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디아이 Jun 09. 2024

폭군 앞에 선 사자

창조력이 억압되면 파괴적인 형태로 변질된다고 했다.

사극 드라마에 막장 인물로 종종 등장하는 왕이 있다.

그건 바로 가혹한 고문과 공포정치를 일삼았던 조선 제10대 왕 연산군.

어머니 폐비 윤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왕권을 휘둘러 조정에 피바람을 불러일으킨 폐왕이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한 막장 스토리의 높은 시청률은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드러내고 대리만족을 시켜주는데 있다.


중종반정으로 인한 막판 몰락이 전개될 때에는  "그럼 그렇지, 나쁜 짓을 하고 벌을 받는구나. 나는 저와 달라" 라며 자신을 안위한다. 그런 연산군 역할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집에도 연산군이 있다"


그분은 나의 아버지인데 고작 가족 4명 위를 군림하는 왕이다.

엄마는 중전, 우리 남매는 노예 계급이었다. 아버지는 온갖 유교경전을 빗대어 권력 남용을 합리화 했다.

아버지는 하늘이고 너희는 땅이니 어떤 말에도 토를 달지 말고 자신만을 높이 받들라고 하였다. 말투나 표정이 조금이라도 예의에 어긋나면 위협과 폭력이 이루어져 집안에 온 물건은 흉기로 보이기도 했다.

무릇 성군이라 함은 백성들에게 온정을 베푸는 것인데 아버지의 언행은 도리어 천민의 수준을 넘지 못하였고 안위를 누리기는 왕, 그것도 연산군과 같았다.


그러나 연산군에게 악행적 면모만 있는건 아니었다.

예술가적 기질로 시를 지어 시집을 낼 만큼 감수성이 예민하고 풍부했다. 신체능력은 뛰어나 민첩했고 노래를 좋아하며 처용무에 능했다. 그런 창조력을 지닌 연산군은 온정한 정치를 하기도 했고 중전을 향한 사랑꾼의 면모를 보였으며, 특별히 장녀 휘신 공주를 각별히 여겼다고 했다. 장남 '기고'는 연산군과 정반대의 성격이라고 했는데 그 기상이 꼭 할아버지 성종을 닮았다고 칭찬했던 신하에게 단번에 칼을 휘둘렀다고 하니 칭찬을 빙자한 은근한 비교는 예나 지금이나 같구나 싶었다.


나의 아버지도 연산군의 기질과 매우 닮았다.

예술가적 기질로 감수성이 예민하고 풍부하여 글, 그림에 능했고 엄마를 향한 마음을 시로 지어 시집을 엄마에게 선물하였다. 신체적인 능력도 뛰어나 민첩하고 목청이 좋아 노래를 잘했다. 그러나 나의 친 조부모는 이러한 재능을 귀하게 여기고 키워 줄 역량이 못 되었다. 그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가장 밑바닥 요소인 공격성을 자원으로 전쟁통에서 살아남은 시골 사람들이었다. 나의 외할머니가 전쟁통에 형제를 잃었다면 나의 친할아버지는 전쟁통에서 친족이 죽임을 당한 일을 겪었다고 들은 바 있다. 죽음에 대한 충격과 두려움은 아버지에게 고스란히 대물림 되었다. 


연산군은  존재 자체로서 '자아'가 아닌 성군이 되어야 한다는 엄격해진 '초자아', 억압된 창조력, 애정결핍, 어머니가 죽임을 당한지도 모르고 자란 깊은 분노와 원한이 모아져 콜라보레이션을 이루었을 것이다. 심리학에서도 창조력이 억압되면 파괴적인 형태로 변질된다고 했다. 이 모든 것들은 파괴적인 광기와 가학적 사디즘으로 분출되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경찰에 잡혀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정신이 획 돌아서 아버지의 초록색 소주 병에 몰래 화학 물질을 넣고 내가 잡혀갈까 생각도 했다.

만취한 상태로 가족을 괴롭히는 임무를 다 하고 곯아떨어진 아버지의 방으로 갔다.

깜깜한 방 안 달빛에 비춰진 아버지의 자는 모습 옆에 서서 오랫동안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지금 당장  하늘나라에 보내드리는게 서로가 편하지 않을까. 별의별 나쁜 상상을 다 하다가 이내 곧 내 방으로 돌아갔다. 뉴스에 나오는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우발적 범죄를 저지른 세 모녀 사건에 대해 마음속으로 모녀에게 마음이 갔다.가족이 서로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른 일생에 누가 이 사람 뇌에 기본 감정값을 파괴와 불안으로 설정해 놓은 걸까.


23 때쯤이었나. 아버지는 자기 성질에 못 이겨 내게 손찌검을 시도했는데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버지의 소유물이 아니고 하나님 거예요. 함부로 손댈 수 없어요."


아버지는 손을 거두었다. 그 말을 왜 23살이 돼서야 했을까. 어린 자녀는 부모가 대하는 대로 대우 받는 존재다. 욕과 비난을 듣고 그대로 내가 된다. 측은지심이 부족하여 약자인 자녀에게 안하무인이었던 아버지는 그냥 전두엽이 망가진 장애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단호한 선언 이후로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진 않았지만 공포스러운 위협은 지속되었다.


하루는 집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실랑이 끝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어서 귀신이 되어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괴롭히겠다'라고 말하고 내 방 베란다 창문을 열어 다리를 걸고 올라가 몸을 밖으로 내밀었다. 아버지는 위협을 중단했고 나를 끌어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인생에 스스로 죽음을 계획한 적이 없다. 나는 담력이 있기에 베란다에 올라갈 수 있었고 철 울타리를 잘 잡을 수 있었다. 혹여 실수로 미끄러져 죽는다 해도 이생의 지옥보다는 천국이 낫겠지 싶었다. 기운이 다 빠진 나는 바닥에 스러졌고 내려다보는 아버지의 눈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만약 총이 있었더라면 당신을 쐈을 거야."


한편, 연산군의 부인은 성덕으로 유명했다. 연산군은 그런 부인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았다. 연산군이 부와 권력을 쥔 왕이라서 그랬을까?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 씨는 남편이 왕인데도 노예 대하듯 하대하고 비난을 퍼붓는 것이 날로 심해졌다는 기록이 있다. 기생 출신 악녀 장녹수도 폭군 연산군의 애정결핍을 이용하여 젖먹이 다루듯 다루며 수많은 부를 얻어냈다는 기록이 있다. 남편이 왕이어도 부인이나 후궁의 성품은 각기 달랐다.


연산군의 역사적 사실을 보면서 아버지외 엄마의 관계에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밖에서 있던 억울한 일을 집에 와서 토로할 때 엄마는 아버지의 편을 거의 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타인의 언행을 자기식 대로 왜곡하고 자신을 무시했다며 기분 나빠했다. 그러면서 집안 분위기는 살얼음판이 되었고 우리 남매는 두려움에 떨었다. 엄마의 반론은 이성적으로 충분히 맞는 말이었지만 인정욕구가 많은 아버지의 마음을 공감하기 보다 판단하고 충고했다. 그러면 아버지의 감정은 더욱 널을 뛰었는데 화가 극에 달해 피바람을 몰고 와서야 엄마는 아버지의 말에 동의해 주었지만 진심이 아님을 내가 느꼈다. 그다음 날 아버지가 힘이 빠졌을 때 엄마의 비동의 분위기는 지속되었다. 나라도 바깥일이 안 풀리는 걸 집으로 갖고 와 집안 분위기를 망치는 남편의 말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마음은 십분 이해되지만 총체적으로 이 부부의 관계는 연세 70세를 바라보는 날까지 이런 식이었다. 미완성 전두엽을 가진 5세가 된 둘째 아이조차도 엄마가 자신의 편이기만 하면 속상한 감정이 다 풀린다. 편을 들어 조목조목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잘못 크지 않는다. 사회성과 세상이치는 누가 설명한다고 아는게 아니라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 배운다.


"어머나 정말? 로아가 때렸어? 아팠겠다~ 로아가 3살이라서 아무리 몰라도 그렇지 말이야!"

"괜찮아 엄마 (너무 그러지 마),내가 로아 돌봐줄거야."


호르몬이 심신을 뒤집어 놓기 전 친구들은 내게 이런 말들을 하곤 했다.

"너를 만나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고 즐겁다."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나의 기질도 있겠지만 자신보다 부모님을 헤아리려 애쓰는 능력의 발달일 것이다. 나름대로 균형을 찾은 나의 대화가 좋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서로 힘과 에너지를 주고 받기를 좋아한다. 그 때의 에너지로 되돌아 갈 수 있을까. 


그래도 버티고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은 하나다. 그건 내 뒤에 초강력 스폰서 하나님백이 있기에 가능했다는것 말고는 이 상황이 설명이 안되었다. 고통을 극복하고 나와 내 후손들을 사랑하면 하늘의 방식으로 보상이 있음을 믿었다. 너무 힘들 땐 부정하기도 했다. 태어나 눈 떠 보니 이런 아버지 아래에서 살라고 한다. 이런 미친 세상이 다 있냐고 했다. 그럼에도 귀신이 사람을 조종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일을 내 눈으로 확인했으니 반대로 하나님도 존재할 거라 믿었다. 부모님을 바꿔주는 것 외에 기도빨은 잘 먹히는 편이어서 하나님을 냅다 버리진 않았던 것 같다.


심리 상담 선생님은 내게 기상이 높고 에너지가 높은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아바지의 위협에도 굽히지 않는 사자의 기질을 가진 거라고.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고 사람을 좋아하기에 연산군의 행적을 보며 부모를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다짐하기를 눈물을 보이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진 채 어린 아이에게 전부였던 엄마를 지켜주지 못함을 자책하고 무력감을 느끼기를 반복했었다. 아이는 마땅히 보호받아야 함을 누리지 못하고 도리어 보호하고 해결책이 되지 못한 것을 죄책감 갖고 애쓰느라 스스로는 못 키웠다. 부모님은 둘 사이에 언제나 나를 끌어들였다. 민감성이 높은 만큼 그 자극들을 온전히 받아내어 마음 썼고 아팠다.


이제는 드라마 같은 이들 부부의 세계에서 빠져나오려 한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가장 이기적인 것이 가장 이타적이다'라고 말했듯 나를 돌봐주고 채우는 것부터 시작이다. 존중을 모르는 그들의 장녀는 이제 없다.


 

이전 03화 그 사람이 왜 자꾸 거슬릴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