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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개구리 Jan 25. 2016

그녀의 '덫' #6

원숭이 엉덩이

한국엔 언제 왔어?

"너 며칠 전에 뉴욕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


무경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자, 장시창. 그가 잇몸을 드러내며 '씨익' 웃는다.


"내가 뉴욕 다녀온 것도 알고 있었어? 나한테 그렇게 관심 있는 줄은 몰랐네?"

"너한테 관심 있는 게 아니고, 네가 워낙 흘리고 다녀서 요란스럽잖아. 일주일 세 번 이상은 네 가십거리가 뉴스에 나오는 것 같은데. 안 듣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지."

"대디~ 혹시 그거 알아?"


장시창이 진지한 표정으로 몸을 숙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 가십... 탤런트 L양, 패션모델 A양, 진 기업 둘째 딸 F양, 그거 전부 사실이야. 알고 있었어?"

"관심 없다고 했지? 너한테 신경 끄고 산 지 오래됐어."

"나한테는 관심 없어도, L양은 최근까지 가깝게 지내지 않았어?"

"너랑 상관없잖아."

"그렇지.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아빠가 곤란해할까 봐 미리 알려주는 거라고. 아무리 안 친해도 부자지간 상도덕이라는 게 있는 거잖아."


시비 걸 듯, 무경을 쳐다보는 장시창과, 그 모습에 아무런 반응 없이 남은 커피를 마시는 무경.


"까불지마. 너 그러다 진짜 혼난다?"


일촉즉발의 긴장된 상태도 잠시, 갑자기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하는 장시창.

숨넘어갈 듯 웃는 그를 보며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데, 손무경이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본다.


"저거, 연기하는 거예요. 속지 말아요. 쟤 심심하면 가끔 저래요."

"큭큭... 이 아가씨 표정 봐. 깜빡 속았어. 아 웃겨... 이 쪽은 이제 재미없어. 속지를 않아. 짜증 나."


뭐야, 지금 이상황은?

이건 또 어디에서 나타난 뉴 또라이야?

장시창은 한참을 깔깔거리며 웃다가 잠시 후 진정이 되자, 나에게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가씨는 누구신데요?"

"저, 여기 윗 집 사는 사람이에요. 주민이요. 동네 주민."

"아~하... 그런데 왜 이 사람이랑 같이 있어요?"


아빠라더니, 또 이 사람이란다.


"뭘 좀 물어볼게 있어서...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일요일인데, 어딜 가요? 그 차림으로?"

"스포츠센터에서 운동하거든요. 지금 요가 배우고 있어요."

"오~ 그래요? 어쩐지, 아까 차에서 막 내리는데, 뒤태가 좋더라고... 운동하시는 분이구나. 요가는 왜요? 취미로?"

"그게... 이번에 지도자 자격증 따려고요. 그래서 연습하러 가요."

"우와~ 완전 멋지다. 자격증 따면 바로 요가 선생님 되는 거예요?"

"운이 좋으면,,, 그렇죠."

"그런데... 성함이?"

"서... 예랑이라고 합니다."

"예랑씨? 이름 이쁘다. 저는 누군지 알아요?"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의 가벼운 말투가 재수없었을 텐데, 장시창. 그는 무슨 짓을 해도 얄밉지 않으니, 그게 또한, 그의 매력인  듯했다.

툭툭 말을 내뱉으면서도 악의가 없어, 받아들이는 사람이 크게 거부감을 느끼게 하지 않는, 특이한 재주이다.


"영화배우 아니에요? 저번 주에 개봉했던 사극에서 왕의 아들로 나왔던 그 주인공"

"정답! 맞습니다."


물어봐도 되는지 잠시 고민하다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두 분이 진짜 부자지간이에요? 성도 다르면서 어떻게..."

"그거, 데뷔할 때 닉네임 쓴 거예요. 원래 이름은 손시경. 장시창이 훨씬 낫죠?"

"아... 그럼 진짜 두 분이?"


시창과 무경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창백할 만큼 하얀 피부에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무경이 북유럽 귀족처럼 생겼다면, 시창은 마치 남미에서 온 축구선수처럼  온몸에 에너지가 '콸콸' 넘치고 있다.

너무나 상반되는 두 사람의 비주얼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데, 그때까지 아무 말이 없던 무경이 입을 열었다.


"맞아요. 법적으로는 내 호적에 올라와있으니, 부자지간이 성립되는 게 맞아요. 하지만, 실제는 다르죠."


그 말에, 옆에 있던 시창이 끼어든다.


"우린 배다른 형제예요. 내가 이복동생이고, 그런데, 그 사실을 숨기려고, 우리 진짜 아버지가 무경이 형 호적에 날 올렸어요. 이해가 돼요?"


처음 만난 사람에게 하는 얘기치고는 꽤 수위가 있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점점 난감해졌다.

이런 막장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아침부터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어서 더욱 그랬다.


"이거 비밀인데... 지켜줘야 해요. 그래야 형이나 내가, 편하게 살아요."


그러마...라고는 했지만, 이 비주얼을 보게 되면, 어떤 사람인들, 두 사람을 부자지간으로 납득하기엔 어려울 것 같았다.

문득, 시계를 보니, 오전 9시가 되고 있다.

오늘 센터에서 하나와 만나기로 했다.

센터가 휴무일이지만,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 하나가 개인 특강을 해주기로 한 것이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약속이 있어서..."

"네~ 예랑씨, 기회 되면 우리 자주자주 봐요~"


시창이 잇몸을 드러내며 강아지처럼 웃는다.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그의 사교성에 다시 한번 놀라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몸을 일으키자, 무경의 시선도 따라 올라와 시선이 마주쳤는데, 찰나, 그가 살짝, 아주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모습에   끈 달아올랐.


"예랑씨?"


움찔하며


"네.....?"

"무슨 생각해요? 왜 얼굴이 또 빨개져요?"


헉.... 급하게 얼굴을 손으로 가려보는데, 그가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


"꼭, 원숭이 엉. 덩. 이 같아요."


마치 주위 사람들에게 들으라고 하는 것처럼, 큰 목소리로 '엉덩이'를 강조하는 그를 보며 당황하자, 시창이 옆에서 깔깔댄다.

'저걸 확 그냥'

주먹을 불끈 쥐고, 억지웃음을 지으면서 뒤돌아서는  그때, 무경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그렇게 환하고 밝게 웃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의 장난에 약이 오르면서도, 이내 그 웃음소리에 정말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은 연속간행물입니다. 1편부터 보시면 스토리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오늘 정말 정말 추워요. 요새는 누구를 만나면 날씨 얘기를 먼저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보온에 신경 써야 할 하루입니다.

내일부터 날씨가 풀린다고 하는데...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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