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차(성남 - 수원)
예정대로 아침 일찍 일어났다. 연습이랍시고 2주 전부터 5~10km 정도 길을 몇 차례 걸어보긴 했지만 그땐 배낭도 없었고 길도 편한 산책로였다. 제대로 배낭을 메고 걸었을 때 내 속도가 얼마나 나올지는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2년 간의 직장 생활로 다져진 완벽한 운동부족의 몸뚱이를 소유하고 있었다. 홀로 떠나는 여행이지만,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이 내 몸이기도 했다. 그래서 최대한 일찍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배낭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옷을 챙겨 입었다. 언더레이어가 내 몸에 쫙 달라붙으며 몸의 굴곡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자, 이 여행을 결심한 것이 조금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행 계획을 들은 어머니는 가다가 힘들면 바로 집에 올 거라는 내 말에,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뭐라고 썰어야지."라고 하셨다. 칼날이 내 몸처럼 뭉뚝하게 느껴져 뭐가 썰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의 말씀을 되새기며 배낭을 둘러멨다. 2016년 4월 27일 오전 7시 10분. 드디어 집을 나섰다.
우리 집은 성남 분당이다. 그리고 분당의 젖줄인 탄천은 남북으로 흐른다. 탄천을 따라 산책로가 아주 훌륭하게 조성되어 있다는 건 여기 주민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남쪽으로 향하는 나의 여정에 딱 알맞은 첫 구간이라 생각했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꽃가루가 날리는 산책로를 따라 상쾌하게 걷기 시작했다. 날씨는 적당히 흐려 시원한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출근하는 직장인, 통학하는 학생들이 괜히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 자격지심 비슷한 것을 애써 꽃가루와 함께 날려버리며 걷고 또 걸었다. 점심 즈음, 생각보다 훨씬 일찍 성남을 벗어나 용인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배가 고파졌다. 마침 용인에 외갓집이 있다. 전화를 해 점심을 먹으러 가겠다고 하자, 흔쾌히 그러라고 하신다. 그리고 잠시 후, 큼지막한 배낭을 짊어지고 온 외손자를 보고는 조금 놀란 눈치로 물으신다. "어디 여행 가려고?" 걸어서 여행할 거라는 말에, 조금 더 놀란 표정으로 다시 물으신다. "여기까지는 차 끌고 왔어?"
남쪽으로 향하는 내 여정을 배려하신 것인지, 두 분은 나를 남도식당으로 데려가서는 꼬막정식을 먹이셨다. 든든하게 밥을 먹는 동안 참 고마웠던 건, 두 분은 나에게 '왜'냐고 물어보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아마 도대체 이 놈이 왜 이러는지 궁금하고 걱정도 되고, 조금 심하게 말하면 혼이라도 내고 싶으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나에게 건넨 말은 오로지 조심히 잘 다녀오라는 말 뿐이었다. 아, 하나 더. 수원 쪽으로 가는 길이 어느 방향인지도 알려주셨다. 덕분에 속이 꽉 찬 꼬막처럼 든든한 몸과 마음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잠시 후, 용인까지 이어지던 탄천이 끝나고 차도를 따라가는 인도로 접어들었다. 탄천을 따라 걸을 때보다 확실히 탁해진 공기와 무거워진 몸을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아침 일찍 출발한 덕분에, 오후 5시 정도에 예정한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오늘 목적지는 수원 영통이다. 출발 전 찾아보니 수원까지 30km 조금 안 되는 거리가 내 첫날 코스로 딱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통에 살고 있는 친한 동생과 저녁을 먹기로 미리 약속을 잡아놨다. 나와 비슷하게 직장 생활을 시작해, 나보다 먼저 사표를 던지고 놀고 있던 자기계발을 하고 있는 친구다. 원래 끝까지는 아니어도, 일부 구간 함께 걸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러지 못할 거 같다는 의사를 전해왔고, 대신 밥이나 한 끼 하기로 한 것이다(물론 친구가 사기로 했다). 다만 점심에 먹은 남도 꼬막정식이 너무 푸짐했는지 생각보다 배가 고프지 않아 간단히 김밥으로 저녁을 해결했고, 김밥을 먹으며 함께 찜질방에서 첫날밤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사실 여행과 동시에 팟캐스트 방송을 하기로 결심하며 가장 걱정했던 것이 숙박이었다. 모텔 같은 곳이라면 노트북 따위를 쓰는 데 큰 지장은 없겠지만 내심 가격이 부담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찜질방을 가자니, 왠지 도난당할까 겁이 났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친구가 있다고 그런 위험이 크게 줄어드는 건 아니겠지만, 심리적인 안정이라는 게 확실이 존재했다. 어쨌든 덕분에 한결 편한 마음으로 찜질방에서의 첫날밤을 보낼 수 있었다. 친히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병맛의 즐거움을 더해준 것도 고마웠다. 그렇게 무사히 첫 날을 마무리한 것에 감사하며, 작은 소망을 빌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어느 소녀의 말처럼, 아니 어쩌면 그 소녀보다 더 간절하게, 꽃길만 걷게 해 달라고 말이다.
2016년 4월 27일 수요일(1일 차)
여정 : 경기도 성남 - 경기도 수원
총 거리 : 28.54km(누적거리 : 28.54km)
소요 비용 : 24,000원(찜질방 8,000 x 2, 음료(식혜, 미숫가루) 8,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