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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디아이 Jun 05. 2024

그 사람이 왜 자꾸 거슬릴까요

운전할 때 끼어들기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남이 끼어드는 꼴을 못 본다든지

두 선배가 비슷한 타이밍에 각자 내게 와서 재미난 이야기를 했다.


A는 B를 두고, B는 A를 두고 하는 지적이었다.


A : B는 인사를 할 줄 모르더라

B : A는 사람을 보고도 아는 척도 않고 지나가더라'


둘을 보고 들었던 생각은 '엇, 당신도 인사를 잘하는 사람은 아닌데 그게 마음에 거슬리는구나.'였다. 이후 웬만하면  타인을 흉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실수하고 있으면서도 남에게 비슷한 지적을 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을 넘는 언행이나 무례한 사람에게는 분명하게 선을 그어 주어야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비난하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해도 마음속에서 거슬리는 불편한 마음의 원인을 알고 싶어졌다.


심리학자 칼 융의 이론에 따르면 타인에게 드는 거부감은 내 무의식에 들어있는 '그림자 자아'라고 했다.

그간의 경험들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일리가 있었다. 지각을 많이 한 선생님이 지각하는 학생들을 심하게 잡는다는 말, 빨간 차를 사고 싶을 무렵 도로에 유독 빨간 차가 많이 보이더라는 말, 시집살이가 고되었던 시어머니일수록 며느리를 시집살이시킨다든지, '사람이 기본이 없어'라는 말을 자주 쓰는 사람이야말로 무례하고 기본이 없었고 '솔직히 말해서'를 자주 쓰는 사람은 속으로 숨기고 싶은 게 많은 사람, 운전할 때 끼어들기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남이 끼어드는 꼴을 못 본다든지 등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탔을 때의 일이다. 칼치기로 끼어든 앞 차에 대해 단단히 화가 난 아버지는 누구보다 끼어들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결국 앞에 있던 차를 추월하여 욕과 열을 올렸다. 그 분위기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건 나머지 가족의 몫이었고 나는 이렇게 말씀드린 적이 있다.


"아빠가 세상에 모든 사람을 교화시키고 돌아가셨대도 뉴스에선 끼어드는 차에 대한 보도는 계속될 거예요."


정신과 의사 정우열은 <힘들어도 사람한테 너무 기대지 마세요>라는 책에 그림자 자아에 대해 친절히 설명했다.

별 이유 없이 싫거나 비난하고 싶은 타인의 거슬리는 면은 내 마음 무의식 깊은 곳에 억눌려 있던 자아를 건드리게 된 심리기제인데 남을 막 비난하고 나면 '이득'이라는 게 생긴다고 했다. 그것은 남을 비난하고 나면 나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된 것 같아 마음도 편안해지는 느낌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일시적일 방편일 뿐 나의 진짜 그림자를 알아차리기와는 멀어진다고 했다. 혹은 반대로 어떤 사람을 치켜세워주거나 강하게 이끌리는 사람의 특징도 나의 그림자일 수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소심한 성격에 대한 콤플렉스, 공부나 학력에 대한 대한 복잡한 심정이 발현되는 심리라고 설명했다.


남녀 관계에 대한 심리학 연구 기사가 떠올랐는데 '자신과 반대되는 사람에게 일시적, 화학적으로 이끌릴 수 있다'라고 했는데 이 부분을 '그림자 자아' 이론과 접목시키면 그림자 자아에 있던 나의 콤플렉스의 일부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볼 때 남녀관계에서 반대되어 이끌리는 면보다는 신념과 가치관의 유사점이 있을수록 만족스럽고 지속적인 연애관계를 형성한다는 연구결과를 보여줬다.


책에 나온 그림자 자아 사례에는 '자기를 높이려고 남을 비난하는 사람, 무시하는 사람, 이기적인 사람, 자랑하는 사람 등'이 그것이다. 만약 가진 것을 자랑하는 사람이 싫게 느껴진다면 사실은 나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자랑을 했다가 부모님이나 사회에서 된통 무안을 당했다든지 혹은 '나는 가진 게 별로 없어'라며 스스로가 가진 상대적인 개념으로 괴로워했던 감정이 내면에 숨어있던 결과다.


저자 정우열 정신과 의사는 이를 프로젝터 투사기가 빛을 투사하여 영상을 상영시키는 작동 원리에 비유했는데 나도 고등학교 과학시간에 빛에 의한 색채의 원리가 인간관계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고 깨닫고 혼자 재밌어했던 기억이 있다. 노란색을 띠는 물질 내에는 빨주노초파남보 중 노란색만 없고 반사하는 색깔을 우리의 눈이 노란색으로 인식한다는 원리다.


심리상담센터에서 선생님께 이러한 마음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나  :  제 의견이 고려되지도 않았고 무시된 것 같았어요.

선생님 : 어떻게 무시하는 것 같아요? 혹시 잔디아이님도 남을 대할 때 낮게 보고 무시하는 마음이 있나?


라고 물어보신 후 이내 곧 이런 연기를 펼치셨다.


 "흥! 저까짓게 내 말을 흘려듣고 나를 무시해?!

내가 말하는 거면 바로 딱 들어줘야지, 중요하지 않게 여긴단 말이지?" 막 이런 마음이 드나요?


선생님의 상황극은 언제나 재밌고도 허를 찔렀다.

나의 말은 당연히 중요하게 여김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진 않은지, 아버지의 말을 한 번에 따르지 않았을 때 자신을 무시했다고 비난하고 나의 말은 옳다는 우월의식 구도가 내 속에 고스란히 들어온 건 아닌지 말이다.


그림자 자아에 대해 자세히 알고 나니 일상에서 거슬리는 마음을 돌아보는 다음 단계를 만들었다.


손톱깎기를 제자리에 두지 않는 남편을 지적할 때

- > 나도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으면서 남편이 그럴 때 지적하는 건 아닐까.


빡빡하게 구는 모습이 거슬릴 때

- > 내가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다 보니 타인의 빡빡한 면을 보기 힘든 건 아닐까.

     자신의 감정을 수용받지 못하고 나처럼 혹독 했겠구나. 타인도 나도 토닥토닥.


이제 내게 필요한 건 지나친 자기 검열이 아니다.

사람은 미성숙한 존재고 누구나 자기 안에 그림자 자아를 가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드는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주고 흘러 들어왔다가 나가는 대로 두자.

이러한 생각 흐름들이 습관이 되고 나니 완고함은 줄어들고 세상살이가 조금 더 편해졌다.

"저 사람, 왜 저런대~ 아이고 정말!"  화가 날 때는 한번 외쳐주고 그걸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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