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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개구리 Apr 26. 2016

그녀의 '덫' #22

때론 아이처럼 울고 싶을 때가 있다.

며칠 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센터로 출근을 했는데, 문을 열자, '펑' 소리와 함께 폭죽이 터졌다.
귀가 먹먹해짐과 동시에 순간 당황해서 눈을 질끈 감았는데, 센터 안에는 하나를 비롯해 센터장과 직원들이 길게 줄을 서서 <합격 축> 플랜카드를 들고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오여사가 다가온다.


"그동안, 힘들었지? 예랑씨 매일 늦게까지 남아서 연습하는 거 알고 있었어.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다. 그렇지?"

"아....... "

"다음 주부터 오전 타임 맡아봐. 이제부턴 실전이야. 알았지?"

"?"


오여사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툭' 치고,  GX실로 향했다.

옆에 있는 하나를 쳐다보니 마찬가지로 이상한 웃음을 짓고 있다.


"시창씨가 너 합격해서 여기서 레슨 하면 자기도 회원 끊는다고 했나 봐. 그것도 VIP로. 그래서 오여사가  아주 신이 났어."

"시창씨가?"

"저번에 밥 사주면서 그랬데. 혹시 무경씨가 시킨 거 아냐?"

"설마......."





퇴근 후, 하나와 집에 돌아와 축하주로 캔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기분 좋게 수다를 떨고 있는데, 벨소리에 번호를  확인해보니 무경이다.

점심때 그에게 합격했다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던 그였다.


- 여보세요? -

- 미안. 오늘 너무 정신이 없어서 이제야 연락을 하네. 축하해. -

- 고마워요. 근데 막상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

- 천천히 하나씩 해....... 부담 갖지 말고, 또 못하면 어때? 내가 옆에 있는데. -


전화기를 통해 전해지는  그의 목소리가 따뜻했다.

잠시 후, 그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보고 싶다. 아주 많이. 자기는 나 안 보고 싶어? 2주를 어떻게 기다리지? 지금도 이렇게 못 참겠는데. -


그의 달달한 애정표현에 얼굴이 붉어지자, 옆에서 빤히 쳐다보던 하나가


"좋아 죽네 죽어. 그렇게 좋으냐? 어?"


그녀의 핀잔에 난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에 하나는 끌끌거리며 혀를 찼다.




 


그와 한참을 통화를 하다가 전화를 끊었는데, 5분 후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무경이 다시 건 줄 알고, 번호도 확인하지 않은 채 핸드폰을 귀에 대었는데, 긴 한숨소리가 들린다.

그리고는.


- 예랑씨... -


시창의 목소리다. 당황스러워


- 시창씨? 이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


잠시 말이 없는 그.


-무슨 일 있어요?-

-나 술 먹었는데...... 잠시, 와 줄 수 있어요?-

-네?-


집 근처 연희동이라며 위치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는 시창.

핸드폰을 들고 잠시 고민을 하다가, 옷을 챙겨 입었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오는 하나에게


"나 잠시,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아."

"뭐? 지금 12시가 넘었어. 어디 가려고?"

"갔다 와서 얘기해줄게.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예랑아 무슨 일인데?"


하나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집 밖으로 뛰어나가 택시를 잡아탔다.

평소와는 다른 심각한 그의 목소리에 택시에서 내려 서둘러 그가 있다는 가게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시창이 어떤 여자와 함께 서 있었는데, 분위기가 싸늘했다.

잠시 후, 들려오는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


"그만하라고 했지? 너 바보야? 왜 그렇게 말을 못 알아들어? 언제까지 그럴 건데, 어?"


어두워서 자세히는 보이지 않지만, 여자는 멀리서도 강인함이 느껴졌다. 날씬하고 큰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분위기가 지적다.

그리고 그 앞에는 어두운 얼굴의 시창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차가운 표정으로 냉랭하게 얘기하는 여자.


"이럴 거면, 다신 나한테 연락하지 마. 너 안 볼 거야."


'휙' 몸을 돌려 뒤돌아서는 그녀의 손목을 잡는 시창. 그녀를 끌어안는다.


"가지 마. 잘못했어."


잠시 그의 품에 안겨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던 그녀가 그를 밀쳐내더니 뺨을 때린다.

'쫘악!' 소리가 골목 안에 울려 퍼지고, 얼굴이 옆으로 '휙' 돌아간 시창과 그를 버려두고 가버리는 여자의 뒷모습.


'이게 무슨 상황이야?'

당황함을 뒤로 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시창을 보았는데, 그는 멍하니 서서, 여자가 사라진 거리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그 앞에 나타나면 민망스러워할 것 같아 모른 척 돌아서려고 한 그때,

시창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잠시 후, 그의 볼에서 눈물이 타고 흘러내렸다.

아이처럼 울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약해져 그만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시창씨. 괜찮아요?"


조심스레 꺼내는 내 질문에 울음을 삼키듯 고개를 드는 시창.

잘생긴 얼굴에 손자욱이 선명하게 남아있고,  퉁퉁 부어 있었다.

그가 날 보더니, 천천히 내 옷깃을 잡으며 중얼거린다.


"예랑.... 씨........"

"네?"

"나 술 좀 사줘요."

"..............."

"한번만 사줘요."

"저 돈 없어요. 급하게 나와서 택시비 정도?"


호주머니를 뒤적거려보니, 꼬깃꼬깃해진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나온다.

물끄러미 만원 한 장을 쳐다보던 그가,


"충분해요."






잠시 후, 결국 난 단골 포장마차에 그와 마주 보며 앉았다.

어묵국을 안주 삼아, 만원에 소주 3병을 시켜 놓고 계속 스트레이트로 술을 들이키는 시창.

그런 그를 지켜보다가, 안 되겠지 싶어 말을 걸어보는데,


"이렇게 돌아다녀도 돼요? 사람들이 알아보면 어떡해요? 그만 집에 가요. 데려다 줄게요."


나의 말에 '흘깃' 쳐다보는 그.

 

"지금은 아무도 못 알아봐요. 신경 쓰지 마요."


-1차 대화 실패.


"거기, 국물도 좀 먹고 그래요. 계속 소주만 깡으로 먹으면 어떡해요?"

"죽을 때까지 먹을 거니까, 냅둬요."


-2차 대화 실패.

어쩔 수 없지. 이럴 땐 정공법이 최선이다.


"아까, 그 여자 때문에 그래요?"


무표정하던 그가 내 말에 반응을 보이며 술이 든 종이컵을 찌그러뜨린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거침없이 튀어나온 말은


"나쁜 년."


순간, 내 귀를 의심하며


"뭐라고요?"

"나쁜 년이라고."

"지금 저한테 욕한 거예요?"


그가 물끄러미 날 쳐다보더니,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다.


"난, 그러려고 보자고 한 거 아닌데, 진짜 아닌데."

"무슨 일인데요?"

"그냥, 같이 밥 먹으면서, 와인을 좀 마셨더니, 갑자기 오늘따라 예뻐 보이고, 또 예전 생각도 나고 그래서......"

"그래서?"

"나랑 같이 숙박하자고 했더니 막 때리잖아."

"뭘 하자고요?"

"숙박."

"...................?"

"그냥 보내기 싫어서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랬는데, 진짜로 다른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고."

"시창씨, 어떤 여자가 그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겠어요? 나 같으면 더 때렸을 걸요?."


그가 금세, 시무룩해져 퉁퉁 부은 두 볼을 감싼다. 아직 그의 얼굴에 남아있는 붉은 손자욱.


"누군데요? 친한 사이예요?"


내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긴 시창.


"내 첫사랑."

"그럼, 전 애인?"

"........ 이 아니고."

"...................................................................."


그 말을 마지막으로 '털썩' 소리와 함께 테이블에 얼굴을 박고 쓰러진 시창.






비틀거리는 그를 부축하고 집으로 향했다.

정신을 못 차리고 휘청거리는 시창.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거실 소파에 던지듯 내려놓고, 무경의 침실에서 이불을 꺼내어 잠들어 있는 그를 덮어주었다.

그를 끌고 오느라 진이 다 빠져 온 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는데,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네시.

큰 일이다. 내일 지각하면 안 되는데.......

그가 누워있는 테이블 옆에 차가운 생수 한잔을 올려놓고 현관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 날.......

뉴스 가십에 시창을 붙잡고, 집으로 들어가는 내 모습이 온 사이트에 도배되었고, '영화배우 장시창 열애?'라는 타이틀로 가십 메인을 차지했다.  


옆에서 기사를 보던 하나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이거 혹시 너 아냐?"



그녀의 ''은 연속간행물입니다. 1편부터 보시면 스토리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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