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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개구리 Jan 26. 2016

그녀의 '덫' #7

괜찮냐는 말 한마디

하루가 정말 빨리 지나간다.

거의 모든 시간을 센터에서 바삐 보내는 요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의 내 모습은 잘 짜여진 각본처럼, 예정된 결과가 아니었을까...


운명론을 믿지는 않지만, 결국 사람은 돌고 돌아 같은 자리에 서게 된다고 한다.

지금 나를 지나가고 있는 이 시간들을 아쉬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돌아보면, 많은 것이 후회가 된다고 하지만, 아마도 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은 삶을 살 것이다.


모두가 그랬다. 하면 된다고...  하지만,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부정적인 사고'와 '마음을 비우는 것'이 '다른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왜 사람들은, 말해주지 않았을까.

나보다 어른들은 항상,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스스로, 가진 그릇을 키워야 한다고도 했다.

그래야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고...

하지만 난, 내 그릇이 얼마나 큰 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내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될 거라 생각했다.


나는 나인데... 왜 항상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하는 걸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은 날 싫어할까...


이런 이야기들을 누군가 해주길... 바랬다.

하지만, 난 무작정 달리기만 했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결국 '도돌이표 제자리'이다.


모든 결론을 뒤로 하고, 이 질문만이 남는다.

지금 이 순간, '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센터에서 하나와 헤어지고 1층으로 내려왔는데, 출구 앞에 필상 선배가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여긴 웬 일이에요?"

"한번 와 보고 싶었어. 네가 잘 지내나 궁금하기도 했고, 시험 준비는 잘 돼가니?"

"그냥 열심히 하는 거죠 뭐..."

"그래, 보기 좋다. 집에 가는 길이었지? 태워줄게. 같이 가자."


그가, 센터 앞에 세워 둔 하얀 세단을 가리킨다.


"선배, 차 새로 뽑았어요? "

"응. 몇 달 됐어. 어서 타. 바람이 차다."


그가 상냥하게 문을 열어주고, 멀뚱 거리며 서 있던 난, 잠시 머뭇거리다 그의 차에 탔다.

그와 가깝게 나란히 앉으니, 어색하면서도 약간 설레었다.

실내를 두리번거리며


"완전 고급스러워요. 깔끔하고."

"차에 욕심을 좀 부렸어. 아무래도 몸으로  먹고사는데, 혹시 사고라도 나서 다치면  안 되잖아."

"그렇지. 맞아요. 몸은 반드시 지켜야 해."


그와 마주 보며 웃었다.


"사는 데가 연남동이라고 했지?"

"네. 제가 주소를 찍을게요."

"그래."


내비게이션에 집 주소를 입력한 후, 벨트를 매었다.


"근데, 무슨 일 있어요? 진짜 날 보러 온 거예요?"

"응. 왜 안믿겨져?"

"아니, 그냥 좀 신기해서요. 선배가 날 데리러 올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왜 없어? 저번에도 내가 먼저 연락했잖아."

"아,  그땐 그냥 오랜만에 보는 거라 안부 정도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다시 보니까 또 느낌이 달라서."

"뭐가? 어떻게 다른데?"

"그냥, 전에는 무척 반가웠고, 오늘은..."

"오늘은?"

"또 반갑네요"


키득거리며 웃는 나를 보며 그가 '뭐야' 하며 짐짓,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한동안, 조용히 운전만 하던 선배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 그동안 정연이랑 사귀었었어."

"네?"

"몰랐었니?"


'정연'이는 졸업 무대에서, 쓰러진 날 대신해 주연으로 공연했던 학교 동기이다.

평소에 그리 친하지 않았던 사이여서 연락할 일이 없었는데... '아, 그랬구나...'






"네, 몰랐어요."

"무용단에 입단하고 만나기 시작했어. 막상 사회에서 같은 학교 후배를 보니까, 더 챙겨주고 싶고, 정도 가고 그렇더라. 정연이도 착하고."

"네..."

"난 빨리 안정을 찾고 싶어서, 서둘러 가정을 갖으려 했어. 그래야 에 더 집중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청혼을 했는데, 거절당했어."

"네? 왜요?"

"정연이가 그러더라. 가끔 내가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은데, 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고. 그래서 떨어져서 생각할 시간을 좀 갖자고..."

"음....."

"비겁할지 모르지만... 그 말에 딱히 부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러자고 했어. 사실 난 네가 우리 무용단에 올 줄 알았거든. 기대도 많이 했고... 넌 더 힘들었겠지만."

"......."


어느 새, 차가 집 앞에 도착했고, 그가 먼저 밖으로 나가 문을 열어주었다.

그에게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말하며 집 앞에 섰다.

그리고, 그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나 사실, 너 좋아했었어. 학교 다닐 때  몇 번이나 고백하려 했는데, 용기 내지 못했어. 그래서, 졸업하고 많이 후회도 했고... 다 때가 있는데 그 타이밍을 놓치니까 다시 잡기가 힘들더라고."


그의 고백에 조금은 가슴이 두근거리면서도 기분이 이상했다.


"고민 많이 했어. 널 다시 봐도 좋을지... 그런데 저번에 널 보고, 한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에 찾아왔어. 너는 모르겠지만, 내가 많이 힘들었을 때, 너한테 자주 위로를 받았어. 그게 내내 잊혀지지가 않았고... 그래서,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너한테 말하고 싶었어. 고마웠다고..."


그 자리에 서서, 한동안  말없이,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지금 이런 순간을 얼마나 바랬는지 모른다.

그렇게 내가 원했던 건데...

언젠가는 선배가 날 봐주었으면... 떨어지지 않고, 항상 같이 있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렇게 긴 시간들을 보내고, 여기 이 자리에 함께 있는데, 왜 그의 말이 현재 진행형이 아닌 과거의 '지난' 이야기로 들리는 것일까...


결국,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는 얼굴로, 그를 보냈다.

그의 멀어지는 모습을 보다가,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왜 선배는, 자기 얘기만 하는 걸까...

나한테도 물어봐주면 좋을 텐데... '넌 어떠냐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러면 난 '나도 선배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다'고 말할 수 있는데, 왜 나한테는 물어보지 않는 것일까...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해 놓고, 그저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남긴 채, 그는 가버렸다.

그러면서 나 역시,  그를 붙잡고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했다.

지금도 기회가 있다고 말하면 되는데,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의 비겁함과, 그의 나약함에 가슴이 덜컹거렸다.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 입술로 머금었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알수 없다.

점점 시야가 흐려져 세상이 뿌옇게 보이기 시작할 즈음, 어딘가에서 '손무경'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요?"


갑작스러운 그의 목소리에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소리를 따라 올려다보니 우리 집 계단 위에 그가 앉아 있다.

잠시 후, 그가 일어나 , 천천히 나를 향해 내려왔다.

그리고, 내 앞에 서서 다시 묻는다.


"괜찮습니까?"


이렇게 가슴이 먹먹해질 때, 누군가 괜찮냐고 물어봐 준다면, 그냥 그걸로 충분할 때가 있다.

그게 비록,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렇게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은 연속간행물입니다. 1편부터 보시면 스토리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어제까지 베란다 창이 꽁꽁 얼어서 성에가 끼어있었는데, 오늘은 다 녹아있더라고요.

정말 다행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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