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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래하는얼룩말 Nov 16. 2021

내가 괴물이었다.

한약을 쏟은 아이에게 소리치는 엄마다. 나는


유독 큰 아이에게 나의 감정을 표출하는 일이 참 많다는 걸 느끼고 있다.

무섭게 돌변하는 그런 화는 내지 말아야지,

내 화를 내 아이에게 전달하지 말아야지,

늘 되뇌고 또 생각하는 부분인데, 오늘도 놓쳤다.



알레르기 때문에 큰아이가 한약을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 먹어야 하는 약이고,

사실 저렴한 약도 아니기에, 제대로 효과를 봐야 하니 잘 명심하고 있다가 등원 전 한 포, 저녁에 한 포씩 중탕해서 먹이고 있다.



오늘 아침이다.

중탕한 한약이 적당히 식었을 때, 머그잔에 따라두고는

'유치원 늦지 않게 약 먹자. 흘리기 전에 빨리 먹어. 엄마 아까도 이야기했지?' 하며

아이를 다그치며 나는 바삐 집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제 던져두었던 수건들을 모아 빨래통에 갖다 놓기도 하고,

어지러운 잡동사니를 제자리에 두기도 하고,

이부자리를 정리하기도 했다.



그러다, '아! 흘렸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흘렸겠거니 하고 거실로 갔더니,

머그잔이 옆으로 누워 있고, 테이블로 한약이 흘러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1초, 2초, 3초 누가 말했지? 3초만 참으라고,

3초는커녕 나는 '야!' 하고 소리를 지르기에 이르렀다.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얼었다.

옴짝달싹 못한다.



등원하려고 현관 앞에 서 있던 조카까지 함께 얼었다.

우리 집 작은 녀석은 갑자기 뭔가를 분주히 치우기 시작한다.

갑자기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나는 민망했다.

민망했지만 감정은 그대로였다.


큰 아이를 방으로 불러들여 앉으라고 하고는

"왜 엄마 먹으라고 할 때 안 먹었어? 지금 이렇게 쏟는 게 몇 번째야?" 하며 질문을 하니,

아이가 손가락을 세 개만 피더니, 세 번째 요 한다.

아이의 쏟아진 한약을 생각하니 아직도 나는 감정이 온전치 않았다.


그로 인해 등원이 늦어지고, 또 옷도 새로 갈아입어야 하고 또 집은 더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런 상황들이 줄줄이 이어지니, 감정 컨트롤이 되지 않더라.

"다음에 또 이렇게 쏟으면 어떡할 건데? 어?!" 하며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을 했다.

아이는 잔뜩 얼어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런데 차마 울지는 못한다. 울면 엄마가 또 혼을 낼 거라는 상황을 직감한듯하다.

또 되물었다. '꽥' 소리를 지르며 "어떡할 거냐고!"

아이는 울음을 꾹 참으며 "나도 모르겠어요"



아차 싶었다.

무슨 대답을 듣고 싶어 아이를 이렇게 몰아세웠나.

그 아침 상황이 답답하게 흘러갔을지언정,

어서 상황을 정리하고 아이가 기분 좋게 등원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는데

나는 말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다 너 때문이야'라는 느낌을 그대로 아이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그때야 정신이 들어 아이에게 엄마에게 안기라는 손짓을 했더니, 냉큼 달려와 와락 껴안는다.

그러면서 서러운 마음이 북받쳤는지

"아까 진짜 잘 잡으려고 한 건데, 그러다가 미끄러졌어요" 하

품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더라.



"모르고 그랬어?"

"응 모르고 그랬어요." 하며 아이는 조금 진정된 듯 대답했다.

아이의 아픔을 치료하려다가 아픔을 주는 건 아닌가 싶어 미안했다.



"엄마가 그것도 모르고 진우한테 무섭게 말해서 미안해"라고 사과했더니 "괜찮아요" 한다. 가끔은 나보다 한참 성숙한 어른처럼 느껴진다.

물티슈를 들고 가 흐르고 있는 한약을 닦고 있는데,

어느새 내 곁으로 와 함께 닦고 있더라.

묻지도 않았는데 벵삭이 (제주도 사투리 : 빙긋이) 웃으며

"엄마 도와주려고요" 한다.



이 순수한 아이한테 아침의 나는 괴물이었다.

내 표정을 보며 얼어버린 아이의 모습을 보는 건,

썩 좋은 느낌이 아니었다.

나의 감정 표출로 집안의 분위기가 차가워지는 건,

엄마로서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또 자부했으나,

나는 자꾸 다른 길로 가고 있더라.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란다면

나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공부해야겠다. 그것이 엄마가 할 일이다.


나는 엄마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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