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주말 오후는 대체로 평온했다.
엄마와 목욕탕에 다녀왔고,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의 재방송을 보았다.
내 일상은 고요했다.
나의 매일 8시에 출근하고 7시에 퇴근한다.
주말에는 늦잠을 자고 책을 읽거나 친구를 만난다.
더 이상 부모님께 용돈을 받지 않아도 되고
어두운 원룸에서 출근하지도 않는다.
별다르지 않은 나의 오늘은
별다를지 모를 내일을 기대하게 했다.
너의 생일축하 메시지는
내 일상에 조용히 틈을 만든다.
너의 말과 침묵 사이,
너의 부름과 내 망설임 사이에 생겨난 작은 균열이
내 하루를 관통한다.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지만
사방으로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불빛,
불균질하게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때로 변주되는 경적소리가 의식을 흔들어 깨운다.
소음은 도시의 고유한 여름밤 풍경이다.
그 위로 8년 전 겨울의 풍경이 겹친다.
“너무 착하게 살려고 하지 마.”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뒷문을 열고 나오다가
벽에 기대어 서 있던 너와 마주쳤다.
나는 좀전의 내 모습이 부끄러워 어색하게 웃었다.
본인의 신용카드를 찾지 못해 언성을 높이던
중년의 남자 앞에 네가 나타났다.
네 큰 키 덕분에 그 남자는 어색하게 너를 올려다보며 자기를 항변했다.
“고객님 CCTV를 돌려보면 직원이 잘못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매니저님이 잠깐 자리를 비워서
전화번호를 남기고 가시면 확인하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너의 눈은 매섭고, 반대로 목소리는 상냥하여
그 남자는 이내 번호를 남기고 가게를 떠났다.
나는 그 남자의 카드를 확실히 돌려주었다.
다만 다른 곳을 한 번만 확인해보시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누가 한 대치면 너는 발로 차버려. 그냥 웃지만 말고.
그런 식으로 적당히 헐렁헐렁하게 하면 보통 사람들도 악마로 변해. ”
눈이 내리고 있었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어두운 골목에는 살얼음이 내려앉았다.
나는 내 무능함이 부끄러워 다시 웃었다.
“괜찮아.”
너의 날카로운 눈이 스르르 풀렸다
“에고...너는 정말 나 없으면 안 되겠다.”
눈은 조용히 내렸다.
눈송이는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소리나 주변 레코드 가게의 음악 소리 같은 것들을 모두 삼켰다.
고요했다.
희끗희끗한 골목길 위에 네 웃음소리만 맴돌았다.
눈이 오면 그 장면을 떠올렸다.
사랑을 시작하기도 전에 심장이 멈추는 장면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이별 후에도 남아,
언제나 뒤를 돌아보게 한다.
- 고마워 - 11:46
메시지를 발송한다.
전화기를 머리맡에 올려두고 바닥에 누워 시계바늘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는다.
징징. 진동이 울린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에 부딪혀 숨이 가쁘다.
- 보고싶어 - 11:59
내 심장은 여전히 너로 인해 단숨에 100미터 달리기를 시작한다.
너는 늘 반대편 결승선에서 총을 쏜다.
땅-
이제 달려와.
너는 도착점에서 나를 부르고
나는 네 손짓을 보며 달려 나간다.
내 심장박동이 한계에 치달으면
너는 천천히 두 팔을 펼친다.
꿈에서도 너는 저 앞에
흐릿하게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