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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래하는얼룩말 Nov 11. 2021

엄마가 백 명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놀아주는 엄마가 제일 필요해요 

애들 한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잠깐만, 기다려줘" 

"엄마 이것만 하고" 

"응 응, 알겠어 잠시만" 

"아 까먹었다, 미안, 이거 하느라고" 


애들도 익숙한지 처음에는 내게 클레임도 걸고, 

왜 빨리 안 해주냐고 성화도 했지만 

이제는 점점 익숙해지는지, 

점점 빨리 포기하고, 체념한다. 


알면서도 나도 몸이 하나라 

아이들 하원과 동시에 정신이 없는데 일단 내 손은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아이들에게 손을 씻으라고 지시 아닌 지시를 한 뒤, 

나도 재빨리 부엌으로 가 손을 씻고 쌀을 씻어 밥을 안친다. 


그사이에 애들에게 물 첨벙첨벙 하면서 노는 게 어떠냐고 꼬신다. 

고개만 끄덕이면 일사천리인데 

그런 날, 그렇지 않은 날이 있다. 

운이 좋아 바로 목욕하겠다고 하면 한 놈씩 옷을 벗으라 일러두고, 

바디 워시로 머리 감 기부 터 발바닥 끝까지 올인원으로 거품을 묻혀 그대로 헹궈낸다. 


애들을 욕조에 두고는 

나는 또 부엌으로 가 냉장고 문을 열어본다. 

콩나물이 눈에 띈다, 그리고 팽이버섯과 유통기한 임박한 맛살까지 

일단 국을 끓여야 하니 다시팩을 넣고 국물을 우리고 

빠르게 검색한다. 맛살을 해치워야 한다는 압박이 밀려온다. 


다행히 팽이버섯과 맛살을 이용해 부쳐 먹는 전이 있어서 

재료를 손질하고 달궈진 프라이팬에 막 올리는데 

"나 나갈래요" 욕실에서 소리가 들린다. 

아 십 분만 있어주면 좋겠구먼 그게 내 맘 같지 않다. 


재빠르게 욕실로 가서 또 아이를 헹궈 수건으로 대충 닦고 내보내는데 

전이 다 탔다. 불을 낮추려는 게 옆 화구의 불을 낮췄나 보다. 

괜히 아이에게 화를 냈다. 

둘째까지 씻기고 몸을 닦아 주니, 내 에너지가 나감을 느낀다. 


내 새끼를 먹인다고 또 부리나케 부엌이다. 

"엄마 머리 말려 주세요."

"엄마 책 읽어 주세요. "

"엄마 이거 그려주세요."

"엄마 나 딱지 접기 하는 거 아는데 알려줄까요? "

"엄마 나랑 놀아요. "

엄마, 엄마, 엄마, 엄마 하는데 


"응, 잠깐만, 이따가, 이것만 하고" 또 늘 같은 말로 거절하는데 

우리 아이들이 서로 대화한다. 

"형아, 엄마가 백 명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응~ 놀아주는 엄마, 책 읽어주는 엄마, 밥 하는 엄마, 청소하는 엄마, 같이 잠 자주는 엄마, 목욕해주는 엄마 그럼 우리랑 놀아줄 수 있을 건데" 

미안했다. 애들에게

너희를 위한 일을 하면서 너희를 위한 일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현실이 나도 이해가 안 가는데 

너희는 이해가 가겠니 싶었다. 


그러다 우리 큰 애가 

"그럼 엄마가 안 힘들 텐데 그렇지?"

하는 순간 나는 또 주책바가지가 된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저 시간을 같이 못 보내는 것에 대한 아쉬움인 줄 알았더니, 엄마의 수고로움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나 보다. 


남자애들이라 공감능력이 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충분히 느끼고 이해하고 있었다. 

엄마가 백 명이 되는 체력을 키워서 우리 삐약이들이 원할 때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함께 할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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