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를 마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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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MBY



“오늘 저녁에 나와도 돼?”


“왜? 엄마 밥 차려 드리고 나면 괜찮아”

“응. 그럼 나와. 맥주 마시자.”

“그래. 집 앞으로 와.”


점심시간의 회사 앞은 공무원들로 가득하다.

작은 가게 안에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가득 앉아

생선 백반이며 고등어 김치찜 같은 것들을 주문한다.


더운 여름이니 냉면 같은 걸 먹으면 좋겠지만

과장님은 고등어 김치찜을 원했다.


여름이면 회사 인트라넷은 소란하다.

누구는 어느 부서로 간다더라.

매일 국장님 모시고 저녁 먹으러 다니더니 동기들 중에 가장 먼저 승진을 했다더라.

이번에도 승진에 누락 된 김 팀장은 휴가를 썼다더라.


과장님은 곧 퇴직을 앞두고 국장 승진에 실패했다.

매일 점심과 저녁 두 번 식사를 하며

조직 내 인사의 불합리함이나 세상살이의 부조리함에 대해 목청을 높인다.

나는 어중간한 자리에 앉아

과 운영비가 든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막내 주무관에게 눈치를 준다.

'나가서 커피라도 사 오자.'


직원들은 고등어 김치찜을 앞에 두고

고개를 끄덕이며 길지 않는 점심시간을 보낸다.

때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도 하지만 대체로 성실하게 과장님의 비극에 귀를 기울인다.

막내와 커피를 사러 나오면서 혜정의 전화를 받는다.

‘그래. 아빠가 계시니까.’


엄마의 수술 이후로 저녁 준비는 나의 몫이 되었다.

내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올즈음

엄마는 천천히 움직여 아침과 저녁에 먹은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있다.

어떤 날에는 이미 그릇들이 엎어져 있고,

어떤 날에는 그저 싱크대 안에 가만히 놓여있기도 한다.


엄마가 쓰러지기 전까지

나는 집안일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새벽부터 차린 아침을 먹었고

때론 그마저도 입맛이 없다며 김이 모락 나는 밥그릇을 외면했다.

엄마가 계절마다 구해온 제철 과일들이 들어간 주스를 마시곤

내 화장대 위에 놔두고 출근했다.

살림을 하면서 알았다.

나의 무심한 행동 하나하나가 엄마의 하루를 채우는 노동의 일부였음을.

염치없는 그 모든 누림이, 모두

한 사람의 침묵 위에 가능한 무임승차였다는 것을.


나와 아빠는 엄마의 빈 노동을 메우려 고군분투했다.

우리는 서툴렀고, 어색했다.

그래도 우리는 했다.

죄의식과 책임감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사랑이라는 포장지를 덮어

우리는 어설픈 가사노동을 지속했다.


엄마는 대체로 말이 없다.

나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 뉴스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떠들어대며 엄마의 상태를 살핀다.

우리는 이전에 늘 재잘댔지만, 요즘 부쩍 엄마는 말수가 적다.

항암제가 제 기능을 못하고 다시 암세포가 전이 되었다는 진단을 받은 여름 이후로.

엄마는 아빠와 안방에 있는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눌 때 말고는 긴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내 일상을 듣고, 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만하지. 라거나 너도 이제 결혼을 해야 하는데. 하고 짧게 말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 앞 호프집으로 향한다.

혜정이 늘 앉는 칸막이가 있는 긴 의자에 앉아있다.

“무슨 일이야? 더워서?”

혜정이 맥주를 주문한다. 뼈가 없는 닭튀김도 함께

“엄마는? 어떠셔?”

“응. 그냥. 안 좋아.”

혜정은 잠시 쉬었다가 조금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한다.

“나 합격했어.”

“아. 다행이다.”

“야 너 반응이 뭐야. 넘 약한데.”

너는 평소보다 크게 웃는다.


나는 안도한다.

나의 불행이 나만의 것이기를.

나의 불행은 나의 몫이어야 하기에

네가 지나온 터널이 너의 것이었듯.

내가 마주하는 이 난감한 절망도 나의 것이야 한다.


“혜정아 넘 기쁘다. 수고했어.”

“응. 기분 좋네. 홀가분하고.”

“이제 내 밑에서 일할 날만 남은 건가?”

이번에는 함께 소리내 웃는다


“야. 이제부터 시작이야. 시험 붙으면 다 잘 될 줄 알지만 아니거든?

월말에 월급 들어오는 거 말고는 다 똑같다니까?”


우리 이야기를 들었는지 사장님이 빙긋 웃으며 맥주잔을 내려 놓는다.

혜정은 처음으로 사장님에게 잔을 권한다.

여자 셋이 맥주를 들이켠다.

저기 낡은 에어컨이 드릉,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 소리.

우리는 그때도 지금도 함께 있다.

내 역사의 마디마다 너는 늘 거기에 있다.


우리는 각자의 역사를 쓰면서 그 안으로 서로를 부른다.

지나간 연대를 기억하지 못해도,

각각의 사건들을 지금의 네 안에서 문득문득 발견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부른다.

불행과 다행의 순간마다.


함께 맥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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