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한 나쁜 X 이 돼라
오랜만에 10년 지기 절친한 언니한테서 카톡이 왔다.
지금 남자친구 있어?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있다고 대답하기는 싫었다. 어차피 그 사람이랑 나랑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고 그 사람이 나한테 결혼하자고 하지도 않았는데 굳이 있다고 해야 될까. 그렇지만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언니에게 거짓말을 하기는 싫었다. 잠시 고민하다 언니에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나: 언니~ 오랜만이에요. 왜 물어보는 거예요?
언니: 소개팅 시켜주려고 하지~. 자기랑 동갑이고 본 투비 강남이래. 가업을 이어서 하고 있는데 또 다른 직업은 교수고.. 블라블라..
‘본 투비 강남, 동갑, 가업, 교수’ 귀에 꽂히는 단어들이 많다. 교수라는 직업은 왠지 답답하고 재미없을 것 같은 느낌이지만 교수로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업도 이어받아서 하고 있다면 꽉 막히기만 한 사람은 아닐 것 같았다. 안정적인 직업과 동시에 집안의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면 현실적으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강남 출신에 동갑이라니. 근데 이런 사람이 나를 만난다고? 왜?
나: 그 사람은 어떤 사람 좋아한데요?’
언니: 자기 같은 여자가 이상형 이래애~. 으하하하하하하.
나: 저 같은 여자가 어떤 여자예요?
언니: 예쁘고 예민한 여자. 으핫하하핫하하하하하하.
내 사전에 양다리는 없다. 심지어 썸을 타도 한 번에 한 번만 탔었다. 그러나 올해 내가 굳은 결심을 한 것이 있었다. 바로 ‘ㅅ’ 두 개 + X 같은 여자가 되자는 다짐이었다. 그렇다면 소개팅을 받는 게 맞다. 그렇지만 막상 안 하던 행동을 하려고 하니까 마음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양다리, 환승연애 따위 같은 건 내 적성에 안 맞고 나랑 어울리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인생에서 같은 기회가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하고 거절한다면 다시는 이 사람을 볼 기회는 오지 않는다. 무엇이 현명한 선택일까? 지금 나의 목표는 결혼이다. 내게 먼저 결혼하자고 하는 사람만이 나를 가질 수 있다.
나: 볼게요.
언니: 오케이. 번호 넘길게.
나: 잠깐, 언니 근데 저 이번 주 주말에 워크숍 때문에 바빠서요. 그분한테 다음 주에 연락 달라고 부탁드려도 될까요?
언니: 알겠어. 그렇게 전할게.
모르겠다. 이미 일은 저질러졌다. 당장 이번 주말에 소위 '남자친구'랑 만나서 밥을 먹기로 했는데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 거린다. 나는 소개팅을 하게 될 것이다.
여자가 연애를 이기적으로 해야 하는 이유
웬일인지 주말에 만난 남자친구는 갑자기 내게 이전보다 다정하게 대해줬다. 다음 주에 있을 소개팅을 캔슬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뭐가 맞는 걸까. 데이트를 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찝찝했다. 이제껏 일적으로는 이것저것 도전하며 후회 없이 살아왔는데 연애에 있어서는 아직 나이에 비해 서툴렀다. 이상할 정도로 순조로운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왔다.
아니나 다를까 자기 전에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다 별거 아닌 이야기에 갑자기 싸움이 일어나게 되었다. 본인은 갈등 상황에서 늘 내게 먼저 미안하다고 했는데 나는 본인에게 한 번도 먼저 사과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몇몇 작은 갈등 상황들이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잘못이 아니었기 때문에 먼저 미안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내게 말투를 고치라고 지적했다. 납득할 수 없었다. 마침 그 사람은 핸드폰에 통화내용이 자동으로 녹음되는 설정이 되어있었다. 나는 내 말투에 문제가 있는지 객관적으로 알고 싶어서 녹음된 통화파일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자 더욱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결국 착잡한 심경으로 그날 전화를 마무리하고 화해를 하지 않은 채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아침 장문의 카톡 메시지와 함께 녹취록 파일이 와있었다. 내용인 즉 본인도 내게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보내준 녹음파일을 들어보았다. 그 사람이 화를 무척 크게 내서 정말로 내 말투에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두려웠지만 그래도 문제가 있다면 고치고 싶어서 숨을 죽이고 끝까지 통화내용을 들어보았다.
통화내용을 모두 들었을 때 오히려 내가 새삼 참 괜찮은 여자라고 느껴졌다. 아무리 나의 문제점을 찾아보려 해도 문제는커녕 객관적으로 참 괜찮은 여자였다. 오히려 말투를 고쳐야 할 사람은 그 사람이었다. 녹취록을 듣고 나서 더욱더 그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결국 나는 그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며칠 동안 대화가 없었다. 그러다가 3일 뒤 갑자기 카톡이 와서 내게 만나자고 했다. 그렇게 그와 나는 싸움 후 5일 뒤에 카페에서 만남을 가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