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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개구리 Jan 28. 2016

그녀의 '덫' #8

'틈'을 내어 준다는 의미

그가 계단 아래로 내려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건네주었다.


망설임도 잠시, 손수건을 받아 엉망이 된 얼굴을 닦아내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가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카페 안으로 들어가서, 커피 한잔을 들고 나왔다.

그가 건네준 머그컵에 담긴 카푸치노의 온기가 따뜻하게 전해졌다.


"테이크아웃용 컵을 못 찾아서 그걸로 가져왔어요~ 마시나서, 다시 가져다주면 돼요."


작은 목소리로 '네'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셔봐요. 예랑씨, 지금 코가 엄청 빨개요."


그의 말대로 한 모금 '후룩' 마셨는데, 거품이 부드럽고, 향이 풍부해 목 넘김이 좋았다.


"맛이 어때요?"

"따뜻하고, 부드러워요."

"다행이다."


가 해맑게 웃었고,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왜 왔어요?"


그는 내 질문에 어깨를 으하며


"계단 보수한 거 잘 됐나 보려고요. 내려가려는데 그때  예랑씨가 도착해서... 인사 나눌 분위기가 아니길래 기다렸어요."

"전 그것도 모르고... 그럼 다 들은 거예요?"

"아뇨. 멀어서 안 들렸어요. 그런데 그 사람 누구예요?"

"아... 대학교 선배인데, 집에 데려다 준다고 해서..."

"   그 사람 싫어요?"

"아."

"그 반대구나?"




그가 장난스럽게 묻는다.

그게... 저.... 할 말을 고르며 더듬거리는데, 무경의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통화버튼을 누르자마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는데, 잘 들어보니 '장시창'이다.

피곤한 표정을 짓는 무경.


"? 나 1층."


그러더니 전화가 '뚝' 끊겼고, 황당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쳐다보던 무경이 '이 자식이.' 하며 중얼거리는데, 4층 창문이 '벌컥' 열리고, 예의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대디~~~~~~~~~~~거기서 뭐해?  나 좀 봐봐."


무경과 동시에 빌라를 올려다보았다.

창문 안에서는  시창이 상의를 탈의한 채, 얼굴엔 머드팩을, 머리는 고무줄로 댕강 묶은 꼬라지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 저 또라이."


부끄러운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뒤돌아서는 무경.

시창은 전혀  아랑곳없이 손을 흔들다가, 나를 발견하고 더 큰 목소리로 불러댔다.


"예랑 씨도 있네? 예랑 자기야~~~~ 둘이 뭐해. 나만 빼고 뭐하냐? 나도 같이 놀아줘~ 심심해"


그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며 나도 모르게, 천천히 등을 돌렸다.


"저 사람, 술 먹었어요?"

"원래 저래요."


영화에서 보았던, 카리스마 있고, 야성 넘치는 진중한 이미지는 어디 가고, 지금의 모습은 거의 동네 바보에 가까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날 쳐다보던 무경이 암묵적으로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요. 지금 생각하는 게."

"연예인이라 그런지, 에너지가 넘치네요."

"너무 넘쳐흘러서 주변 사람이 피곤하죠."


그리고 잠시 후, 빌라 1층 출구에서 다시 시창의 목소리가 들렸다.


"둘이 뭐하냐니깐?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같이 놀자?"


무경과 동시에 움찔하며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시창이 어느 새, 옷을 입고 있었는데, 팬이 보내 준 것인지, 독특했다. 핑크색 하트가 그려진 극세사 잠옷이 멀리서 봐도 눈에 띌 정도로 화려했고, 가슴 한복판에는 커다란 큐빅으로  '슈퍼프린스  시창'이 박혀있었다. 그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다가왔다.


그 모습에 기겁을 하며, 무경이 나에게 속삭였다.


"쟤 버리고, 갈래요?"


동의할 새도 없이, 얼떨결에 그에게 이끌려 뛰다.


한참을 정신없이 뛰었는데, 답답한 가슴이 곧 상쾌해졌다. 오랜만이다. 이런 기분은...

무경이 나보폭을 맞추며 앞으로, 뒤로, 함께 달렸다.

어릴 때는, 이 골목을 참 많이도 뛰어다녔는데...

그때 함께 놀던 그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예랑 씨... 이제 천천히 가요."


그가 거친 숨을 내쉬며 멈추었다.


"그거 조금 뛰었는데 벌써 숨이 차요?"

"그게 아니고. 오랜만에 집 밖을 나와서..."

"그래도 그렇지."


그가 호흡을 고르며 쉬는 동안에 '휙휙' 골목 안을 둘러보았다.

어릴 때부터 모르는 곳이 없을 정도로 이 동네 지리는 구석구석 훤하다.

정겨운 마음에 옛 기억이 떠올랐다.

동네 친구들과 이 곳에서 매일 줄넘기를 하고, 숨바꼭질 했다.

특히 외동딸인 난, 집에 있으면 놀아 줄 사람이 없어, 골목으로 나갔고, 그럴 때마다  모두가 친구가 되어주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시장으로 달려가      .

 핫도그를 먹을지, 아니면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아꼈다가 내일 둘 다  사 먹을까...


한참을 옛 추억에 빠져 있는데, 무경이 옆으로 다가왔다.

그의 얼굴이 창백하다.


"어지러워요."

"물 좀 마실래요?"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마침 근처에 작은 슈퍼마켓이 있어 안으로 들어가, 생수를  사 왔다.

에게 내밀자, 뚜껑을 열더니 벌컥벌컥 마신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걷다가 작은 공원을 발견했다.


 안에는 오래된 놀이기구들이 있었는데, 낡은 그네와, 시소, 미끄럼틀이 마치 버려진 것처럼 뽀얗게 먼지가 쌓여 있었다.


"우리 저거 타볼래요?"


내가 가리킨 것은 시소였고, 무경은 손을 저으며 난색을 표했다.


"놀이기구 별로 안 좋아해요."

"아니, 어렸을 때 뭐하고 놀았어요? 잘 뛰지도 못하고, 가만히 숨만 쉬었어요?"

"그 정도는 아닌데, 이렇게 놀아본 적이 없어요."

"뭐라고요?"

"정말이에요.   와 봐요."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뻥치지 마요."

"진짜라니까... 왜  사람 말을 안 믿어요."


그를 두고, 시소로 향했고,  한쪽에 앉아 무경을 손짓하며 불렀다.


"빨리 요. 균형을 맞탈 수 있어요."

"진짜 안 한다니까."

"아... 좀 빨리요"


그가 잠시 난감해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시소의 반대편에 앉았다.

밸런스를 맞추려는데 잘 안되는지 시소는 꿈쩍하지 않았고, 낑낑거리며 다시 발을 구르자 조금씩 위아래로 직이기 시작했다,

'콩콩'거리며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리듬을 타자 그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활짝 웃었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재밌어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발을 굴렀고,

그렇게 우리는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한참을 신나게 놀다.



그녀의 ''은 연속간행물입니다. 1편부터 보시면 스토리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이야기가 바로 이어지는데, 분량 때문에 회차를 나누었어요~ 다음 화도 바로 이어서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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