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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개구리 May 06. 2016

그녀의 '덫' #23

내가 모르는 그의 이야기

5분 간격으로 계속 시계를 쳐다보던 난, 퇴근시간이 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연남동으로 향했다.

"뭐? 아무도 못 알아봐? 내가 미친년이지. 왜 도와준다고  나서서 일을 만들어."


점점 걸음이 빨라진다.

오전 기사에 이어, 시창에 관한 또 다른 스캔들 자료가 계속 업데이트되었는데, 남산의 호텔 앞에서 시창의 차에서 내리던 내 모습과, 문체부 후원 파티에서 시창의 팔짱을 끼고 있는 장면들이었다.


시창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계속 전원이 꺼져있다.

'전화는 또 왜 안 받는 건데.'

연남동의 골목으로 들어서자, 멀리서 카페가 보인다.

그리고, 구석 한 자리에 선글라스를 끼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 시창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넌 디졌어.'






주먹을 불끈 쥐고, 그의 곁으로 다가가는데 맞은편에서 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더니 카페 앞에 급정거를 한다.

그리고, 차에서 내린 사람은..... 놀랍게도 무경이었다.

'저 사람이 왜 저기에 있어? 아직 올 때가 아닌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무경을 쳐다보는데, 그가 차 문을 '쾅' 닫더니 시창에게 다가간다.

사태 파악할 새도 없이 그대로 시창의 멱살을 잡주먹을 날리는 무경.

테이블과 의자가 넘어져 부서지고, 시창이 그대로 바닥에 나가떨어진다.


그 모습에 놀라 '꺄악' 비명을 질렀다.

무경이 쓰러져 있는 시창을 잡아 세우고 다시 주먹을 날린다.

그의 눈빛이 서늘하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대체!"


시창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내가 뭘 했다고 그래?"

"그 기사 뭐야?"

"? 그건 그냥 기사잖아. 아무 일 아니라고. 형까지 왜 그래?"

"그럼, 사진은 뭐야? 그 시간에 왜 예랑이가 너랑 같이 있는데? 어?"

"그건, 내가 취해서 불렀어."

"뭐? 네가 왜?"


터진 입술을 손으로 만지며 고개를 '획' 돌려버리는 시창.

그의 멱살을 다시 움켜잡고 주먹을 치켜드는 무경.


"말하라고 이 새끼야. 왜 네가 예랑이를 불러냈는지 똑바로 말해. 내 눈 쳐다보고."


시창이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형은 그렇게 못 믿어?"

"내가 널 어떻게 믿어? 네가 지금까지 한 짓을 생각해 봐."

"   . ."

"그런데, 왜 일을 이렇게 만들어. 네가 똑바로 처신했으면 아무 일도 없잖아."

"처신? 내가 똑바로 못한 건 뭔데? 정말 날 그 정도밖에 생각 안 해? 응? 형이야말로 솔직히 말해 봐."

"뭘?"

"나한테 이러는 거 승주 누나 때문이지? 내 말은 믿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잖아. 이러는 거. 누나 때문 아냐?"

"여기서 승주 얘기가 왜 나와?"

"그때부터였잖아. 형이 나한테 차갑게 대한 게. 그때도 내가 아무 일 없었다고 했는데, 넌 안 믿었잖아."

"그만 해. 듣고 싶지 않아."

"제발 날 좀 믿어 줘."


무경의 팔을 잡는 시창. 그런 그의  팔을 뿌려 치는 무경의 표정이 차갑다.


"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그리고, 그때. 그들 앞으로 다가간 난, 조용히 물었다.


"승주가 누구예요?"





동시에 날 쳐다보는 두 사람. 당황한 무경과 마찬가지로 당혹스러운 얼굴의 시창.

그런 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다시 물었다.


"그 사람이 누군데, 지금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물끄러미 날 쳐다보는 무경.

그런 그를 향해


"무경씨는, 언제 왔어?"

"조금 전에 공항에 도착했어."

"그런데,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온다는 말 없었잖아."


따지듯 묻는 내 질문에 고개를 돌려버리는 무경.


"설마, 그 기사 보고 온 거야? 그거 때문에?"


그가 날 빤히 쳐다본다.


"미국에서 여기까지 몇 시간 걸린다고 생각해? 그 기사 비행기 안에서 봤어. 난 이미 그전에 출발했고."

"뭐? 그럼 왜?"


그가 대답 없이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갑자기 울컥해서


"왜냐고 묻잖아! 말하다 말고 가는 게 어딨어?"


내 외침에도 아랑곳없이, 잠시 후 무경의 모습이 사라졌다.

입술을 꽉 물고 계속 쳐다보는데, 시창이 쓰러져 있는 의자를 일으켜 세우더니 털썩 앉는다.

시창을 향해 몸을 돌린 난,


"어떻게 된 거예요? 왜 그런 기사가 난 거예요? 괜찮다면서. 아무도 못 알아본다면서. 그리고 왜 내 전화는 안 받아요? 내가 얼마나 미칠 뻔했는 줄 알아요?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했어요."


턱이 아픈지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시창.


"예랑씨, 지금 그 대사 남들이 들으면 진짜 오해할 것 같은데, 조금 전 상황도 마찬가지고. 잠시만 진정해 줄래요?  미칠 것 같은 사람은 나라고."


그제야, 그의 얼굴을 찬찬히 보았는데, 입술이 터져서 피가 배어있고, 눈 쪽이 퉁퉁 부어있다.

그가 핸드폰을 꺼내어 액정화면으로 얼굴을 보더니, 바짝 약이 오른 표정으로


"아, 얼굴은 건드리지 말라니까. 내일 촬영인데 어떻게 하라는 거야."

"괜찮아요? 많이 다쳤어요?"


그가 고개를 들더니


"누군 테니스공으로 쌍코피 터뜨리질 않나, 또 누군. 다짜고짜 주먹부터 날리질 않나. 진짜로 짜증 나는 커플이야."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또 미안해져서


"그러게, 왜 그런 기사가 나게 해요?"

"나도 몰랐어요. 설마 그 시간에 집 앞까지 쫓아와서 찍어댈 줄 알았겠어요?"


그렇지...... 그가 연예인인걸 깜빡했다. 아무리 친하고, 허물없다 하더라도 그는 나와 같지 않음을 잊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어쩌지......


고개를 들어 4층을 올려다보았다. 불도 켜지 않고 깜깜한 무경의 집.

긴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 무경.


"올라가 봐요. 아마 전화 안 받을 거예요."


시창이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더니, 차 키를 꺼내어 맞은편으로 향한다.


"난 이만 사라질게요. 안녕."


시창이 차에 시동을 걸고 가버리자, 우두커니 카페 앞에 서 있던 난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그렇게 가버리고, 전화를 받지 않는 무경이 야속하고 미워 발을 돌리려는 찰나, 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잠깐 올라와. 거긴 좀 불편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카페 안에 직원들과 손님 몇 명이 흘끔흘끔 쳐다보고 있다.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무경의 집 앞에 있는데,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문이 열린다.

무경의 얼굴이 피곤해 보였다.


"들어와."


그의 말에 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얘기해. 바로 집에 갈 거야."


그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렇게 인사하듯 짧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들어와서 얘기해."

"아니, 싫어. 그냥 말해."


고집스러운 나의 말투에 그가 한숨을 내쉬더니 팔짱을 낀다.


"그래, 알았어. 뭐부터 말해줄까?"

"아까 시창씨한테 왜 그런 거야?"

"그건 자기가 더 잘 알 거 아냐."

"아니, 난 모르겠는데. 동생이 연예인이면 이런 상황 처음도 아닐 거고, 그게 하필 자기 애인하고 엮이니까 기분 나빴을지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사실 확인도 안 하고 그렇게 화를 내? 이오히려 내가 더 당황스러."

"그래, 나도 알아. 내가 흥분한 거. 빨리 보려고 오는데 정말 기분 좋게, 축하해주고 싶어서 서둘렀던 건데, 그 기사 보고 솔직히 화가 났어. 널 믿지 못한 건 아냐. 그랬으면 먼저 따졌겠지. 이건 시창이랑 나의 문제야."

"그럼,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건 아는 거네?"

"알지만 기분이 안 좋 거지. 그렇게 엮이는 거 너무 싫거든."

"그 말은 그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걸로 들리는데, 맞아?"


그가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 사람 때문이야? 승주라는? 그 사람이 누군데?"


무경의 하얀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잠시 고개를 떨군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전 애인. 그리고, 시창의 첫사랑 이기도 하고."


그의 말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설마 하면서도 믿고 싶지 않았던 사실. 그의 입을 통해 다른 여자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몸이 떨릴정도로 심기가 불편했다.

그의 과거. 날 만나기 전에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누구를 만나왔는지 지금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기뻤기 때문에.

그런데, 사람이라는 건 욕심이 끝이 없나 보다.


그가 분명히, 그의 입으로 전 애인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알지도 못하는 그 사람을 향해 질투라는 감정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 감정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결코 반갑않은 불쾌감이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인가 보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을 서로 마주 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



그녀의 ''은 연속간행물입니다. 1편부터 보시면 스토리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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