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과 사이렌의 여름, 마을을 걷다

by 엠마

우리는 운 좋게도, 1년에 단 한 번 열린다는 이 지역의 축제를 경험하게 되었다. 도착 전날부터 마을은 분주했다. 일부 도로는 통제되었고, 공공 쓰레기통은 일제히 치워졌다. 그 모습을 본 시누이는 말했다. “혹시 모르잖아, 축제 전에 폭발물 검사도 하거든.”


평화롭게만 보이던 마을의 이면에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안고 있는 ‘안전’이라는 과제를 문득 떠올렸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총기 사건 뉴스들은 이방인인 나에게 낯설면서도, 이제는 어쩐지 납득이 가는 현실로 다가왔다.


다음 날 아침,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이른 시간에 길을 나섰다. 마을 사람들은 각자 자기 집 앞에 의자를 내놓고, 바닥에는 아이들과 함께 손으로 쓴 ‘Welcome’ 메시지가 놓여 있었다. 이 축제는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누구나 주체가 되는 마을의 잔치였다.


경찰차의 사이렌이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그 소리를 신호로, 퍼레이드는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마을의 회사들, 동호회, 교회, 클럽, 그리고 유치원 아이들까지. 사람들은 각자 분장을 하고, 알록달록한 수레 위에서 사탕과 셔츠, 기념품을 관중들에게 던졌다.


익숙한 풍경도 눈에 띄었다. 동양계 얼굴이 반가운 태권도 도장의 아이들, 시니어 밴드의 멋진 연주, 강아지들과 함께 가족 단위로 등장한 분장 행렬. 구경하는 사람이나 참여하는 사람 모두 흥에 겨워 몸을 들썩였다.


“미국 부모들은 대부분 맞벌이야,” 시누이가 말했다. “그래서 여름방학이 되면 이런 지역 행사를 통해 가족이 함께 모이는 시간을 만들지.” 사탕을 줍는 아이들의 손은 바쁘고, 부모들은 그 옆에서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가득 담은 사탕 봉투는 아이들의 간식이 되고, 남은 것은 핼러윈에 다시 쓰인다고 했다. 무엇 하나 버리지 않고 기억으로 되새기는 그들의 생활 방식이 신기하고 정겹게 느껴졌다.


축제의 마지막은 마을 끝에 마련된 행사 부스에서 마무리되었다. 음식 냄새가 풍겨오는 작은 텐트들 사이로, 사람들은 테니스 경기장을 둘러싸고 함께 응원하며 하루를 즐겼다.


돌아오는 길, 나는 생각했다. 이 축제는 단순한 볼거리 그 이상이었다. 익숙한 얼굴들이 서로를 다시 발견하고, 평일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는 정서적 쉼표였다. 그리고 아이들의 손에 들린 작은 사탕 하나가 가족 간의 추억을 엮고, 이웃 간의 인사를 만들어 내는 연결 고리가 되었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이 여름날의 축제는, 결국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한 작고 따뜻한 증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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