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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개구리 Feb 24. 2016

그녀의 '덫' #11

큰 가치가 있으면 작은 가치는 따라온다.

 시험 전 날,


늦게까지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테스트에 집중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며칠 동안 잠을 자도 피곤한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눈을 감고, 막 잠이 들려는 찰나,  집 밖에서 뭔가 바닥을 끄는 쇳소리가 들렸다.

몽롱한 상태에서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살짝 눈을 떴는데, 어두운 방 안에 누군가 있었다.

검은 눈으로 날 내려보는 남자를 본 순간,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고, 한동안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에서 그의 시선을 오롯이 받아내야 했는데, 오랫동안 눌러왔던 공포가 몸 안의 세포를 하나하나 깨우고 있었다.


입 밖으로 소리를 낼 수도 없고, 다리를 움직여 도망칠 수도, 눈을 감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 시간들이 마치  천년만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렇게 날 쏘아보던 남자가 천천히 몸을 숙였는데, 마치 눈과 눈이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그의 눈동자는 유리구슬처럼 투명했고, 그 눈빛은 내 영혼을  집어삼킬듯이 집요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문 밖으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마치 주문이 풀리듯 손끝과 발가락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전화벨이 계속 울리고, 현관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눈을 뜨고 나서야, 날이 밝았음을 알았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문을 열었는데, 하나였다.


"야! 서예랑! 너 어떻게 된 거야? 전화도 안 받고, 무슨 일이야?"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하나.

난 그녀를 앞에 두고 바닥에 미끄러지듯이 주저앉아 멍하니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험장소는 마포 공덕역이고, 테스트 시작시간이 오전 10시인데, 지금 벌써 9시가 넘었다.

고개를 바닥에 떨구고 있는 나에게 다가온 하나는


"왜 그래? 어디 아파? 예랑아. 괜찮아?"

"머리가 너무 아파서 일어나지를 못하겠어......."


간신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자, 손을 내밀어 내 이마에  갖다 댄다.

눈살을 찌푸리는 그녀.


"너 지금 열이 장난 아니야. 어제 무슨 일 있었어?"

"잠을....... 좀 못 잤어. "

"애가 어떻게 하루 만에 이렇게 변하니? 너 지금 당장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 "

"안돼. 그건 절대 안돼."

"뭐가 안돼? 시험이야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는 거고, 지금 네 상태가 장난 아니라니까?"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킨 난, 벽에 걸린 재킷을 움켜잡았다.


"이게 마지막이야. 또 도망칠 수는 없어."

"이 바보야! 기회는 또 있다니까. 너 그러다 쓰러져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하나야. 이번 기회를 놓치면 난 정말 끝이란 말야.  나 좀 도와줘 부탁이야. 혼자 움직일 수가 없어서 그래."




절박하고 확고한 나의 말에 하나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때, 현관문 밖에서 무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도와줄게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급한 것 같은데 데려다 줄게요. 같이 가요."


멍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것도 잠시 그의 재촉에 하나의 부축을 받으며 서둘러 집 밖을 빠져나왔다.

1층에 세워져 있는 무경의 차. 그가 차 뒷문을 열어주고, 자신도 재빨리 운전석에 올라탔다.

출발하기 전에 뒤돌아보는 그.


"좀 빨리 갈 건데, 괜찮겠어요?"


퀭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쳐다보았다. 이내, 그의 차가 동네를 벗어나 테스트 장소로 향했다.

시험장소에 도착하니 10시 2분.

급히 시험장 안으로 들어갔는데, 다행히 많은 인원이 지원을 해서인지 대기 시간이 아직 여유가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순서를 기다리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홀을 지켜보자,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했고, 난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127번 서예랑씨"


심사위원의 지명에 대답을 하고 홀 가운데로 나서자, 점점 심장이 두근거렸다.

홀에 서서 준비를 마치고, 한 발짝 내딛는 순간, 발을 관통하는 통증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바닥에 흩뿌려진 유리조각을 밟는 느낌이었는데 중간에 멈출수가 없어 준비한 동작을 모두 쏟아내어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지켜보는 무경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 그를 보자 왠지, 안도감이 흘렀다.


"수고하셨습니다."


심사위원의 말에 그대로 홀을 빠져나온 난, 문 밖에서 지키고 있던 하나를 보고 잠시 말을 잃었다.

하나는  꼭 끌어안은 채 펑펑 울었는데,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어떨지 알 것 같아, 너무나 고마웠다.


그리고, 손무경 그가 다가왔다.

그는 조용히 앞에 서서 살짝 미소를 지었고,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따뜻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녀의 ''은 연속간행물입니다. 1편부터 보시면 스토리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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