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의 수면시간은 13시간이고 기린의 수면시간은 2시간이다
‘게으른데 완벽주의자다’ 라는 말은 그 자체로 옳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국립생태원의 동물 평균 수면시간 연구에 따르면 육식동물은 길고 초식동물은 짧다고 한다.
양극단의 동물로 예를 들면 밀림의 왕 사자는 하루 평균 13.5시간을 자고 기린은1.9시간을 잔다.
사자는 평상시 눈앞에 먹잇감이 지나가도 졸리고 게을러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배고픈 때가 오면 누구보다도 주도면밀하다. 한번 식사할 때 한 번에 많은 영양을 비축해야 하기에 최대한 많은 고깃덩어리를 보유한 동물을 발견할 때까지 찾아헤맨다. 사자는 상시로 사냥을 하지 않기 때문에 보기에 게을러 보일 수 있는데 그건 진정 원하는 목표물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지간히 적당한 동물을 사냥했다가는 에너지 비효율이 발생하는데 그건 사자의 생존방식이 아니다. 그러다가 표적이 결정되면 그제야 모든 정신집중과 신체 에너지를 끌어모아 사냥을 시작한다. 상당한 직관력, 강도 높은 긴장감, 효율성을 요하는 작업이다.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 사자는 찾고 또 찾는다.
그에 반해 기린은 다리와 목이 길다. 큰 키로 인해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고 어느 정도 반경에 포식자들이 분포해 있는지 다른 동물보다 미리 알아차릴 수 있다. 매사에 심사숙고하고 쪽잠을 자면서도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데 그런 통찰의 깊이만큼 불안도 따라온다. 초식동물은 항상 자신을 경비하고 성실하고 꾸준하게 풀을 뜯어 에너지를 비축해 놓는다. 모든 생명 개체는 자신의 신체조건과 자연환경에 걸맞은 생존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만약 기린이 사자의 방식을 부러워 해 잠을 푹 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먹잇감 신세가 될 것이다. 동물들은 서로의 삶의 방식을 간섭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간섭할 뿐이다.
인간이라는 유기체는 동물과 다르게 복합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결국 동물이기도 한 인간의 기질을 직업군으로 나눠보았다. 육식동물에 가까운 기질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도전과 모험정신이 강한 사업가, 스포츠인 등이 있겠고 초식동물에 가까운 기질에는 성실성과 꾸준함을 요하는 수행자, 나랏일을 주관하는 공무원 등이 있겠다.
두 가지 기질을 잘 배합하여 사용하는 중간 인도 물론 있겠지만 편의 상 생략한다.
부모의 양육방식에도 자녀의 타고난 기질에 대한 이해 유무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부모가 성실성을 추구하는 기질이고 자녀가 효율, 직관을 추구하는 기질일 경우 자녀는 일평생을 게으르다고 비난을 받으며 살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표적이 나타나기까지 고르고 고르는 무수한 세월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존재자체만으로 귀함을 받고 자신의 때를 기다려주는 부모의 메시지를 받고 자란 아이는 진정 원하는 일을 발견했을 때 정진할 수 있다. 타의인 지 자의인 지 알아내는 데 소모가 적고 종목을 바꾸더라도 쌓은 경험과 지식을 복리형 자산으로 만드는 긍정성이 있다. '너가 진짜 진정으로 확실하게 원하는 길이냐고.' 부모 자신도 뭘 원하는 지 모르는 마음을 아이에게 투영하여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구간이 생겨도 극복해야 할 암초일 뿐인 지 아예 항로 방향을 바꿔야 하는지 구분하기에도 용이하다.
부모의 인내와 신뢰가 교육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편 부모와 자녀의 기질이 같은 경우 이보다 좋은 환상의 궁합도 없다. 이끄는 대로 잘 자라주는 자녀 덕에 자신의 교육관을 더욱 정당성화 하는 경향이 있고 맹점이 있다면 궁합이 다른 아이는 형제와 비교를 당하고 비난을 받고 자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기질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기만 한다면 충돌의 과정이 고통스러울 지라도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폭이 다양해질 수 있다.
타고난 기질을 알면 또 좋은 점이 있다. 자기만의 강점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다
사자는 게으른 점을 고치려 하기 보다 자신의 효율과 직관성의 강점을 더욱 강화시킬 때 생존에 유리하다.
기린 또한 잠을 푹 자고 긴장을 풀려는 노력 보다 자신의 성실성과 안전욕구의 강점을 더 강화시킬 때 생존에 유리하다.
부족한 점에 집중하는 하향평준화 교육은 범 사회적 발전과 생존력을 망가트리는 길이다.
독일의 교육자 루돌프 슈타이너가 창시한 인지학을 기초로 한 발도르프 교육에서도 인간의 기질을 중요 시 했다.
인지학은 보이지 않는 인간 본성과 신체의 연관성을 탐구하여 아이 고유의 속도와 기질을 존중하는 것에 기초한다.
특히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적 특성을 자세히 관찰할 것을 강조하고 나아가서는 신체, 영혼, 정신의 존재인 삼원적으로 아동을 이해한다. 이는 초감각적 본질을 탐구하는 정신과학으로 얻은 연구 결과들을 인간의 삶과 공동체의 삶에 실제로 적용하는 것을 뜻한다. 발도르프 교육 안에서 가장 위대한 교사는 아이들임을 강조하고 아이들이 가진 자연 그대로의 힘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완벽주의적인 자신의 성향을 너무 자책하지 말고 잘 하고 싶은 마음을 들여다 보자. 효율을 중시하는 환경경적인 영향이 있을지라도 타고난 기질이 그러하다면 더욱 두드러질 수도 있다. 기질을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한다면 혹시 아는가. 여유 있고 즐거운 완벽이 선물로 올지.
완벽주의자인 당신은 옳고 완벽하지 않은 당신도 옳다.
그림영역)
기린의 레이더망에 걸린 사자
(말풍선)
기린: “거기서 뭐해?”
사자: "13시간 째 잠복 근무 중~” (졸고 있는 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