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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개구리 Feb 28. 2016

그녀의 '덫' #12

당신이 손을 잡아주던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온몸이 오징어처럼 흐물흐물해져 차 시트에 달라붙어있던 난, 하나를 '툭툭' 치며 물었다.


"나 어땠어? 합격할 것 같아? 네가 볼 땐, 어때?"


잠시, 말을 아끼는 하나.


"뭐 일단 참가 한 거니까 기다려봐야지. 그 몸으로 해냈다는 게 어디야?"

"반응이 왜 그래? 나 별로였어?"

"아무래도 네가 컨디션이 안 좋았잖아."


그때, 뒷 자석을 흘끔거리는 무경과 눈이 마주치고,


"무경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글쎄요. 전 요가를 잘 몰라서."


난감한 표정을 짓는 무경.

아무래도, 방전된 체력으로 끝까지 동작을 소화하는 건 무리였나 보다.

하나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중간부터 몸에 힘이 빠져 호흡을 놓친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조금은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자꾸 아쉬운 생각에 한숨을 쉬자, 무경이 미러를 통해 나를 쳐다본다.


"결과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예랑씨 눈빛이 인상적이었어요. 평소와는 달라 보이고,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멋있었어요. 그러면 된 거 아닌가?"

"붙어야죠. 결과가 좋아야 과정도 의미가 있죠."

"과정에 후회가 없으면, 더 좋은 결과가 생길 수 도 있어요. 시간이 조금 더 걸려서 그렇지."


그의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하나.

잠시 생각에 잠겨 창 밖을 쳐다보다가, 문득 떠올라


"그런데, 우리 집에는 어떻게 알고 왔어요? 그 타이밍에?"

"아, 카페에 있다가 하나씨가... 하나씨 맞죠? 계단으로 뛰어올라가길래  무슨 일 있나 보다 하고 찾아갔죠."

"갑자기 무경씨가 도와주겠다고 나타나서, 깜짝 놀랐어요."

"그래도, 쓸만했죠?"

"네, 고마워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서로 웃었다.

다시 차창밖을 내다보니,  어느덧 여름의 끝이 보였다.

뜨거웠던 여름. 언젠가 또, 돌아보면 이 시간들이 생각나고 그리운 추억이 되겠지.

그래도, 살아 있어 참 다행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게 어떤 결과를 낳을지 그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무언가 어려운 일을 끊임없이 도전을 하는 사람들에게 왜  계속하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건 내가 아니니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난 뭔가라도 해야 하니까. 그 자체가 내게는 도전이니까.'






그랬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후, 나의 삶에서 커다란 일들이 일어났는데,

한 가지는 예상한 대로 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진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있었다.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옥상과 난간의 연결부위가 떨어져 계단이 주저앉은 것이다.

다행히, 계단을 오르기 전 상황이었고, 굉음과 함께 무너지는 그 파편들 속에서 나는 뒤로 물러서서, 마치 재난영화를 보듯 그 광경을 목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방차를 비롯해서 사람들이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난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는데, 잠시 후, 포클레인이 오더니 잔해물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건물 앞은 금세 정리가 되었고, 난 끊긴 계단 아래에서 원망스러운 얼굴로 하염없이 옥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왜,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오는지. 그게 왜 매번 반복이 되는지. 그럴 때마다 내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이럴 때마다 정말 모르겠다.

하나님. 저에게 왜, 자꾸 시련을 주시나요.





그런 나를, 불쌍하게 쳐다보던 카페 직원이 따뜻한 차를 권했고,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테라스 구석 한쪽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무경이 카페 앞에 차를 세우자마자, 나에게로 다가왔다.


"얘기 들었어요. 예랑씨 괜찮아요?"


어떻게 이 남자에게 매번 이런 소리를 듣게 되는지, 왜 이런 모습만 자꾸 보이게 되는지,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머리가 산발이 된 채 눈이 풀려, 멍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알아봤는데, 당장 복구가 힘들 것 같아요. 내일 크레인을 올려줄 테니까 필요한 짐이 있으면 가져오고, 우선 우리 집으로 가요."


그렇잖아도 지낼 곳이 필요해 하나에게 연락을 했는데, 레슨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 있다고 했다. 부동산 사장님은 보증금을 빼 줄테니 집을 알아보라고 했다.

당장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그의 제안이 고맙기도 하고, 어렵기도 해서 갈등하고 있는 사이, 그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지금 많이 힘들어 보여요. 올라가요. 내가 밥 해줄게요."

"저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세요?"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그가 이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당신은 내 건물 세입자잖아요. 동네 주민이기도 하고. 그게 이상합니까?"

"정말, 그게 다예요?"

"그럼, 뭘 기대한 거예요?"

"궁금해서요.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렇게 대하는지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물론 아니죠.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도 아니고."

"그게, 무슨 뜻이에요?"

"예랑씨가 나에게 특별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잘해주는 거라고요."


그와 눈이 마주쳤는데, 어느 새 그의 눈에 장난기는 사라지고 진지해 보였다.

그가 다시 손을 내밀었고, 재촉하듯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나 배고파요. 빨리 가요. 시창이가 곧 들이닥칠 텐데, 걔가 있으면 정신 사나워서, 오기 전에 요리를 끝내야 해요. 갑시다."


그에게 등 떠밀리듯이 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내내, 그가 내 손을 꼭 잡아주었는데, 그 손이 참 크고, 따뜻했다.



그녀의 ''은 연속간행물입니다. 1편부터 보시면 스토리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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