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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디아이 Mar 10. 2024

김칫국 혈투, 김장 카르텔

음식에 서린 리비도는 이제 그만 날려보내시고 서러움을 푸세요.

아기를 업고 국사봉을 산책하던 중 뒤따라오던 60대 아주머니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시집 장가 간 자녀들의 스토리였는데 산을 오르는 내내 김치로 시작해서 김치로 끝났다.


"아니~ 우리 딸은 내가 해주는 김치 아니면 못 먹어~ 일도 바빠서 애가 기절할 지경인데 시댁 가서 김장을 해야되니 힘들다는 거야~ 시어머니보다도 형님이 더 눈치를 준대."


이야기는 꽤 흥미로웠지만 나는 약수터 옆 샛길로 빠져 등에 업고 있던 둘째 아기를 내려 벤치에 앉혔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아주머니들도 내가 있는 쪽으로 내려오셨다. 아주머니들은 내 옆 벤치에 앉으셨고 둘째 아기는 쉬지 않고 말씀하시는 할머니들의 대화가 신기한 지 빤히 쳐다보았다. 아까 하던 김치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이번엔 아들을 둔 아주머니의 반박이다.


"근데, 와서 해긴 해야지. 근데 나는 그렇다?! 아들을 더 시켜어~."

 

다른 사람들보다 세련된 시어머니로 보이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반강제성을 띤 조직적 카르텔은 무너트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 가정을 이루어 독립한 다 큰 딸에 대하여 자신이 해준 김치가 아니면 못 먹는다고 주장하는 친정 어머니의 음식을 내세운 소유욕망

- 권력의 꼭대기에서 형님과 동서의 관계구도를 모르는 척 하며 수직구도를 즐기는 시어머니

- 김치를 원치 않는 아들부부의 노동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위 구도들은 더 이상 가족의 행복한 식탁을 위한 노고의 장이 아니다.

은밀한 관계주의적 폭력이 난무하는 김칫국 혈투다. 드라마에서도 그냥 싸대기 보다 김치싸대기 파급효과가 훨씬 크다. 바닥에 흩뿌려진 김칫국물은 혈이 낭자한 모습 만큼이나 흉측하고 대단했다. 한 해를 겨우 이겨낸 들 다음 해에 여지 없이 돌아오니 누구 하나 싱크대에 코 박고 죽어야만 끝나는 조직이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는 아기의 발달 과정에 있는 본능 욕구들을 리비도, 즉 성적 욕구의 표상이라고 말하였다. 부모로부터 어린 시절의 욕구들이 충분히 반응받지 못했던 아이는 성인이 되서까지 어떤 형태로든 그 리비도를 표출한다고 보았다. ‘음식’을 둘러싼 욕망의 표출도 리비도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유교문화권 안에서 아버지들은 헛기침만으로 권위를 누려 온 대신 어머니들은 주방에 들어가 밥상으로 권위를 형성했다. 주방에 계시는 친정엄마나 시어머니를 신경쓰는 부류는 오직 세상에 모든 딸들이었다. 식탁에서의 위치나 딸과 아들의 밥을 구분하는 것을 통해서도 너의 위치는 여기니까 눈치껏 행동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주었다. 이 같은 관계구도는 남성의 수렵보다 여성의 채집활동으로 식탁의 70~80프로를 꾸려 온 머나먼 조상 여성의 식탁으로부터 전해 내려져왔다. 이런 구조 속에서 여성들은 위로는 괴로웠으면서도 동시에 아래로는 충분히 즐기고 싶은 은밀한 카르텔이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맥 애럴의 책 <스몰 트라우마>에서 조상 여성들이 사회적 유대 보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조상 여성들은 공동체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직계가족의 생존에 매우 불리했다. 따라서 여성들은 직접적인 대립을 피했다. 배우자나 가족 간의 끊임없는 숨은 의도를 짐작하고 주변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였고 극단적으로는 진정한 자아를 억합했다. 살아남기 위한 위한 수단으로 여성의 뇌와 신경계에 장착되어 있는 ‘보살핌과 어울림’ 패턴이라 했다. 이는 주먹다짐 다음 날 아무일 없었다는 듯 해질 수 있는 남성과는 다른 양상을 띤다고 했다.


나의 양가 부모님 같은 경우는 은근한 강요가 있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김장에 대한 압박을 강하게 주시는 편은 아니다. 특히나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는 더 그렇다. 때로는 힘들면 김치를 사다 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기도 하셨다. 그러나 김장을 돕지 못한 김장철이 지나고 나면 마음에 남는 애매한 죄책감은 김치가 숙성되는 시간 만큼이나 이어진다.마음 쓰임은 남동생이나 남편이 아닌 오직 딸이나 며느리의 몫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평온한 남편의 얼굴은 얄궂기만 하다.

 

현대사회에서는 조상시대와 달리 자본주의 시스템 속 장점들을 살려 낡은 신념과 자존심을 버린 기업들이 경제적 이익을 달성했다. 딱딱한 권력 대신 수직으로는 기업의 핵심 가치를 지키고 수평으로는 창의성 자율적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했다. 권력의 구도 상위에 있는 직장 선배들은 후배 직원들에게 직급 대신 영어이름으로 불리우는 고통을 수반하는 등의 변화를 일으켜 다음 세대와 함께 수직과 수평 그 어디쯤에서 생존전략을 취했다.

 

음식 문화에도 마찬가지다. 수직으로는 권력 대신 김치의 고유가치가 있다면 수평으로는 더불어 사는 관계성이 있을 수 있다.김치에 들어가는 여러 재료들이 서로 잘 어우러지고 숙성의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것처럼  김장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그러해야 한다. 권력의 구도 속에 놓여진 세상의 딸들에 요구되는 의무나 강제성은 사라져야 한다. 정다움이 깃든 김장 분위기는 김치를 원하고 필요한 사람들의 즐거운 참여로 이어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김치가 소화도 잘 되고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우측 페이지 짧은 글)

 

*세상에 어머니들과 그의 모든 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어린시절 음식 앞에서 받았던 대우는 당신이 그럴 만 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음식에 서린 리비도는 이제 그만 날려보내시고 억울함, 서러움, 노여움을 푸세요.

당신 안에 꽁꽁 감춰져 있던 아름다운 여인을 꺼내주시고 정다운 사람들과 평안하게

살아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참고: 이 글은 2023.12.14 에 최초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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