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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개구리 Jan 22. 2016

그녀의 '덫' #4

그 날의 진실

그래서, 다음 날 용기를 내어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집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조심스럽게 초인종을 눌렀는데, 문이 열리고 그가 나왔다.

샤워를 하고 있었는지 머리는 젖어있었고, 맨 발에 목욕가운을 걸친 상태였다.


"저...."


그가 나를 보자마자, 말없이 문을 '쾅' 닫는다.

한동안 우두커니 서있다가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문이 열렸고, 그  틈을 타서, 재빨리 문 사이로   어갔다.


" 잠깐,   ... 잠시만... 열어주세요." 

    

에 얼굴이 끼어 낑낑거리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는데, 차가운 표정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제가 오해를 해서 그만 실례가 많았습니다. 죄송해요... 기분 좀 푸세요."

"당신과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기분 나쁘셨을 거예요. 모르는 사람한테 심한 말을 듣고, 얼굴까지 다쳤으니

얼마나 화가 나고, 황당했겠어요. 저라도 그랬을 거예요."


그가 팔짱을 끼며 빤히 쳐다본다.


"그게 다예요?"

"네?"

"내가 당신한테 막 말 듣고 다쳐서 미안한 게 전부냐고요?"

"그럼.... 제가 실수한 게 또 뭐가...?"

"정말 황당하네요."

"....."

"그만 세요.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왜 그러는지... 말을 해주셔야 알죠."


그가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내가 왜? 누구 좋으라고?"

"아니, 궁금하기도 하고... 아... 잠깐만요."


다시 문을 두고 실랑이가 벌어졌다.

안간힘을 써  버텼지만 그가 검지 손가락으로 꿀밤 때리듯 내 이마를 밀어내자, 얼마 못 가  졌다.

 

"아, 아파... 진짜... 너무해."





그 날 이후, 혹시라도 다시 마주치지 않을까 기다렸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아침마다, 집을 나서면서 습관처럼 카페에 들렸고, 저녁에 집으로 들어올 때에도, 계단을 오르기 전에 꼭  한 번씩 건물을 살폈는데, 4층 빌라는 항상 어둡게 불이 꺼져 있었다.


오늘도 센터에서 시험 준비를 하며 몸을 풀고 있는데, '똑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하나'가 들어왔다.

활짝 웃으며 양 손에는 따뜻한 커피를 들고,


"예랑아!"


'김하나'는 예고 동창으로, 지금 이 스포츠센터에서 요가 강사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포기한 나에게, '요가'라는 다른 길을 제시해주었고, 항상 격려를 해주는 고마운 친구이다.


우리는 나란히 마룻바닥에 앉아 그녀가 건네준 커피를 마셨다.


"어떻게, 준비는 잘 돼가? 이제 슬슬 틀이 잡힌 것 같은데?"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걱정이야. 조금만 더 빨리 시작할 걸. 아쉽기도 하고."

"다 마찬가지지 뭐. 특히 너처럼 무용 전공자들은 처음에 우습게 보고 덤볐다가,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고,  차라리 처음 시작하는 애들이 나중엔 자세가  더 잘 나오기도 하고 그렇더라. 아무래도 개인차가 있으니까."


그녀의 말에 귀기울이며 뜨거운 커피를 입으로 '후후'불었다.


"그래도 배웠던 게 있어서, 아주 어렵진 않을 거야. 몸은  거짓말하지 않잖아. 우리 빨리 잘돼서  같이  자."

"그래."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아... 근데 며칠 전에 어떻게 됐어?"

"응? 뭐가?"

"너 술 취해서 새벽에 나한테 전화했잖아. 혀 꼬부라져서 헛소리하고 장난 아니었어."

"내가?"

"뭐야, 설마 기억 못하는 거야?"

"전혀."

"너 진짜 술 먹지 말아야겠다. "

"왜? 내가 뭐라고 했는데?"

"네가 전화해서 처음에는 노래를 부르는 거야. 그래서, 많이 취했나 보다 했지. 그런데 나중에 그러더라? 뽀뽀했다고."

"뭐? 내가? 누구랑?"

"똥꼬...?"

"뭐? 누구? 장난치지 마."

"네가 분명히 똥꼬라고 했다니까. 똥꼬랑 뽀뽀했다고. 근데 똥꼬가 누구니?"






한숨을 '푹푹'쉬며 집으로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반찬거리를 샀다.

요새는 조금만 움직여도  허기지는데, 이런 증상은 혼자 살면서 더 심해졌다.

누군가, '심장'과 '위장'은 다르다고 했지만,  나의 경우엔 거의 같은 기능을 하는 것 같다.

외롭고, 마음이 허전할 때, 가슴이 아파야 하는데...

나는 배가 고프다.


집 앞에 도착해서 계단을 오르려는데, 작업복을 입은 남자 몇 명이 계단 위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가 살펴보니, 중간에 움푹 파인 계단 하나를 뜯어내고 새 걸로 갈아 끼우고 있다.


"이거 고치시는 거예요?"


그중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가씨 여기 위에 사나 봐. 그동안 많이 위험했겠는데. 균형도 안 맞아서 자칫하면 미끄러졌겠어."

"맞아요. 저 처음에 엄청 넘어졌어요."


공사가 마무리되는 것을 보고, 이젠 더 이상 발을 헛디딜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올려다보니, 4층은 여전히 깜깜하다.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 데,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알람시계가 새벽부터 오두방정을 떨어 '부시시' 잠에서 깼다.

오전 6시.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눈도 뜨지 않은 상태에서 테이블에 앉아 우유에 시리얼을 부었다.

'오도독' 과자 씹는 소리가 듣기 좋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집 밖을 나섰다.

찬 공기가 남아있던 잠을 마저 깨운다.

상쾌한 기분으로 기지개를 펴서 내려오는데, 카페테라스에 앉아있는 ''가 보였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 뛰어내려 갔다.


"저기요!!"


그는 캐주얼한 차림으로 편해 보였는데, 살짝 눈을 덮은 갈색머리가 자연스럽게 바람에 흩날리고, 오전의 따사로운 햇볕에 얼굴이 더욱 화사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눈 밑에 멍은 거의 사라진  듯했다. 다행이다.

조심스럽게 한 걸음 다가섰다.

'물어봐야 해. 그 날의 진실을'

시선이 자연스레 그의 입으로 향했는데, 살짝 벌어진 그 도톰한 입술을 보고, 나도 모르게 그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나의 집요한 시선에 눈을 피하면서 고개를 돌렸고, 그의 얼굴이 점점 빨개졌다.


그리고, 그 모습에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녀의 ''은 연속간행물입니다. 1편부터 보시면 스토리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바쁠 때 잠시 시간을 내어, 따뜻한 차 한잔의 여유를 가져보세요. 기분이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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