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차(평택 - 천안)
풋풋하던 대학생 시절,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도 낭만을 품고 유럽 여행을 떠났다. 다만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더 열정이 넘쳤던 모양인지, 휴학을 지르고 자전거를 짊어지고 떠났다. 그리고 네 달 간 자전거를 타고 서유럽을 일주했다(정확히는 자전거 여행 2달 반 + 배낭여행 1달 반). 그때 가장 놀랍고 신기했던 건, 육로로 국경을 넘는 경험이었다. 그저 표지판을 하나 지났을 뿐인데 마을의 풍경과 집들의 모양이 확 바뀌었다. 사람들의 언어가 변하고, 그들의 인상도 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데다가 남은 한 면은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반도 국가에서 태어난 청년에게 그 경험은 생전 해보지 못한 놀라운 것이었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평택에서 출발한 지 얼마 안돼 경기도에서 충청도로 진입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내심 그때처럼 경계를 넘는 순간 뭔가 달라질 거라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경(國境)이 아닌 도경(道境)이기 때문일까. 경기도와 다른 충청도만의 무언가를 딱히 발견할 수는 없었다. 다만 때때로 풍기는 똥냄새 고향의 냄새가, 어쨌든 내가 수도권과 멀어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오전 내내 차도를 따라 걸었다. 어제도 대부분 차도를 따라 걷느라 불평했는데 그래도 어제는 인도가 있는 차도였다. 하지만 오늘은 반나절을 꼬박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의 갓길을 따라 걸었다. 여기에 다리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변함없이 아팠다. 고등학교 시절 야구방망이로 체벌을 하던 담임 선생님이 있었다. 한 대를 맞으면 순간 마비가 된 양 아프지 않다가, 다음 타격을 위해 방망이가 다시 엉덩이를 향할 즈음 통증이 시작된다. 그 통증 위에 두 대 째 타격이 가해지면 또 순간 마비가 된 듯 아프지 않다가, 세 번째 타격 전에 또 아프기 시작한다. 타격이 계속될수록 마비되는 시간이 짧아지고, 다섯 대가 넘어가면 마비고 뭐고 마냥 아팠던 기억이 난다. 오늘 내 다리가 딱 그렇다. 그래도 처음엔 조금 쉬면 잠깐 괜찮아졌다가 서서히 아파지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쉬어도 계속 아프다. 지금 걷는 모습이 차도 옆에서 날리는 흙먼지를 마시며 엉덩이를 계속 맞고 있는 꼴이라고 생각하니,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다.
천안에 접어들었다.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시내를 지나 남쪽으로 걸었다. 그 많던 사람들은 금방 사라졌지만 그래도 오후의 여정은 오전보다 훨씬 상쾌했다. 길을 따라 나무도 예쁘게 늘어서있고, 중간중간 공원도 나왔다. 무엇보다 인도가 있었다. 걸으면서 느낀 거지만, 나무가 있고 없고는 걸을 때의 컨디션에 굉장히 큰 영향을 줬다. 괜히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 게 아니구나 싶으면서, 식목일이 다시 공휴일로 지정되길 간절히 소망해본다(응?). 오전과는 사뭇 다른 오후의 걷기를 마치고, 오늘도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여전히 다리를 비롯해 몸 여기저기가 이상신호를 보내고 있고, 이 비루한 몸에 제공해줄 수 있는 건 최대한의 편안한 잠자리뿐이었다. 부디 하룻밤의 휴식이 다리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길 바라며, 잠자리에 든다.
2016년 4월 29일 금요일(3일 차)
여정 : 경기도 평택 - 충청남도 천안
총 거리 : 33.31km(누적거리 : 97.62km)
소요 비용 : 51,600원(모텔 40,000원 + 아침 3,300원 + 점심 5,000원 + 저녁 3,3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