓겨났습니다.


유재석씨 건도 엄청난 민폐인데, 김상중씨 경우는 민폐를 넘어 패륜이었습니다. 엄격 근엄한 유교문화가 아직 남아있는 한국사회는 남자들에게 절대 눈물을 흘리지 말 것을 종용합니다. 하지만 그 꼰대스러운 유교문화에서조차 남자들에게 평생 세 번 눈물 흘릴 기회를 인정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죠. 그 만큼 부모님과의 사별은 슬픔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 ‘눈물의 사부곡’이라는 말도 안되는 지시를 받들어 취재를 감행하려 했던 제 자신을 반성합니다. 아울러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렇게 세월은 많이 흘렀습니다. 두 분께서는 제가 언급한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실수도 있고, 흐릿한 옛 일로 남아있을 수도 있고, 별 것 아닌 듯 무심히 넘기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연차가 쌓이고 후배들이 늘어나면서 그런 식의 취재로부터 해방이 되었고, 기자생활 말년엔 그런 일들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늘 마음 한 구석은 무거웠습니다. 연예매체의 취재행태도, 그런 취재를 통해 나온 기사들은 예전과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죠. 지면에서 온라인으로, 모바일과 유튜브, SNS로 플랫폼만 바뀌고 그에 따른 기사형태만 바뀌었을 뿐 질낮은 뉴스로 대중들을 현혹시키고 세상을 오염시키는 건 여전합니다. 

     

기자세계에서는 여전히 ‘이슈파이팅’이라는 숭고한 사명(?) 아래 위와 같은 행태가 자행되는데요, 기자들은 모르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제 다 압니다. 이슈파이터가 아니라 뒷골목 파이터임을, 알권리란 가면을 쓴 양아치임을, 기자가 아니라 기레기임을 말이죠.     


어쩌면 10년도 더 지난 일을 굳이 지금 끄집어내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고 동료 선후배 기자들은 비겁하다고 할 수도 있고, 취재에 실패한 무능한 기자의 자기변명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한 때는 자신도 기자였으면서 그런 취재 행태에 동조하고 행동으로 옮겼으면서, 태세전환해서 관심이나 받으려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 어떤 비난도 비아냥도 다 좋습니다. 그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고요, 전 그럴 의도도 전혀 없습니다. 사과글을 통해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더 늦기 전에 용기를 냈을 때 사과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저 사과 그 자체로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기자생활을 계속 이어나갔다면 취재현장에서 직접 사과를 드렸겠지만, 이제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기에 이렇게나마 글을 남겨봅니다. 두 분께서 이 글을 읽어주신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제 과거를 반성하고 앞으로 제 스스로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난날의 저와 결별하고 새로운 저로 거듭나겠습니다. 작고 초라한 마음이지만 제 진심을 받아주셔으면 합니다.      


“유재석씨, 김상중씨 그 땐 정말 죄송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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