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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성장 Feb 22. 2022

아니, 장례식 꽃장식이 150만 원이라고요?

할아버지 장례식을 책임지는 손녀의 장례 문화 경험기


아무래도 풍성하게 보이는 게 좋으니,
고인 생각하셔서 이 세트로 많이들 하세요.



장례식장에 들어오면 비어있는 빈소가 있는지 확인 후 본격적으로 장례 절차가 시작된다. 나는 뭔가 준비라도 하고 장례식을 치르는 줄 알았지만 고인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니 미리 대비할 수 없단다. 장례식장은 예약하는 개념이 아니었고 당장 모실 수 있는, 비어있는 곳을 찾아가는 개념인 듯싶었다.



장례식장을 계약하고 배정된 빈소로 돌아오면 영정사진, 제단 꽃, 식사 등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 각 부분의 담당자(?)가 카탈로그를 보여주며 장례 상품을 권한다. 우선 영정사진. 나는 미리 할아버지가 잘 나온 사진을 포토샵으로 보정해두었는데, 핸드폰으로 사진을 전달해주니 액자가 되어 돌아왔다. 이렇게 영정사진에 15만 원 정도가 든다.



그 후에는 제단의 꽃장식을 정해야 하는데, 카탈로그 속 제일 작은 규모의 꽃장식도 기십만원부터 시작했다. 기십만원이지만 소박하고 단출한 꽃장식이었다. 나는 제단 꽃이 이렇게 비싼지 몰랐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누구나 그러하다.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부족함 없이 해주고 싶은 마음. 꽃장식 담당자는 '고품격 장례식'에 어울리는 150만 원 상당의 꽃장식을 추천해주었고 나는 잠깐의 고민 후 그렇게 하기로 했다.



다음엔 할아버지를 모실 '유골함'을 결정해야 했다. 상조 담당자가 엄청나게 많은 유골함이 있는 카탈로그를 주었다. 그중에서도 '프리미엄'이라고 불리는 유골함이 있었는데, 이중 진공 기능이 있어 유골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방지해준다고 했다. (병충, 결로 등) 역시 비용은 만만치 않았지만, 유골함이야 말로 할아버지를 모시는 곳인데 가장 좋은 것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고민하지 않았다. 그리고 프리미엄 유골함을 선택하면 프로모션으로 고인을 위한 황금박을 입힌 수의를 제공해준다고 했다. 그게 뭔지 잘 알지도 못했지만, 그냥 좋다고 하는 것이라면 다 해드리고 싶었다.






이후로도 비용이 발생하는 부분에 대해 협의할 일이 많았다. 음식이나 음료를 추가한다거나, 상복 대여료, 양말이나 넥타이 같은 소품들까지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청구서가 쏟아졌다. 남편과 나는 손님을 맞고, 인사를 하고, 영수증을 체크하고, 의사결정을 하고, 쪽잠을 자며 3일을 보냈다.



빈소를 떠나기 전 정산된 금액을 보고 다소 놀라긴 했다. '이렇게나 많이 쓸 필요는 없지 않았나?' 할 수 있지만, 내가 막상 이런 상황에 처해보니 쉽게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가슴이 무너지는데 어떻게 타산을 따질 수 있겠는가. 게다가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좋은 것으로만 가득 채우고 싶은 마음이 당연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이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고 감사했다. 그래도 굳이 돌이켜보자면, 다른 것은 다 그렇다고 쳐도 꽃장식은 정말 비싸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행히도 그럴만한 금전적 상황이 되어서 망정이지, 진짜로 사정이 어려워 가족의 마지막 가는 길을 좋은 것으로 해주지 못하는 마음은 얼마나 찢어지게 아플까? 돌아가신 고인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슬픈 유족들의 마음을 자극해 터무니없는 이익을 취하는 것은 아닌지 조금 씁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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