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enis Kunwoo Kim Sep 27. 2022

대리에서 대표되었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통장은 텅장인데

대표병에 걸리면 약은 금융치료밖에 없다. 사업놀이 접고 사업을 해야한다.

대리에서 대표되었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통장은 텅장인데... 

대표병에 걸리면 약은 금융치료밖에 없다. 사업놀이 접고 사업을 해야한다.



대표병은 다른 말로 사장 놀이, 사업 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작은 조직 혹은 1인 기업 사업자만 등록해 대표가 되고, 사장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만 몰두하고 관계에만 치중하는 것이다. 사업자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일이다. 만약 사업 놀이를 하고 있다면 빨리 현실을 자각해야 한다. 이는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놓치는 것은 물론 모두가 아는 것을 자신만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어깨에 힘들어갔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대표병에 걸리면 우선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한 계단 올라갔다고 착각하게 된다. 바뀐 것은 매달 걱정해야 할 고정비와 세금도 몰려오는데, 인생은 한방이라는 모토로 사업을 하게 된다. 비즈니스 모델은 많은 관계와 트래픽을 바탕으로 광고 수익만이 전부 거나, 투자만이 살길이라며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많은 유형이 그러하다. 또한 새어 나가는 돈은 잡지 못하면서 직원들이나 거래처만 달달 볶으면서 작은 일을 큰 문제로 키우기도 한다. 


나처럼 직장 생활 때에는 대리였다가 순식간에 작은 조직체의 대표가 되어버리면, 이전까지의 관계와 자신의 레벨은 잊어버린 채 사업 놀이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실제 명확한 회사 정체성과 수익모델은 없으면서 눈앞에 놓인 일만을 하고 주먹구구식으로 돈을 벌면서 한달살이처럼 연명하게 된다.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고, 자신은 언제든 성공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양 미래를 위한 거야 라는  공수표를 날리기도 한다. 직원들에게는 잔뜩 있어 보이는 모습을 보이면서, 정작 소프트웨어는 정식 버전으로 깔 엄두도 못 내고 해적판을 구해다 놓거나, 구형 노트북을 쓰면서, 직원들에게는 매번 회신은 왜 이렇게 늦냐며 재촉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부끄럽지만 지나간 내 모습이었다. 비싼 외제차는 타지 않았으니, 스스로 검소하다고 생각했던 건 그 와중 다행이었을까. 


실제 시스템이 없는 회사지만 시스템을 갖추었다고 스스로 위로하거나, 근본적인 문제를 토로하는 직원을 질책한다. 또한 직원에게 문제나 불만을 말해보라면서 정작 솔직하게 말하면 반박과 변명을 일삼으며 열정과 집중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일은 초창기 사업가에게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때론 몇 년이 지나도 개선되지 못하기도 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실제 그 자리에서 스스로 성찰을 통해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모든 것을 잃거나 실패한 후에 깨닫게 된다. 


나 역시 앞서 열거한 문제점 중에 해당하는 몇몇이 있다. 가장 어깨 뽕이 힘껏 올라갔을 때가 자몽 서점 간판이 올라갔을 때다. 2017년과 2018년이 가장 대표병 말기에 해당하는 시기였다. 처음으로 대행사 모델이 아니라 자체 서비스로 온전히 매출을 올렸고, 몇 가지 운이 좋은 상황으로 큰 프로젝트를 맡다 보니 조금 여윳돈이 생겨 어떻게 굴려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였다. 사실 가장 잘될 때가 가장 조심할 때라는 선배들의 말을 새겨듣지 않고 스스로 잘난 맛에 지내던 때였다. 이렇게 가면 금방 수십 명 수백 명 있는 회사 될 수 있겠다’라고. 그래 봤자 실제 순매출과 이익률은 그다지 좋지 못했지만. 규모가 큰 매출이 발생하니 마냥 성공한 기분이 들던 시기였다. 외주비와 운영비로 다 나갔지만 말이다. 


자몽 서점 간판이 올라가고 한껏 들떠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큰 규모의 공간에 회사 이름을 건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기쁨이었다. 주변에서도 떠들썩하게 축하를 보내왔다. 대단하다, 멋지다는 말이 주를 이뤘다. 내가 이루어낸 성과를 한껏 치켜세워주는 그들이 고마웠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객관적으로 진짜 있어 보이는 상황이었다. 나의 성공담을 보여주기 위해 모임이나 행사에 가급적 빠지지 않고 얼굴을 비추었다. 물론 몇몇은 수익모델이 걱정이라는 말과 함께 어떻게 돈을 벌 꺼니, 어떤 계획이니, 왜 뜬금없이 서점을 하니 등의 물음을 보냈다. 이에 겉멋 든 대답으로 허상의 계획을 설명하면 역시 다 생각이 있구나 하면서 치켜세움과 동시에 부러움을 연발했다. 수많은 사람이 부러워했지만, 이들 중 방문해서 책을 구매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서점 간판을 내리면서 알았다. 정말 값비싼 금융 치료를 받았다. 


대표병에 걸리면 직원들의 직언은 사실 무시하기 일쑤다. 그들은 진심으로 걱정해 어렵게 우회적인 충고를 건네지만, 불도저 같은 성격의 대표라면 그 말을 들었을 때 상대를 설득과 방어하기에 급급하여 일을 끌고 나간다. 실제 동기부여 없는 일은 그들의 인생을 좀먹는 것인지도 모른 체 말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사업 놀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투자와 광고 유치에만 힘을 쓴다면 정말 회사에 어려운 일이 닥칠 수 있다. 그렇기에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지 말고 대표병에서 빠르게 벗어나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큰 충격으로 인해서 스스로 벗어나거나, 평소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충고는 받아들이기 힘들기에, 어느 정도 성숙한 태도를 가진 사람에게나 가능하다. 결국 스스로 깨우치는 방법밖에 없다.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야만 한다. 우선 가장 중요한 건 현재 업무 상태와 현금 보유 상황을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지금 현 상황을 알아야 문제의 시그널을 인지하게 된다. 가령 회사 내에서는 여러 가지 신호가 있는데, 세금계산서를 늦게 발행하게 되었다는 것은 입금 시점이 늦어질 수 있으므로 미리 현금 유동성을 확보해야 하는 일이다. 보통 계산서를 발행하고 나서 바로 돈이 입금되는 경우는 없다. 계산서는 그들이 결제를 올리기 위한 마지막 활동이자 증빙자료이므로, 이후 내부 품의를 거쳐 대략 1~2주 정도 입금 시점이 결정된다. 어음을 발행했다면? 정말 상상하기 싫은 순간이다. 거의 3개월 정도 돈이 묶이기 때문이다. 


또한 동료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생각의 교류가 진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어떤 일이 필요하고 빨리 해결해야 하는지, 그리고 해당 업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 내 생각에 관해 동료들, 직원들과 공유해야 한다. 회사는 공동체로 움직이기에 공동의 비전 공유가 중요하다.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면 많은 동료가 떠나갈 것이다. 그렇기에 수시로 생각의 교류 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업무의 우선순위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어느 정도 이성적 판단이 가능하게 되면 이후 실제 도움 되는 일과 사장의 취미나 만족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의 차이를 분명하게 알게 된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사업적 가지치기를 통해 더 날렵하고 날카로워질 수 있다. 사업모델이 뾰족해지는 것이다. 


이 모든 걸 잘 알고 이룬다 하더라도 한계가 명확하다. 누군가 해줄 것을 기다리지 말고 먼저 움직이고, 냉철하게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 나는 보기 싫어도 회사 통장을 자주 열어본다.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하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한다. 대표도 사람인지라 어떨 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깨 뽕이 심하게 들어간다. 주변 사람들은 새로운 시작에 응원과 용기 그리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데, 때로는 이러한 칭찬이 스스로 과대평가하게 만들어 시야를 좁게 하거나 한방만 노리는 사업가로 망가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과도기를 경험하고 벗어나게 되면 보다 성숙하고 좀 더 다듬어진 사람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아직 나는 성숙해지려면 멀었지만, 그래도 값비싼 금융 치료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김건우. 



*여러분의 응원과 지지 감사합니다. 

제 이야기에 공감하셨다면 하트와 댓글을 남겨주세요. 저에겐 큰 힘이 됩니다^^ 

이전 08화 철학은 없고 취향만 쫓는 있어빌리티 예술병 극복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