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차(대전 - 논산)
민호와 함께 걸었다. 아니 좀 더 적확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민호를 따라 걸었다. 민호가 나보다 빠르리란 사실은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다. 5일간의 걸음으로 내 다리는 이미 많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고, 민호는 싱싱한 다리를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거기다 나보다 배낭도 훨씬 가벼웠다. 이유야 어떻든 하루 종일 민호는 나보다 조금 앞서서 걸었고, 중간중간 돌아보며 나를 기다려주었다. 졸업식 노래처럼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걷고 싶었으나, 끌기만 했을 뿐 밀지는 못했다. 내 상한 다리는 이 몸뚱이 하나 앞으로 밀어내기에도 버거워했다. 날씨는 또 어찌나 변덕스러운지, 오전에는 말릴 듯 쨍쨍 내리쬐던 해가 오후에는 사라지더니 급기야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명태가 황태로 변하듯, 내 얼굴도 땀과 비에 젖고 마르기를 반복하며 황달처럼 누렇게 떠가고 있었다.
도보여행을 말했을 때 극구 만류하던 친구가 있었다. 요즘도 방학이면 무리를 꾸려 국토대장정을 떠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경험을 가진 친구였다. 자신에게 국토대장정은 인생 최악의 경험 중 하나였다며, 운동 능력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걷지만 일정한 속도를 강요받아야 하는 시스템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하나에서 둘이 됐을 뿐이지만, 그 친구의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민호와 나의 페이스는 달랐다. 민호는 빠르고 나는 느렸다. 다행히 친구의 국토대장정과 다른 점이 있다면, 빠른 민호가 나를 배려해줬다는 것이다. 앞서 가면서도 수시로 나의 위치를 체크했고, 먼저 가서 기다리다가 내가 도착하면 물을 건넸다. 하루 종일 저만치 앞서 가는 민호의 뒷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혹은 경험했던 많은 집단은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일정한 페이스를 강요했다. 자란 배경과 가진 능력치, 받은 교육의 양 등 다른 것이 너무 많은 개개인에게 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뒤쳐진 사람들보다는 앞선 사람들의 페이스에 맞추길 요구한다. 내가 아무리 힘을 내도 민호를 따라잡을 수 없었던 것처럼, 종종 쳐지는 이유가 노력의 문제만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세상은 민호처럼 조금 뒤쳐진 사람들을 기다려줄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잡생각을 하늘이 알았는지, 얼른 걷기나 하라며 뙤약볕과 부슬비를 내려주셨다. 꾸덕꾸덕한 황태가 되어갔다.
계룡에 진입했다. 국방수도이자 삼군(三軍)의 본부가 있는 곳이라기에 번화한 도시일 거라는 기대를 했다. 물론 내가 지나친 계룡은 도시 전체의 일부분에 불과했겠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붐벼야 할 기차역 주변마저도 너무 한산했다. 변변한 식당도 없어서 김밥나라에서 점심을 해결했을 정도였다. 민간인, 군인 구분 없이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인정(人情)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까. 오후 들어 민호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있었다. 내심 눈치가 보였지만 왜 그러냐고 묻기에는 그가 여전히 앞서 있었고, 나는 여전히 느렸다. 비는 그칠 듯 그칠 듯 그치지 않았다. 심지어 길도 계속 인도 없는 차도가 이어졌다. 우리를 굳이 배려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화물차들이 쌩쌩 지나갈 때마다, 약간의 위협까지 느껴졌다. 원래 계획했던 목적지를 4km 정도 남겨두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 결정에는 민호의 굳은 표정도 한 몫했다. 마침 근처에 마트가 있기에,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들고 모텔에 짐을 풀었다.
씻고 저녁을 먹으며 왜 그리 표정이 안 좋았냐고 물었다. 민호는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고 답했다. 차도를 따라 걸을 줄 몰랐고, 심지어 비까지 와서 조금 짜증이 났다고 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가지로 열악한 상황이었고, 나도 짜증이 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앞으로 민호와 얼마간은 함께 걸어야 했기에 생각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할 때 제일 중요한 건 배려인 것 같다고. 결국 둘 뿐인 여행에서 내가 볼 수 있는 건 너의 얼굴뿐이고, 너의 표정은 나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물론 반대의 상황도 벌어질 수 있기에, 나 역시 너에게 최대한 밝은 표정을 보이려 노력할 거라고. 몸이 힘들 수밖에 없는 이 여행에서 꼭 필요한 태도인 것 같다고. 그게 내가 생각하는 함께 여행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인 것 같다고 말이다. 이번엔 고맙게도 민호가 고개를 끄덕여줬다. 사실 언젠가 친구와 함께 떠났던 여행에서 내가 민호의 위치였던 적이 있었다. 그때 친구도 나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만 당시에는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쩌면 이제야 그때의 친구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하는 여행은 '모든 것에 대한 자유'라는 확실한 장점이 있지만, 그 자유가 조금은 제한되는 '함께 하는 여행만이 줄 수 있는 깨달음'이라는 것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그리고 오늘, 덕분에 두 가지는 확실히 배웠다. 이 모든 영광을 민호에게 돌리며 잠자리에 든다. 여전히 내리는 비가 잘했다는 듯 박수소리를 내며 짝짝, 창문을 두드린다.
2016년 5월 2일 월요일(6일 차)
여정 : 대전 유성구 - 충남 논산시
총 거리 : 34.22km(누적거리 : 193.12km)
소요 비용 : 58,500원(모텔 30,000원 + 점심 11,000원 + 저녁 17,500원) *민호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