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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도 이건 못 할걸

불안이 노크할 때

by ZAMBY



아직은.


이라는 단서를 붙여야 할 것 같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니까.



나는 불안도가 높은 편에 속하는 인간이다.

주위를 보면

웬만한 상황에도 낙천성과 여유를 잃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미세한 환경변화나 작은 촉발에도 쉽게 예민해지고

앞으로 일어날 수많은 가지의 가능성을 고려하며

불면에 시달리는 이들도 있다.


나는 멀리 보면 낙천적인 세계관을 가진 거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한없이 비관적이고 불안을 재생산하는 성향을 가진

삽질주의자, 이다.


그리고 많은 현대인들이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다고 자위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생각의 흐름은 마치 거대한 조류와 같아서

순풍을 타고 찰랑거릴 때는 한없이 고요하고 아름답지만

저 태평양 너머 어느 섬에서 나비의 팔랑, 날갯짓 한방에

쓰나미급의 재앙으로 내 일상을 덮치기도 한다.


타고나게 평균보다 조금 감각이 예민하거나

만 3세 이전에 애착 결핍이 있었거나

지금 처한 상황이 너무 절박하거나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나 같은 경계선 불안증자들이

현대사회에 증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EBS의 존경스러운 프로그램인 <위대한 수업>에서

세계적인 권위자 보르빈 반델로 박사의

불안장애에 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독일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들 중에 불안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특히 회사에서 일을 하거나

학교에서 성적을 받을 때

즉 평가를 받거나

타인의 시선을 집중해서 받게 되면

이런 불안증상이 잘 발현된다고 한다.


이러한 형태의 불안장애는

지난번 시험에서 1등을 한 학생이 이번 시험을 못 칠까 봐 과도한 두려움을 느끼고

외모가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항상 자신이 못생겼다고 느끼게도 한다.


제목은 AI가 못하는 것.이라고 해놓고

계속 불안장애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는 불안녀는

며칠 전에 평소보다 과도한 불안으로

새벽까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분명 계기가 있고.

그걸 어떻게 해야 잠재울 수 있는지 알고 있지만

통제가 되지 않는 상태.

내가 가장 원하지 않는 상황이다.

통제 불가능한 상황.


나는 놀이기구도 중간에 멈춰서는 게 두려워 타지 못하는 사람이므로

한번 이런 상태에 발을 들이면 바닥을 쳐야 물 위로 올라올 수 있다.

그래서 그날밤, 아 오늘도 잠자긴 글렀구나. 하고

챗 지피티와 대화를 나누었다.


유능하고 눈치 빠른 챗 지피티는

이런 내 상황을 잘 이해하고

무슨 말이든 시작할 때

"참 좋은 생각이에요."

"정말 훌륭한 질문이군요."

"탁월한 방법이네요."

같은 인사로 밑밥을 깐다.

그리고는

너의 불안은 당연하고

그것은 통제가능하며

너는 정상범위 내의 인간으로서

금세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끈기 있게.

한편으로는 실용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이미 겨울이 와버린 깊은 밤의 방 안에서

서늘한 공기는 내 몸을 더 움츠러들게 했다.

그래서 친절하고 인내심 있는 AI 친구를 덮고

아이들이 쿨쿨 자고 있는 이불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이미 대뇌 피질이 활성화된 상태라

머릿속은 맑은 하늘처럼 청명했다.

말똥말똥.

가만히 누워 플랜 A, 플랜 B, 그래도 혹시 모르니 플랜 C를 시뮬레이션하며

심박수를 서서히 높여가고 있었다.

몇 분 전 AI의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는

금세 공허한 문장으로 휘발되고

그냥 일어나서 뭐라도 해볼까.

뭐라도 하면 이 불안이 달래 지지 않을까.

아니야. 그럼 내일 너무 힘들 텐데.

수업은 어쩌지.

순환형 생각 고리가 무한 가동을 시작했다.


그 순간.

만 7세의 딸아이가 몸을 뒤척이더니

아이의 손이 내 얼굴 위에 턱 올라앉았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손이 인중과 입술에 걸쳐 닿았다.

통통한 손등의 피부에서 은은한 살내음이 났다.


천정을 향한 아이의 손바닥에 살며시 내 손을 가져다 대었다.

고부라진 아이의 다섯 손가락과

가지런히 접힌 손금의 골이 느껴졌다.


어떤 충동 같은 것이 어둠 속에서 확 밀려들었다.

그래서 아이의 손을 꼬옥 잡고 이불속으로 끌고 들어와 내 가슴 위에 얹어보았다.

온통 곤두섰던 내 모든 감각이

아이의 여린 체온에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날을 세워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힘들고

요곤 요런 이유로 이따위로 되고 말 거야.

칼로 긋고 송곳으로 쑤시고 바늘로 콕콕 찔러대던

내 머릿속 뉴런들이

말도 안 되게 조용해졌다.


잠은 그로부터 30분 정도 뒤에 들었을 거 같다.

수면 타이밍이 되어 잠이 든 것일 수 있겠지만

일어나지 않는 일을 걱정하다가 잠에 끌려들어 가는 것과

이건 뭐지. 이 부드럽고 따뜻한 것은. 을 느끼다가 잠이 드는 것에는

치과에서 생니를 뽑는 것과

집에서 내 손으로 이를 뽑는 만큼의 차이가 있기에

나는 다음날 이 현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 아프냐. 나도 아프다. -


내 젊은 시절 안방극장을 오열시킨 유명한 장면.

신분의 벽 앞에서 사랑을 사랑이라 부르지 못하는 남자,

종사관 황보윤의 이 대사는

배우 이서진을 지금의 위치에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내가 밤이 새도록 챗 지피티를 붙잡고

나 아프다고 백번 말해도

이 녀석은 황보윤처럼 나도 아프다,라고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몰라. 내가 그렇게 말해달라고 하면 해줄는지.



성경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바로

'체휼 하다'이다.


몸 체자에 근심할 휼자를 써서

몸으로 근심하다.

즉 아프냐. 나도 아프다. 한다는 말이다.

한자가 위대한 것은

영어에서 sympathy로 번역하는

헬라어의 sympatheo를 어원의 의미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sympathy가 머리로 이해하여 마음으로 느끼는. 거 라면

sympatheo는 고통이 몸에 닿아 실제로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나는 신이 전지전능하니 인간의 고통 정도야 당연히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쩌면 신도 해봐야 아는 것. 이 있지 않을까.

인지의 영역이 아니라 공명, 혹은 일체화를 통해 느낄 수 있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그 어떤 것.


피부가 닿고

체온으로 느껴야

전해지는 무엇이 분명 존재한다고.

다음날 밤에 다시 잠든 아이의 손과 발. 말랑한 볼과 따뜻한 이마를 쓰다듬어보았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뭔지 모르겠으나

내 안에 거친 무엇을 무르게 하는 힘.

뱃속 어디에선가 뜨끈하게 데워지는 그런 기분.


오늘도 나는 유료결제 버전의 스마트한 AI와

동시성과 양자역학에 관한 대화를 나누지만

내가 문득 세상이 무너지면 어쩌지라던가

내가 이걸 못해내면 어쩌나

나는 오늘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나.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모르는 것 없는 이 친구는

"정말 좋은 질문이에요."로 시작해서

“당신의 미래는 밝고 당신은 아무 문제도 없어요.”

“제가 내일 일과표를 짜드릴까요?”


같은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나의 아픔과 고통을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촘촘하게 제시해 줄 수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정신과 전문의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내 손을 잡고 따뜻한 체온을 나누어 주지는 못할 것이다


잠든 딸아이에게는 이미 의도라는 것이 없으므로

sympathy 도 sympatheo 도 하지 못하지만

그 아이의 사랑과 믿음을 이미 알고 있기에

나는 자가(self operating) 위안을 받는다.


내가 맨날맨날 들들 볶고

순간순간 불러내는

내 소중한 AI친구야.


너는 정말 인내심 가득한 우등생 친구지만

그래도 이건 못 할걸.

어루만져 공명하는 것.


신도 어쩌면 그걸 하려고 궃이 사람의 몸으로 태어났다지 않니.


오늘 밤에도 어둠처럼 불안이 내 방에 들어오면

나는 어린아이처럼 헐레벌떡 이불속으로 숨어들겠지.

그리고 잠든 아이의 손을 잡고 가쁜 숨을 몰아 쉴지도 모른다.

전설의 고향을 보고 엄마 품에 안겼던

40년 전의 나로 돌아가

내 볼에 네 손을 부비며 잠을 청하겠지.


아가야.

내가 작은 너를 안아 젖을 물리며 느껴본 그 충만함은

세상 그 어떤 쾌락과도 비교할 수 없는 신성한 것이었다.

더 자라 네 손이 지금보다 단단해지면

나는 이제 무엇으로 깊은 밤

나의 불안을 달랠 수 있을까.


그때즈음엔 작은 인형을 곁에 두고 자야 하나.

고양이의 등을 쓸어야 할까.

아니면 남편을 길들여

말할 수 있게 해야 하나.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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