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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디아이 Jun 02. 2024

구제척인 마음치유 과정

아버지의 입막음으로 나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동화책 속 신하가 되었다


심리상담은 1여 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마음의 뿌리를 대면하고 나면 평생 마주 할 필연적인 고난을 좀 더 수월하게 극복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처음에는 주 1회로 진행되었는데 1주일이 매우 짧게 느껴졌다. 질문거리가 많이 남았는데 1시간이 금세 지나가버렸고 다음 주를 기약해야 했다. 그러다가 몇 달 후 2주에 한번 가도 되겠다 싶은 순간이 왔다. 몇 달이 또 지난 후엔 한 달에 한번 가도 되겠다는 순간이 왔다. 상담을 마치고 나와 맞이한 하늘은 예뻤고 내 마음도 편안했다. 상담이 거듭될수록 편안한 날들이 조금씩 길어졌다. 불편한 상황이 닥칠 때마다 마음 훈련을 응용하여 나와 세상을 향해 가졌던 '내 마음에 안 드는 감정'들이 줄어들었다. 김명애 박사님과의 심리상담 경험은 내 인생에 가장 잘한 일들 중 하나였다고 본다.


미술심리 자격증반 수업에도 등록했다. 미술 매체를 통해 마음을 풀어내는 또 다른 형식은 다각도의 통찰을 주었다. 임상실습 내담자를 남편으로 설정한 것은 결과적으로 잘한 결정이었다. 서로 바쁘고 피로한 상황에서 육퇴 후 실습을 당해야(?)하는 남편은 심드렁해했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미술작업에 빠져들어 잡념을 잊는 듯한 그를 발견하였다. 나무그림 검사에서 남편은 굵은 나무 기둥 안에 큰 구멍을 그렸고 그 안에 다람쥐를 그렸다. 나무 '결'과 '옹이'는 살아오면서 겪었던 상처나 트라우마를 나타낸다고 보는데 보통의 것보다 다소 큰 구멍을 그려 조금 놀랐다. 남편이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초긍정성'에서 '초'에 해당되는 마음이 이 구멍을 의미해 보였다. 이럴 때는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이유를 물어봐야 하므로 설명을 부탁했다. 남편은 구멍의 의미는 잘은 모르겠지만 그 안에 있는 다람쥐는 자녀라고 했다. 남편은 어딘가 모르게 비어있던 마음속 큰 구멍을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메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취약점을 갖고 있다. 남편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연민의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바쁘고 피곤한 나날로 말이 부쩍 짧아진 남편이 못마땅해 나도 말이 이쁘지 않게 나가기도 했는데, 실습을 통해 남편에게 연민의 마음이 들었고 서로 토닥토닥 격려와 사랑의 말을 나누는 날이 되었다. 나태주 시인도 자세히, 오래 보아야 예쁘다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사랑할 수 없다면 공감까지, 공감할 수 없다면 연민까지만이라도 좋다.


결혼 전 그렸던 나의 캐릭터도 떠올려 해석해 보았다. 자기가 만든 캐릭터는 자신을 투영한다고 하지 않은가. 사람이 아닌 나무인형 캐릭터는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등 뒤에 피아노 줄들이 있었다. 얼굴과 몸에는 나무 '결'이 너무 많았고 '옹이'를 연상할 수 있는 ‘못’이 관절마다 많이 박혀 있는 참 상처 많은 캐릭터였다. 평소 펜으로 슥슥 귀여운 캐릭터를 그리기도 했지만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디자이너로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나를 나타낸 캐릭터였다. 다행히 결혼 이후 그 캐릭터는 점점 나무‘결’과 ‘못’이 많이 빠진 사람의 형태로 진화하였다.


더하여 다양한 기질을 분석하는 기질그림카드 ( 몸맘 TMI 연구소) 공부도 접했다. 연륜과 지혜를 지닌 선생님들은 나의 기질을 분석하여 먼저 나를 알도록 그리고 타인의 기질을 해석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다. 심리학 애니어그램에 있는 그림카드와는 또 다르다. 고금에 걸쳐 사람에 관한 학문들을 종합하여 시각적으로 데이터화 한 그림카드인데 한 개인이 4~7개의 의식 카드, 무의식 키드를 갖게 된다. 그 중 나의 의식 카드 3가지를 소개하자면 첫 번째는 ‘성스러운 아버지’카드다. 나의 명확한  도덕적 기준 내에서 이웃에게 따스한 손길을 베푸는 기질이라고 했다. 웃어른의 말을 잘 따르고 영향을 잘 받는 만큼 자칫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카드에 있는 테레사 수녀처럼 무조건인 사랑보다는 옳다고 여기는 사람에 대해서만 사랑을 베푸는 경향이 있다고 해석되었다. 두 번째는 창의력 카드로 나의 삶을 송두리 째 판도를 뒤바꿀 혁명적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했다. 세 번째로는 담대한 카리스마를 소유한 사자카드였는데 이는 내게 관심 있는 목표가 나타날 때 비로소 일어나 정진하는 기질을 가졌으며 나이를 먹을수록 사업을 하는 게 어울린다고 했다. 현재 개인사업자로 나의 일들을 꾸리고 있었고 금전적인 면에서도 필요시 다소 공격적인 투자를 라는 경향이 있었는데 나의 경우 첫 번째 카드가 있는 만큼 내 기준에 따른 적당한 비용 내에서 투자를 하며 업다운이 되더라도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동요치 않아 장기적으로 지켜볼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도 인생 전체를 놓고 큰 그림으로 보고자 애쓰는 마음과도 닮았다. 사자카드의 경우는 심리상담센터에서 상담할  때 선생님이 내게 해주신 말씀과도 겹쳐서 재밌었는데 아버지의 폭력 앞에서의 내 모습은 토끼기질보다는 사자기질이 더 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그림카드는 자기 기질을 수용하고 긍정적인 자아상을 갖도록 이끌어 준다.


이 3가지의 카드는 양날의 검처럼 마이너스 그림카드도 함께 나와 있다. 첫 번째 카드를 마이너스로 잘못 쓰면 꼰대가 될 수 있고, 두 번째 카드로는 모든 것을 부수고 포기할 수 있으며, 세 번째 카드로는 목표만을 위하여 치우치게 달리다가 자신의 오른팔을 자르는 정도의 고난을 겪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오른팔 그림을 보고 나와 나의 가족을 떠올렸다. 혹시 내가 마이너스로 기질을 사용하고 있지 않나 돌아볼 수 있는 여지가 되었다. 모든 기질은 좋게 쓰느냐 나쁘게 쓰느냐 자신의 선택에 달린 것, 옳고 틀린 게 있어서 바꿔야 할 기질이란 건 없었다. 집단 속에 나와 다른 기질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어우러질 때 사회가 발전하고 성장한다. 주의할 점은 그림카드는 마음 상담을 위한 참고 도구로 사용되며 사람의 기질을 그림에 국한시키는 정답 관점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마음치유에 상당히 좋은 인지치료 행위라고 했다. 이따금씩 써 온 일기지만 정말 밑바닥에 있는 감정까지 나오지 않는 답답함에 이유를 곰곰이 떠올리니 하나의 사건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일기 검사를 호되게 했던 아버지. 내가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검사하지 않았는데 일기에 아버지 욕을 험하게 썼다가 들켜 1주일 내내 괴롭힘 당한 경험이 있었다. 결국 아버지 눈앞에서 일기장을 카터칼로 파쇄기 수준으로 잘게 쫙쫙 그어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는 쇼를 하고 나서야 아버지는 안심했다. 아버지는 중학생 소녀 앞에 무엇이 그토록 두려웠던 걸까. 내 나이 5,6세에 아버지가 만취한 상태로 할아버지에게 하극상의 극치를 선사했던 날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일기 사건 후로는 그것이 스몰트라우마가 되어 남 보기에 적당한 타협이 깃든 내용까지만 쏟아내었지 밑바닥의 감정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못하는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아 지금과 같은 마음의 병을 얻게 되었다.

'어디 나가서 내가 이랬다고 말하기만 해 봐.'와 같은 아버지의 말들로 나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동화책 속 신하가 되었다. 불행하게 느낄지라도 행복해 보여야 하는 한국의 대내외적 전통 가족상은 개인에게 올가미가 되었다.


하루는 두꺼운 갱지 노트를 따로 사서 앞표지에 두꺼운 매직으로 '폐품"이라고 보기 흉하게 쫙쫙 써 버렸다. 이 노트는 버려질 폐품이라고 마음먹고 나서야 나쁜 감정을 마구마구 써 내려갔다. 마음을 종이에 쏟아내니 한결 홀가분해지니 좀 더 정리된 글을 쓰고 싶어 블로그에 짤막하게 올렸다. 조회수를 늘리기 위한 어떠한 마케팅적 의도도 시도하지 않았다. 심심한 하얀색 블로그 화면에 사진 첨부도 없는 글들 뿐이었다. 개인 일기보다는 정돈시켜 글을 올릴 수 있어 좋았고 조회수가 별로 안 나오면 내 마음이 소수에게만 공개되어 안심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서점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뿜는 책을 발견했는데 <작은 별이지만 빛나고 있어>라는 에세이였다. 그동안은 에세이라는 장르를 잘 몰랐는데 읽어 보니 저자가 한줄한줄 어떤 마음으로 썼을지 공감되었고 눈물이 나왔다. 읽는 동안 무기력한 마음이 요양원에 들어 가 쉼을 갖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로 다음 단계가 생겼다. 나와 남편만 보더라도 내가 쓴 글들을 엮어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면 나와 같은 세상에 딸들이 나의 글을 읽고 마음 속에 아픔을 꺼내어 날려버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고 그로 인해 나도 더욱 치유받는 경험이 기대되었다. 비장하지 않고 가볍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게 해 준 최영원 작가의 <하루 1시간, 8주에 끝내는 책쓰기>라는 책을 발견하여 읽고 작가가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에 등록했다. 막상 독자를 염두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머리털을 잡아 뜯었을지언정 마음은 다각도로 집중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글쓰기 수업은 온라인 줌으로 이루어졌다. 선생님은 Z세대로 젊었지만 상당히 마음의 깊이가 있으셨다. 함께 한 같은 기수 작가들과 각자가 써 온 글을 돌아가며 낭독하고 긍정의 언어로 보완하면 좋은 점을 한 마디씩 나누는 선순환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글의 방향성과 콘셉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브런치에 작가 신청해 합격 메일을 받고 글을 업로드하였다.


잘 달려왔지만 난관에 봉착했다.

1차 부모와 거리 두기로 늪에 빠져 만신창이가 되었다가 빠져나온 마음니 2차로 심리상담으로 타인에게 털어놓는 방식으로 또한번 늪에 빠졌다가 나오면서 마음에 굳은 살이 많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3차로 브런치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내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특별히 힘든 내용이 들어간 글을 업로드 한 뒤에는 마음의 늪에 빠져 수일간 숟가락을 들 힘조차 없이 무기력했다. 그럼에도 모든 글을 마치고 나면 쇠붙이 연단처럼 마음이 얼마나 단단해지고 성장될지 알고 있기에 희망이 있다.


최영원 작가 강의 에서 PPT 화면을 꽉 매웠던 문장이 떠오른다.


 "살면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인연들은 반면교사 삼아 나를 성장시키는 경험이라 여기기로 한다.

그러나 내가 선택하는 인연들에 대해서 내가 책임지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첫째 아이는 용인 고기동에 '행복한 자유인'을 꿈꾸는 대안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지역에 있는게 낫겠다 싶어 둘째 아이도 초등학교 옆에 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으로 옮겼다. 나와 아이가 함께 선택한 (학교체험 후 사실 상 아이가 선택한) 재미난 학교생활 이야기, 배운 노래를 목청껏 불러대는 노래를 들으며 자차로 40분에 걸쳐 기쁜 마음으로 등하교를 시켜 주었다. 때때로 마음의 늪에 빠져 힘에 부칠 때면 오늘만 살건가 싶기도 하여 아예 화이트보드에 이렇게 썼다.


"오늘이 마지막인 듯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자."


이런 문장은 감동적이긴 하지만 그동안 '마지막 날'이라는 단어가 크게 와닿지 않았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차치하고, 있는 그대로 오늘의 아이를 사랑하자' 라는 마음이 굳게 들었다. 마음회복에 '완료'는 없다. 그저 오늘을 즐거이 살고 사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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