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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개구리 Mar 13. 2016

그녀의 '덫' #16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며칠 후, 하나가 서울로 돌아오자, 간단히 짐을 챙겨 하나의 집으로 갔다.

그녀의 집으로 가는 길, 태워주겠다며 함께 나선 무경이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하나씨도 곧 이사해야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둘이 계속 살 건 아니잖아요?"

"당분간 집을 구할 때까지 같이 있는 거고, 알아보려고요."

"어차피 그럴 걸. 그냥 나랑 같이 있으면 되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요? 예랑씨는 다른 사람한테 부탁 같은 거 잘 못하죠? 누군가 호의를 베풀면 싫은 거예요? 아니면 부담스러워서?"


잠시 고개를 떨구고


"외동이라 혼자 자라서 그런 것 같아요. 받는 것도 주는 것도 익숙하지 않아서. 그냥 그게 편하니까."

"사람이... 혼자서는 잘 살 수가 없어요. 언젠가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나는 그런 순간이 오면 예랑씨가 받아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거리를 두는 거, 그게 더 불편해 보여요."

"음...... 그럴게요. 그렇게 생각할 줄을 몰랐는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가 나를 쳐다보며 눈이 마주쳤는데, 그의 눈빛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예랑씨랑 며칠 동안 같이 지내면서 문득 내가, 당신을 보면서 자주 웃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예랑씨를 보면 기분이 좋고, 웃음이 나고 그래요. 그래서 내가 당신이랑 있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보내려니까 마음이 좋지가 않아요. 모르겠어요. 나도 왜 그렇게 느끼는지. 한 번도 이런 느낌 가져본 적이 없어서 스스로도 당황스럽고 낯설어요. 이런 말 부담스러운가요?"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경씨한테 신세를 많이 져서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워하고 있어요. 그런데 뭐, 내가 하나 집으로 간다고 해서 다시 안 볼 것도 아니고, 또 짐도 그 집에 그대로 있고......"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으면, 이제부터라도 곰곰이 생각해봐요. 내가 왜 당신을 보면 기분이 좋다고 하는지, 왜 보내기 싫어하는지 그 답은 스스로 찾아줬으면 좋겠어요."


그의 진지한 말에 그러겠다고, 생각해보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의 차가 홍제동에 있는 하나의 집에 도착하였고, 그는 차에서 내 짐을 꺼내어 집 안으로 가져다주었다. 기별을 듣고 나온 하나는 그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더니 내 팔을 '툭툭'치며 속삭이듯.


"너 내가 올 때까지 무경씨랑 같이 있었던 거야?"

"응. 신세를 좀 졌어."

"대박."


무경은 마지막 가방을 집 안에 넣어주고, 그녀의 작은 원룸을 한번 둘러보더니 하나와 나에게 인사를 했다. 마치 아이를 물가에 내놓는 듯, 그의 표정이 불안해 보였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줘요. 나도 가끔 연락할게요."

"네.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그가 한동안 날 쳐다보더니,  차를 타고 멀어졌다.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난, 하나와 함께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 밤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는 하나에게 물었다.


"하나야. 누군가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고, 웃음이 난다는 게 무슨 뜻일까?"

"바보냐? 그걸 몰라?"


그녀가 뒤척이며 이불을 끌어올렸다.


"뭔데? 정확히 무슨 뜻인데?"

"설마 그게 싫다는 거겠어?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거야?"

"아니, 헷갈려서. 내가 착각하는 걸 수도 있잖아."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나를 내려다본다. 그러더니


"예랑아. 남자는 절대 좋아하는 사람 아니면, 잘해주지 않아. 그렇다고 너한테 무슨 비즈니스를 하는 관계가 아닌 이상 더욱 그렇고. 단순한 거잖아. 아니 꼭 남자 여자 떠나서, 너 학교 다닐 때 조필상인가 뭐 선배 좋아했다며. 그때 너 어땠는데. 그럼 답이 나오는 거 아냐?"

"네가 봐도 내가 좀 답답해?"

"그걸 말이라고 하냐 멍충아? 내가 아주 가끔 널 보면, 안타까워서 볼 수가 없어. 남자는 좋다고 올 때 잡아야 한다. 지나고 나면 다 소용없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아. 그걸로 끝이라고. 그러니까 좋은 사람이다 싶으면 꽉 잡으라고."

"무슨 물고기야? 누가 누굴 잡아?"

"너 솔직히, 손무경 그 사람. 싫지 않지? 넌 모르나 본데, 그 사람이랑 있을 때 네가 계속 신경 쓰는 거 알아? 진짜 남자는, 여자를 진짜 여자로 만든다고 했어. 너 요새 되게 여성스러워. 내가 오글거릴 정도로. 그러니까, 네 감정을 먼저 생각해봐. 넌 어떤지."


하나의 말을 듣고 기분이 더 심란해져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뜬 눈으로 새벽 내내 들척이다가 아침에 잠깐 잠이 들었고, 7시에 일어나 하나와 함께 스포츠센터로 향했다.






비록, 자격증 시험에 떨어졌지만, 계속 연습을 하기로 결정했고, 센터 일도 전처럼 병행하기로 했다.

모두가 퇴근을 하고, 텅 빈 센터에 남아 요가실 한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일어나 무용 스텝을 밟았다. 오랜만에 스텝을 밟으니 어색했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시선을 앞으로 고정한 채, 몸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겼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자유로움인가. 할 수 있는데, 왜 하려 하지 않았을까. 내 몸은 이렇게 원하고 있는데, 마음이 아프다 해서 모든 것을 버리려고 했었다. 마치 한동안 물을 마시지 않았던 사람처럼 갈증을 채우듯 그렇게 밤이 새도록 춤을 추었다.


그러고 나니, 새로운 자신감이 생겼다. 좋지 않은 예감과 함께. 안 좋은 예감은 야속하게도 한 번도 빗겨 난 적이 없다. 하지만, 설사 같은 일이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믿어보기로 했다. 내 자신을.

앞으로 나를 둘러싼 어떤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벽에 부딪혀 갈 길을 잃어 멀리 돌아간다 할지라도. 넘어져서 아파 우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울음을 그치고, 먼 길을 갈 수 있는 한 줌의 희망만 놓지 않는다면 한 걸음 한 걸음,  용기 내어 갈 수 있는 자신감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고 있었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내어보는 것. 그것만으로 정말 감사하고 다행이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나고, 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하나의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늦은 밤, 좁은 골목길 입구에서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고 있을 때, 그 앞에 세워져 있는 무경의 차와 함께, 그를 보았다.

팔짱을 끼고 서 있었는데, 희미한 가로등 불 아래서 그의 얼굴 선에 그림자가 뚜렷하게 도드라져 보였다.


그는 나의 인기척에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고, 짧은 찰나에 반가움과 함께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그를 향해 한걸음 다가갔다.

가까이서 그와 마주 보니, 얼굴이 많이 까칠해 보였다. 깊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  살짝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 잊고 있었는데, 그의 나직한 목소리가 그리웠다.


" 잘 지냈어요?"


불과, 열흘도 채 안 된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마치 아주 오랜만에 다시 보는 사람처럼 그가 반가웠다.


"네, 무경씨는요?"

"난 별로 못 지냈어요."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잠을 잘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계속 멍해있고, 몸도 아픈 것 같고, 열이 나고, 이거 이상한 거 맞죠?"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어 이마에 대었다.


"어디 아팠어요? 괜찮은 거예요? 열이 좀 있는 것도 같고."


그러자, 그가 내 손을 잡아 내리더니 자신의 가슴에 갖다 댄다.


"여기가 너무 아요. 당신 때문인 것 같아요. 나 좀 도와줄래요?"


한동안 그를 쳐다보며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눈이 계속 가로등 불빛을 받아 흔들렸고, 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 역시 똑바로 날 쳐다보며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따뜻한 그의 손.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힘주고 있는 그의 손. 진지하고, 절실해 보이는 그의 눈빛에 난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처음 느껴보는 이런 감정. 낯설고 어색하지만, 피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오랜 시간 기다렸던 것처럼 이 순간을 나 역시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은 연속간행물입니다. 1편부터 보시면 스토리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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