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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개구리 Jan 28. 2016

그녀의 '덫' #9

너와 내가 다른 이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골목 여기저기 지름길과 샛길을 찾아 집으로 가는데, 그가 날 따라오면서 물었다.     


"어떻게 길을 그렇게 잘 알아요?"

"전, 태어나고 자란 동네가 바로 여기거든요. 눈 감아도 어디든 갈 수 있어요."

"고향 같은 곳이네요?"

"그럼요. 한 번도 이 곳을 떠나 본 적이 없어요."

"여행은 가봤을 거 아네요."

"아뇨... 학교도 계속 이 쪽에서 다녔고, 부모님도 멀리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고, 또 대학 들어갔을 때도 바빴. 알바하느라."

"답답하지 않아요?"

"답답하죠. 마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이대로 내 인생이 끝나는 건가... 생각도 하고. 그런데, 같이 자란 친구들이 하나둘씩 이 곳을 떠나는 걸 보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누군가는 남아있어야 하지 않나? 그래서 그 친구들이 안심하고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게... 이 곳은 여전구나. 그렇게 마음 놓을 수 있게... 누구에게나 고향은 그런 거잖아요. 그리고, 전 정말로 이 곳이 편하고 좋아요."


흐뭇한 표정을 짓는 날 빤히 쳐다보던 그가 사뭇, 진지해진다.


"나 지금 당신한테 좀 반한 것 같아요. 예랑 씨는 좀, 다른 것 같아요."

"..... 뭐가 달라요?"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신기해요. 모두들 더 넓은 곳으로,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데 예랑씨는 이 곳을 지키고 싶어 하잖아요."

"뭐, 사실... 어디 갈 형편이 안돼서 그런 것도 있고... 또 모르죠.      지... 그런데, 무경씨는 여긴 어떻게 왔어요? 처음 아니에요?"

"저도 한 때 여기 살았어요."

"정말요? 어디?"

"지금은 없어졌는데, 옆 블록에 예전에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극단이 있었어요. 살던 집도 그 근처였고...

그렇잖아도 며칠 전에 가봤는데, 집이 레스토랑으로 바뀌어 있더라고요."

"그럼, 무경씨한테도 고향 같은 거네요?"


천천히 고개를 젓는 그.


"그 정도는 아니고, 사실 전, 이 동네에 대한 좋은 기억이 별로 없어요. 오히려 정반대죠."

"네? 무슨..."


그가 잠시 주저하더니,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릴 때, 납치당한 적이 있어요."     


발걸음을 멈춰 그를 쳐다보았는데, 그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다.     


"8살 때, 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셨어요. 그 후, 아버지가 많이 변하셨죠. 저한테 무척 엄하게 대하셨는데, 아들인 제가 강해져야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얼마 후, 사건이 있었는데,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어요.

아직 집에 가려면 한참 멀었는데, 한테 연락할 방법도 없고, 또 한다고 해도 혼자 해결하라고 하셨을 테니까 그냥 걸었어요... 돈도 없어서 우산을 사지 못했는데, 버릇없어진다고, 용돈을 거의 안 주셨거든요.

집에 가는 중간 즈음인가, 한참을 걸어서 횡단보도 앞에 섰는데, 자꾸 빗방울이 속눈썹을 타고 내려와 앞이 보이질 않았어요.

그런데, 어떤 남자가 다가왔어요."    

 

그리고, 그는 잠시 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고, 나 역시 그의 옆에서 나란히  .     


"투명한  비닐우산을 씌어줬는데, 날 보고 예쁘다면서 얼굴을 쓰다듬었어요. 순간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고, 뒤로 물러났는데, 그 남자가 음료수를 주더니 마시라고 하더라고요. 먹지 않으려고 도망치다가 얼마 못 가 잡혔고, 난 그 음료수를 마시고 기절했어요. 그런데 예랑씨. 이런 얘기 듣는 거 괜찮아요? 싫으면 그만할게요."

"아뇨... 전 괜찮은데 무경씨가 힘들면 그만하셔도 돼요."


그가 잠시 호흡을 고르더니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긴 잠에 빠져들었는데, 몇 시인지 며칠인지 모를 정도로 어두웠어요. 바닥이 미끄러워서 만져보니까 생선상자였던 것 같은데 썩은 냄새가 진동했어요.

약 기운 때문인지, 계속 잠을 자다가 어느 날, 인근 주민이 악취 때문에 신고를 했고, 출동한 경찰이 집 수색을 하면서 날 발견했어요."

"세상에... "

"구출돼서 아버지 얼굴을 처음 보는데,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평소에 그렇게 엄하고 무서운 분 마치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날 보고 울기 시작하는데, 어찌나 구슬프게 우시는지, 오히려 내가 아버질 위로해야 할 정도였죠."

"당연히 그러셨겠죠... 부모님인데."

"알고 보니, 그 범인은 사이코패스였는데, 집 안에 유기동물의 시체가 가득했다고 해요.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쾌감을 느낀다고 했어요. 아마 내가 구출되지 않았으면 나 역시 그랬겠죠."

"믿을 수가 없어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그렇죠... 암튼 그 이후로 아버지는 충격을 받아서 날 데리고, 미국으로 가셨고, 사립학교에 보냈어요."

"무경씨는 괜찮았어요?"

"괜찮지 않았죠 당연히... 그 후로 많은 것이 변했어요. 나 자신도, 그리고 내 환경 모든 것이 달라졌어요."

"힘들었겠다. 무경씨..."

"아름다운 추억은 아니죠 분명히."

"그런데 다시  돌아온 거예요?"


그가 걸음을 멈추더니, 잠시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침묵을 깨고 차갑게 말했다.


"아버지의 유언이기도 했고...   싹 바꿔버릴 거예요. 전의 모습은 하나도 지 않도록."


  난, 발길을 멈추고, 그와 마주 보았는데, 그의 눈은 처음 보았을 때처럼 고요하고, 어두웠다.



그녀의 ''은 연속간행물입니다. 1편부터 보시면 스토리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본격적으로 그녀의 '덫' 2부가 시작됩니다. 10회는 2월 18일 발행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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