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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개구리 Mar 03. 2016

그녀의 '덫' #13

힘을 내요 그대

무경의 집은 넓고 깨끗했다.

인테리어는 고급스러웠지만, 사치스러운 물건이나 소품이 없어, 그 큰 공간이 휑할 정도로 비어있었다.

깔끔하고 다소, 검소함이 느껴지는 그의 거실.

대리석으로 마감된 바닥 한 가운데에 그레이 색의 양탄자가 깔려있고, 각기 다른 디자인의 1인용 암체어가 마주 보고 있다. 그리고, 한쪽 벽면을 채울 정도로 큰 TV. 그게 전부였다.

액자 하나 걸리지 않은 깨끗한 벽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무경이 자신의 옷을 가져다주며,


"이걸로 갈아입어요. 내 옷 중에서 제일 작은 건데, 예랑 씨한테 많이 크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편할 거예요."


그의 안내에 따라 수건과 옷을 들고 욕실로 향했다.

잠시 후, 샤워기 아래에서 뜨거운 물로 굳어있는 몸을 풀었다.

욕실 역시 깔끔했는데, 벽면과 바닥은 하얀 타일로 반짝거리고, 벽 한쪽에는 대형 거울이 부착되어 있어, 욕실이 더욱 넓어 보였다.

조금 과장을 덧붙여서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무경의 욕실 사이즈와 비슷할까.

그렇게 한참을 뜨거운 물로 몸을 녹이면서 하루의 노곤함을 씻어내고 있었다.





그의 옷을 입으니 마치, 어른 옷을 빌려 입은 아이처럼 헐렁했는데,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났다.

냄새에 이끌려 주방에 들어서자, 요리를 하고 있는 무경의 뒷모습이 보인다.

왠지 그 모습이 근사해 보여 잠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뒤돌아보는 무경. 환하게 웃는다.


"역시 옷이 크네요. 그래도 그게 낫죠?"

"네. 고마워요"

"잠시 앉아있어요. 밥이 금방 돼요."


나를 천천히 식탁의자에 앉히더니 뒤돌아 다시 요리에 열중하는 무경의  옆모습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따뜻한 잡곡밥과 함께 계란말이, 북어국이 테이블 위에 올려졌고, 그가 내 맞은편에 앉았다.


"우와. 이걸 무경씨가 다 한 거예요?"

"다는 아니고. 되도록 집에서 밥을 해 먹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어릴 때, 외국에서 자라서 그런지 한국음식이 너무 그리웠거든요. 요리가 재미있기도 하고. 아마, 지금 하는 일이 아니었으면 요리사가 됐을 지도 몰라요."


그러고 보니, 그가 건물주에 카페 사장인 건 알지만, 그의 직업이 정확히 그게 다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고 꼬치꼬치 캐묻기도 뭐해서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밖에서 시끌시끌한 소리와 함께 시창이가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날 보자마자, 과장된 포즈로 포옹을 하였고, 난 한 손에 숟가락을 든 채 그의 격한 인사에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더니,


"예랑씨 집이 날아갔다며? 소식 다 듣고 왔지."


살짝 얼굴 찌푸리는 무경.


"왔으면 조용히 앉아. 사람 당황스럽게 하지 말고."


이내, 시창이 내 옆에 '털썩' 앉는다.


"밥 줘."

"네가 갖다 먹어 자식아. 넌 손 없어?"

"응 없어 없어. 배고파 빨리 줘."


얼거리는 시창 앞에서 무경이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그가 밥을 가지러 간 사이, 시창이 얼굴을 들이밀어 내 상태를 확인하듯 빤히 쳐다보았는데,


"다친덴 없고? 그래도 멀쩡해서 정말 다행이다. 어디 갈 곳이 있어요? 없으면 당분간 여기서 지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차피 집도 휑하고, 무경이 형이랑 나도 집에 잘 없어요."

"넌 또 뭘 그렇게 속닥거려?"


무경이 국과 밥을 시창 앞에 놓자, 시창이 달려들어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분만에 밥 한 공기를 비워낸 그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숟가락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내가 이 맛에 집에 온다니깐. 사랑해 형."

"나가서 굶고 다니는 거야? 왜 그렇게 허겁지겁 먹어?"

"몰라.  사 먹는 건 금방 배가 고파. 예랑씨 갈 데 없으면 당분간 우리 집에 있으라고 얘기하고 있었어."

"네? 아니에요. 저 진짜 갈데 있어요."

"예랑씨 저도 시창이 말에 동의해요. 같이 지내는 게 불편하면 우리가 나가도 돼요."

"진짜 괜찮아요. 며칠 후에 하나가 집에 돌아오면 같이 지내면 돼요. 전 그게 더 편해요."


잠시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던 무경이 조용히 한숨을 내쉰다.


"그래요 그럼. 예랑씨 편한 데로 해요. 강요하지 않을 테니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해요."

"네, 아무튼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정말로."

"힘내요.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거예요. 지금 이 시간들을 예랑씨가 꿋꿋하게 이겨냈으면 좋겠어요."


무경의 따뜻한 미소를 보며 한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미소를 평생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의 미소. 그가 내게 미소를 짓는 그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위안을 주고 있었다.


그녀의 ''은 연속간행물입니다. 1편부터 보시면 스토리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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