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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개구리 Mar 06. 2016

그녀의 '덫' #14

일상의 소소함

다음날, 아침.

눈을 뜨고, 낯 선 공간에 잠시 당황하다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습관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무경의 집에는 방이 총 6개가 있고, 크기가 거의 비슷했는데, 그중 이 방이 가장 작아 마음에 들었다.

퀸 사이즈의 라텍스 매트리스 외에 가구가 하나도 없는 이 방은 마치 무경의 어떤 모습과 닮아있었는데, 그를 볼 때마다 난 가끔, 그가 갑자기 사라질 것처럼 아련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더니, 시창이 머리를 댕강 묶고 바닥에 누워 tv에서 방영되는 사극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앞에는 과자봉지가 있고, 하나씩 집어먹으며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의 모습을 따라 하는데,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난 알고 있다. 어서 사실을 고하거라. 정녕! 네가 죽고 싶은 거냐!"


마치 tv속 인물에 빙의되듯, 대사를 따라 읊는 그를 보니, 천상 '배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날 쳐다보더니, 그 잇몸 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우앙, 예랑씨 쌩얼 보니까 진짜 못생겼다. 딴 사람 같아.크킄"


화들짝 놀라 손으로 얼굴을 가리다가, 울컥하는 마음에.


"저 평소에도 거의 쌩얼이거든요?"

"알아요. 예랑씨 보면 자꾸 장난치고 싶은데, 자제가 안되네. 지금 그 표정 엄청 재미있거든요."


키득거리는 그에게 뭐라 할 말이 없어 한숨을 내쉬는데, 주방에서 무경이 걸어나온다.

그는 심플한 민소매 T 에 편한 져지 팬츠를 입고,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싱그러운 미소를 짓는다.


"잘 잤어요? 잠자리가 바뀌어서 불편하지 않았어요?"

"아뇨, 너무 푹 잘 잤어요."

"배 고프죠? 씻고 나와요. 간단하게 아침 먹고, 시창이랑 테니스 치러 갈 건데 시간 괜찮으면 같이 가요. 바람도 쐴 겸."

"아...... 네, 그럼."




양치질을 하고, 머리를 정돈하며 거울을 보았다.

얼굴을 요리조리 쳐다보며 '내가 진짜로 그렇게 못 생겼나?' 그래도 학교 다닐 때 인기는 좀 있었는데, 연애에 소질이 없어 그렇지. 아니면 늙은 건가? 에잇 모르겠다. 아무렴 어때, 못생겨도 난 나인데 어쩌겠어.'


쿨하게 욕실에서 나와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화장품 가방을 꺼냈는데, 평소에 거의 화장을 하지 않아 쓸 수 있는 제품이 별로 없었다.

연필로 눈썹을 정성스럽게 그리고, 입술에 틴트와 립글로스를 발라 메이크업을 마무리하고 방을 나왔다. 어느 새, 거실 의자에 앉아 테니스공을 만지작거리던 시창이 나를 보더니 '푸핫' 하며 웃음을 터뜨렸는데,


"예랑씨 얼굴에 무슨 짓을 한 거예요? 그게 더 웃겨요."


깔깔거리는 그에게 뭔가 던질만한 물건이 있는지 두리번거리는데, 이 집은 이럴 때 쓸 수 있는 소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맹점이다.

역시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던 무경이 나를 쳐다보았는데,


"아...... 깜짝이야."


그의 반응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시창이 다가와 내 얼굴을 뜯어본다.


"아까 놀렸다고 또 그새 사고를 치셨네. 화장 잘 못하죠? 지금 눈썹이 거의 붙어 있는 거 알아요?"


그가 나를 끌고 가더니 의자에 앉힌다. 그리고 방에서 하드케이스를 들고 나와 여는데, 온갖 고급스러운 화장품이 구색에 맞게 진열되어 있다.


"비상용으로 갖고 다니는 거예요. 스케줄이 갑자기 어떻게 될지 몰라서. 눈을 감아봐요."


가까이 얼굴을 대고, 눈썹을 다시 그려주는 시창. 그의 섬세한 손놀림에 얼굴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마치 요술봉처럼 정성스레 내 얼굴에 그림을 그리듯 메이크업을 하는 시창.

잠시 후, 그의 말에 눈을 뜨고 거울을 바라보았는데, 순간, 정말로 얼굴에 비행기 모양의 그림이 그려진 것을 보고 시창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 이게 뭐예요? 진짜 나한테 왜 그래요?"


제대로 맞았는지 무릎을 움켜쥐고 도망가는 시창. 잽싸게 현관 밖으로 빠져나가더니 나가기 전 뒤돌아 '메롱'을 날린다. 딱 이 표정으로.

정말, 어이가 없다 진짜.

뒤에서 키득거리고 웃는 무경을 째려보자, 그가 움찔하며 테니스 채를 챙기며 딴 청을 부렸다.

그리고, 건물 1층에서 시창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는데,


"예랑씨 빨랑 나와!! 날씨 완전 좋아!!"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무경을 따라 현관 밖으로 향했다.


그녀의 ''은 연속간행물입니다. 1편부터 보시면 스토리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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