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만드는 자와 반응하는 자

10

by ZAMBY



방으로 조용히 들어온다.


집으로 들어오는 출입문 앞에 자리한 내방은

집 안의 다른 공간과 살짝 분리되어 있다.


짧은 타지에서의 직장생활로 경험한 자취는

로맨틱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기에

나는 집으로 돌아온 후부터

아무런 불만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가족이 없는 작은 방에 들어가는 일.

문을 열면 보이는 싱크대와 침대, 문 옆에 열려있는 욕실 문.

5평짜리 방에서 주말 내내 미국 드라마 같은 것을 보며 뒹굴다 보면

잠옷을 갈아입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도 사라졌다.

그저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월요일을 맞이했다.


그리고 다시 방문이 곧 현관문인 방을 드나들며 한 주를 보냈다.

어느 날은 무거운 몸과 마음으로 새우깡 한 봉지를 들고,

또 어느 날은 원룸 앞까지 따라온 유부남 팀장님을 90도 각도로 거부하고,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나는 혼자였고,

자유로웠고,

그래서 외로웠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싶었던 방.

하지만 혼자서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방.


첫 직장생활은 지루했다.

남자들만 가득한 공장, 퇴근 후에 딱히 갈 곳도 없는 작은 도시.

하지만 그런 것들이 내 무기력이나 무료함을 완벽하게 설명해주지는 못했다.


타인의 지문이 덕지덕지 묻은 무거운 유리문, 좁은 계단과

크지 않은 철문들이 마주 본 어두운 건물의 속살.

이런 것들은 젊은 여자의 취향에 들어맞지 않았다.


어렸을 때 상상했던 스물일곱 살의 나는,

멋진 수트에 하이힐을 신고, 번쩍이는 로비에서

사람들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도시의 일부였다.

나의 스물일곱은 세련되지도, 반짝이지도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가 흘렀고

나는 매일 집이면서 또 방인 어느 공간의 문을 열고, 또 닫았다.


공무원 시험을 치겠다며,

길지 않은 직장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독서실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 면.

달그락달그락 그릇 소리가 나던 부엌.

내 이름을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

거실에서 일일 드라마를 보며 혼자 밥을 먹고 있던

엄마의 작은 등.

그런 것들이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그렇게 꾸역꾸역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늘도 작은 방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잠든 집에 조용한 나의 방.


문자메시지 알람이 울린다.

익숙한 전화번호.

하지만 이미 지워진 이름.

- 생일 축하한다.- 00:57


나는 왜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았을까.


맥락 위에 무심하게 올라앉은 배려.

설마, 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 절묘함.

담백한 표현 안에 자리한 모호함.

너의 언어는 언제나 간결하고, 여백으로 가득하다.

지금도. 그때도.


- 듣고 있어? 12:26 -


나도 같은 노래를 듣고 있다고 대답하면

너는, 나 이 노래 좋아해, 라거나 지금 갈까. 같은 답장을 했다.

어떤 날에는 전화를 걸어 왔다.

그럴 때면 네가 집 앞에 서 있을 것 같은 상상에,

얕고 가파른 호흡을 내뱉곤 했다.


“잠깐 얼굴만 보게.”

“너무 늦었어. 들키면 혼나.”


그때 우리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다.

그저 햄버거 가게에서 함께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내가 한 발짝 물러서면 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화제를 돌렸다.

“어. 노래 바뀌었네.”


어려서 였을까.

논리적이지 않고 예측도 안 되는 너의 부름들이

무례하거나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그 의외성을 즐겼다.


너의 말과 의도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

그 미묘한 균열이 만드는 긴장감.

나는 그 사이에서 허둥댔다.

너는 언제나 반쯤 빈 문장을 말하고

나는 그 빈칸을 채우느라 분주했다.


의미를 만드는 자와, 그것을 해석하는 자 사이의 거리는

단순한 문장으로 메워졌다.

“헤어지자.”

우리 사이에 벌어진 틈은 이별로 채워져 그 후로 오랜 시간 마음에 남았다.

그때 나는 끝이 날 줄 모르고 끝을 말했었다.


너는 우리가 진짜 이별을 하기 훨씬 전에

이미 나에게 이별에 대해 가르쳤었다.

나는 사랑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리워하는 법부터 배워야 했었다.


그해 겨울 내 일상에 깊이 자리했던 네가 사라졌다.




이전 10화첫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