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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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MBY




번호를 차단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취한 상태로 전화를 걸게 될 까봐 술을 끊었다.

맑은 정신으로 자리에 누우면

갖가지 생각들이 밀려들었다.


엄마가 오랜시간 불면에 시달려 온 것을 알고있었지만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 이토록 성가신 일이라는 걸 미처 몰랐다.

매일 두 시간도 채 잠들지 못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엄마가 평생 시달려온 불면증은

어쩌면 그녀의 존재를 설명하는 하나의 양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내가 잘 사는 것이 중한 딸이라

그 오랜 불면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깊은 밤까지 불이 켜진 안방은

어느 순간부터 아빠가 일찍 귀가한 날에도 어두워지지 못했다.

엄마는 종종 거실을 배회하곤 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부엌 찬장 안에 수면제 봉투가 놓여있다.

내과 의사의 이름이 적힌 수면제 봉투는

어쩌면 정신과 의사의 이름이 적혀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시계바늘이 새벽4시를 가리킨다.

살며시 방문을 열고 부엌으로 향한다.

잠귀가 밝은 엄마가 깨어날까 걱정이되어

불을 켜지 않고 휴대폰 불빛으로 길을 찾느다.

찬장 문을 열고 약 봉투를 뒤적인다.

한 개 혹은 두 개를 집어야하나 잠깐 갈등한다.

약의 부피가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일까 마음 졸이며.

약 봉투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토요일 아침.

무작정 집을 나와 가장 먼저 정류장에 선 버스를 탄다.

버스 안에서 너와 함께 듣던 음악들이 흘러나온다.

그럴 때면 내 삶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보다

너를 위해 내가 했어야 했던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머릿속에 구체화 되지 않는 관념들이 뒤엉키면

자꾸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게 되고,

그럴 때면 나의 의식은 늘 ‘내가 왜 그랬나’보다는

‘그러지 말걸’ 같은 대책 없는 후회로 치닫곤 한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나는 용기가 없고 사람들의 시선이 중요한 사람이다.

부모를 이길 만큼 내 사랑의 강도가 크지 못한 것을

지난 2년간 여러 번 확인했다.

그런데도 자꾸만 보고 싶다.


그리고 막아둔 빗장을 연다.

수신 거부함에 들어가 앉아 있는 너의 메시지들.

원망. 체념. 증오가 뒤섞인 짧은 메시지들을 보고야 만다.

말이 없는 너여서 짧은 메시지들이 더 밀도 있게 다가온다.


결국에 너의 집 앞으로 간다.

무엇을 하려는지 정하지도 못한 채.

그저 한 번만 보고 싶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서.


자켓 주머니에 든 비닐을 만지작거린다.

손에 작은 알약 한 개가 닿는다.

오늘은 잠들 수 있을까.

미안하다 말하면 편히 잠들 수 있을까.


너의 작은 원룸 건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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