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하늘에 별이 있었다. 그때는.
작은 하숙집 방마다 지방에서 올라온 여학생들이 들어앉아 있었고
아담한 체구에 부지런한 주인아줌마는 계란프라이며, 소시지를 구워 아침상을 차렸다.
머리에 타월을 감고 말간 얼굴로 마주 앉아 하루를 시작했다.
저녁에는 거실에 모여 앉아 9시 뉴스나 드라마를 보았다.
나는 조기졸업을 명분으로
통학 거리를 좁히겠다는 주장을 해 독립을 얻어냈다.
내 학점이 아빠를 설득할 만큼 충분했던지,
졸업을 앞둔 동갑내기 선배들과 함께
늦은 시각까지 도서관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옆방에는 제주도에서 온 언니가 있었다.
그녀는 가족이 그리워 내 방에 와서 잠을 청하곤 했다.
너는 늘 하숙집 앞에 앉아 있었다.
앞집 대문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위에 앉아서 나를 기다렸다.
네 메시지를 기다리느라 도서관에서 휴대전화를 수없이 들여다보았다.
먼저 전화를 걸지 않는 나는
전화가 올 때까지 미세한 심장박동을 느끼며 하루를 보냈다.
이른 오후에도, 늦은 저녁에도,
너는 같은 자리에 있었다.
혹여 네가 사라질까 겁이 나서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렸다.
내가 다가가면, 너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헐렁한 청바지를 입은 네가 반쯤 웃는 얼굴로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제 가슴까지 밖에 올라오지 않는 키의 나를 폭 안았다.
말이 없었다.
가끔 하는 말이라면
“왔네.”
딱히 갈 곳도 없어서 우리는 걸었다.
가끔 오락실에 들어가 테트리스를 하기도 했고
동네 통닭집에 들어가 맥주와 치킨을 먹기도 했다.
학교 안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 별을 보거나,
자판기에서 따뜻한 캔 커피를 뽑아 나눠 마셨다.
하숙집 앞에서 손을 잡고 그네를 타듯 몸을 흔들곤 했다.
웃기지 않는데 웃었다.
어설픈 왈츠를 추었다.
히끗한 가로등 아래서.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다.
너와 나는 스물 두살과 스물 세살이었고,
그래서 그런 결정을 내리기에 단호하지 못했다.
대신 너는 두 번 세 번 다시 돌아와 내 손을 잡거나 한 번 더 안고 돌아갔다.
간절히 원했지만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너는 다만 '안녕'이라고 말하고 느리게 멀어졌다.
네가 다시 돌아올까 봐 나는 오래된 철문을 열지도 못했다.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저 문 앞에 서서 멀어지는 긴 그림자를 보았다.
“들어가.”
한 마디에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닫고도 철문 뒤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숨을 죽이고 발걸음이 멀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간질간질한 심장에 손을 얹었다.
가느다란 눈썹달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에 가면 제주도 언니가 엎드려 책을 읽고 있었다.
언니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또 왔어? 그럴 거면 그냥 데리고 들어와.”
우리는 쿡쿡 웃으며 손을 잡고 잠이 들었다.
머릿속에 가득했다.
내 방 창문 앞에 네가 서 있는 건 아닐까.
너는 잠을 잘 때 어떤 모습일까.
너의 숨소리는 어떤 느낌일까.
코를 골며 잠든 언니 옆에서 이리저리 뒤척였다.
가을이었다.
겨울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